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펜이 부른 ‘책 장례식’ “곡학아세” 이유로 작가 공격… 세계 유례없는 비문화적 처사[장재선의 한국문화 ‘논란의 초상들’]
(13) 작가 이문열의 정치적 발언 <상>
31개국 24개 언어로 번역·출간… 한국문학 알린 1세대 작가
종교·권력·분단 등 폭넓게 다뤄… 국내 3000만부 판매 ‘최다’
2001년 언론사 세무조사·낙선운동 문제점 지적 칼럼 썼다가
정치권·반대 진영서 날선 공격… 동료 작가마저 침묵에 내상
왜 세상 개입하냐 질문에 ‘문학, 정치와 무관할 수 없다’ 답해


레프 톨스토이(1828∼1910), 마르셀 프루스트(1871∼1922), 루쉰(1881∼1936), 버지니아 울프(1882∼1941), 프란츠 카프카(1883∼1924), 제임스 조이스(1882∼1941),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1899∼1986), 밀란 쿤데라(1929∼2023).
이들의 공통점은? 세계 문학사를 빛낸 문호들이다. 또 하나 더 있다. 1901년 제정돼 매년 시상하는 노벨문학상을 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한국 문호 중에서는 서정주(1915∼2000), 박경리(1926∼2008), 최인훈(1936∼2018) 등이 저들과 나란히 이름을 올릴 수 있을 것이다. 생존 작가 중에도 노벨상 후보로 거론됐으나 수상하지 못한 이들이 여럿 있다. 그중 대표 문인이 이문열(1948∼)이다.
31개국에 24개 언어로 번역·출간돼 한국문학을 해외에 알린 1세대 작가. 이문열의 문학 성취는 돌올하다. 그는 작품에서 종교와 구원, 권력과 인간 본성, 전쟁과 분단의 질곡, 낭만적 사랑의 비극성, 여성주의 역설 등을 폭넓게 다뤘다. 동양 고전 ‘삼국지’ 평역뿐 아니라 유교문화 전통의 현재적 의의를 담은 작품들을 내기도 했다. 책 판매량만 3000여만 부에 달해 한국문학인 중 최다 기록을 갖고 있을 정도로 독자의 열광을 얻은 작가다.
◇“젖소부인과의 관계를 …”
반면에 그의 이름만 들어도 체머리를 흔들며 혐오를 드러내는 이들도 있다. 이는 그가 작품 안팎으로 우리 공동체에 대한 정치적 견해를 뚜렷이 드러낸 것과 관련이 있다. 그 견해는 반대 진영의 거친 저항을 불러일으키며 사회적 사건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그것이 극명하게 표출된 게 지난 2001년 11월 3일 ‘책 반환 장례식’이었다. 경기 이천에 있는 그의 문학 사숙(私塾) 부악문원 앞에서 이른바 ‘이문열 돕기 운동본부’가 벌인 가장(假裝) 장례였다. 이문열을 공격하면서 되레 그를 돕는다는 이름을 내건 이들은 그의 소설책 700여 권을 관(棺)처럼 묶어 운구하고, 책 표지 사진을 모아 영정을 만들었다. 그 영정은 열 살쯤의 여자 어린이가 들었다. 작품을 형상화한 조형물을 만들어 태우는 화형식을 하고, 조시(弔詩)를 읊었다. ‘홍위병 발언 사과하라’ ‘젖소부인과의 관계를 밝혀라’ 등의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기도 했다.
한국 문화사, 아니 세계 문화사에 유례가 없는 책 장례식은 왜 일어났을까. 직접적 계기는 그가 신문에 쓴 칼럼들이었다. 그 하나가 그해 7월 2일에 실린 ‘신문 없는 정부 원하나’. 당시 김대중 정부의 언론사 세무조사에 대한 의혹을 지적한 내용이었다. 언론사도 세무조사를 받을 수 있으나 그 결과를 방송 3사가 생중계하며 여론몰이하는 등의 방식이 나쁘다고 했다. 정부에 비판 논조를 편 신문사들에 거액의 세금을 추징하고 그 사주들을 구속하는 것은 정권의 명백한 의도가 있다고 본 것이다.
이 칼럼 내용이 이튿날부터 정치권 논란으로 번졌다. 추미애 새천년민주당 의원의 ‘곡학아세(曲學阿世)’ 발언이 기름을 부었다. 추 의원은 새천년민주당 당 4역 회의에서 “지식인들이 언론의 지면 할애를 통해 성장한 후 언론에 곡학아세해서야 되겠냐”며 이문열을 공격했다. 그는 이틀 후 민주당 의원들 저녁 모임에서 술에 취해 기자들과 대화를 나누다가 “이문열이같이 가당치 않은 놈이…”라는 욕설을 퍼부었고, 그게 기사화됐다. (이문열은 나중에 추미애를 어떤 자리에서 마주친 후 ‘멀쩡하게 생긴 사람이 어째서 내게 그렇게 독하게 굴었던고’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논란이 된 또 하나의 칼럼은 7월 9일 자 ‘홍위병을 떠올리는 이유’였다. 자신의 책에 대한 반환 논의가 일각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쓴 것이었다. 문화상품인 책도 얼마든지 소비자보호운동의 대상이 되지만 작가 견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집단적으로 반품한다면 중국의 문화혁명 당시 홍위병의 문화 파괴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는 게 요지였다. 2000년 2월 8일 자 칼럼 ‘홍위병을 돌아보며’와 맥락을 함께하는 내용이었다. 그는 당시 총선