대머리 남성, 농경사회 이전엔 더 많았다

곽노필 기자 2026. 4. 20.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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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노필의 미래창
최근 1만년 동안 진화 빨리 진행…통념 뒤집어
고대 DNA 분석 통해 479건 자연선택 사례 발견
농경·목축으로 병원체 노출 증가…진화 압력 커져
고대 이집트에서 소로 밭을 가는 모습. 무덤에서 발견된 기원전 1200년경의 그림이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일반적으로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는 수만년 이상 장구한 세월에 걸쳐 천천히 일어나는 과정으로 여겨져 왔다. 특히 인류 집단 내에서 유리한 돌연변이가 생존에 유리하게 작용해 집단 전체에 고정되는 ‘고전적 선택 일소’(classic selective sweep) 현상은 인류 진화 역사 전체를 통틀어 매우 드물게 발생하는 사건이라는 것이 학계의 지배적인 이론이다.

하지만 최근 고대 DNA 분석 기술이 발전하면서 이러한 통념을 뒤집는 결과들이 나오고 있다. 미국 하버드대 의대가 중심이 된 국제 공동연구진이 유럽과 중동 일부 지역을 포괄하는 서유라시아 지역에 살았던 고대인 1만5836명과 현대인 6438명의 게놈 데이터를 비교 분석한 결과, 지난 1만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인류 진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된 것으로 나타났다고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발표했다.

연구진은 새롭게 개발한 분석법을 이용해, 지난 1만년 간의 유전자 빈도 변화 중 2%가 방향성 선택(directional selection)의 결과였으며, 이 가운데 가장 확실한 영향을 받은 479개의 대립유전자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또 자연선택의 영향을 받은 것이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빈도가 증가한 유전자 변이 수천개도 발견했다고 덧붙였다. 논문 제1 저자인 알리 아크바리 연구원은 “영향을 받았을 확률이 50% 이상인 7600여개의 유전자 위치를 확인했다”고 말했다.

대립유전자란 하나의 유전자가 가질 수 있는 ‘서로 다른 버전’을 가리키는 말이다. 예컨대 혈액형을 결정하는 유전자에는 A, B, O형이라는 세 가지 대립유전자가 존재한다. 방향성 선택은 대립유전자 가운데 특정 형질을 발현하는 유전자 변이가 생존과 번식에 유리하게 작용할 때, 해당 변이의 빈도가 세대를 거듭하며 꾸준히 증가하는 자연선택의 한 유형을 말한다.

유럽의 한 초원에서 풀을 뜯고 있는 양떼들. 유럽야생협회

청동기 시대 병원체 노출 증가…유전자 압박 커져

지금까지 고대 DNA 연구에서 확인된 방향성 선택 사례는 유당 분해 효소 생성과 관련한 유당 불내증 유전자를 포함해 21건에 불과했다. 이번에 수백개가 한꺼번에 확인된 것은 현생 인류가 수렵채집 생활을 끝내고 농업 문명사회를 일궈가는 과정에서 이전보다 훨씬 더 역동적으로 환경에 적응해 왔음을 말해준다. 1만년 전은 인류가 농경과 목축을 시작한 시점이다.

연구진은 특히 5천년 전에 시작된 청동기 시대에 진화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고 밝혔다. 이 시기는 유럽의 인구 밀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사람들이 가축과 함께 생활하기 시작한 때다.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파스퇴르연구소의 루이스 퀸타나-무르시 박사(인구유전학)는 사이언스에 “청동기 시대엔 병원체 노출이 크게 증가해 면역 및 숙주-병원체 상호작용과 관련한 유전자에 대한 선택압력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가장 뚜렷한 변화는 식단 적응력과 질병 저항력에서 나타났다. 글루텐(밀 단백질) 민감성과 관련한 유전자 변이(HLA-DQB1)의 경우 지난 4000년 사이에 빈도가 0%에서 20%로 급증했다. 이 유전자 변이는 면역 체계가 글루텐을 공격해 장을 손상하는 셀리악병 위험을 높인다. 원래 이 유전자는 외부 미생물을 인식하는 면역 체계와 관련이 있는데, 농경 시작 이후 면역 체계가 적응하는 과정에서 글루텐을 외부 침입자로 오인해 공격하게 된 것으로 연구진은 추정했다.

이베리아반도에서 발굴된 청동기시대의 유골. 하버드대 의대 제공

탈모는 줄어드는 방향으로 진화

현대에 들어 후천성면역결핍증 바이러스(HIV) 저항성으로 잘 알려진 유전자 변이(CCR5-Δ32)는 6000~2000년 전부터 빈도가 증가하기 시작했다. 연구진은 “이 변이가 늘어난 것은 당시 유라시아에 유행했던 페스트균 등 특정 병원균에 적응하기 위한 것이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특히 청동기 시대에 들어서면서 혈액, 면역, 대사 관련 유전자의 선택 비율이 급격히 높아졌다. 연구진은 인구 밀도가 높아지고 가축과의 접촉이 빈번해진 환경 변화에 따른 생존 전략으로 추정했다.

자연선택은 유럽인의 외모에도 영향을 미쳤다. 연구진은 서유럽인들의 피부가 밝은색으로 바뀌는 데 관여한 변이를 10가지나 발견했다. 이는 비타민D가 부족한 곡물로 식단이 바뀌자 햇빛으로 비타민 D를 체내에서 합성하기 위한 적응 진화였다. 이 과정에서 4천년 전부터 밝은 피부색 유전자와 관련이 있는 붉은 머리카락 유전자도 더 흔해졌다.

남성형 탈모와 관련한 유전자는 지난 7천년 동안 탈모를 줄이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이 유전자의 대립유전자 빈도가 이 기간 중 50%에서 20%로 급감했다. 연구진은 이것 역시 우리 몸이 농경 사회라는 새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부수적 결과일 것으로 봤다. 이로 인해 현대 유럽인의 탈모 발생률은 1.8% 줄어든 것으로 추정됐다.

과학자들이 고대 및 현대 인류의 DNA 표본을 수집한 지역. 하버드대 의대 제공

동아시아에서도 비슷한 자연선택 확인

흥미로운 점은 지난 1만년 동안 제2형 당뇨병, 양극성 장애, 정신분열증 발병 위험 증가와 관련된 유전자 변이는 감소하는 경향을 보인 반면 학력, 가구 소득, 지능 검사 점수와 관련된 유전자 변이는 모두 증가하는 경향을 나타냈다는 점이다.

연구진은 이런 흐름은 과거 수렵 채집 사회에서 유리했던 ‘절약 유전자’가 식량 생산 방식이 바뀐 이후에는 오히려 건강에 불리해졌고,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대사 효율성과 인지 능력이 함께 진화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했다. 같은 유전자 변이라도 환경이 달라지면 우리 몸에 끼치는 영향도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특정 유전자 변이가 단순히 하나의 형질에만 머물지 않고, 서로 다른 영역의 진화에 관여할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이번 연구진 일부가 포함된 다른 연구진도 최근 출판전 논문 공유집 바이오아카이브에 공개한 논문에서 비슷한 결과를 발표했다. 이들은 중국과 인접 국가의 고대 DNA 1862개를 분석한 결과, 동아시아에서도 유럽에서와 마찬가지로 동일한 몇몇 변이체들에 자연선택이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는 인류의 진화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농경 사회와 도시 문명을 거치며 최근까지도 맹렬한 속도로 진행되어 왔음을 말해준다. 아크바리 연구원은 사이언스에 “지난 1만년 동안 유전체는 엄청난 선택 압력을 받아왔다”며 “우리의 삶의 방식이 얼마나 변화했고, 그 변화에 어떻게 적응했는지가 유전체에 담겨 있다”고 말했다.

*논문 정보

Ancient DNA reveals pervasive directional selection across West Eurasia.

https://doi.org/10.1038/s41586-026-10358-1

Convergent natural selection at both ends of Eurasia during parallel radical lifestyle shifts in the last ten millennia.

https://doi.org/10.64898/2026.04.03.716344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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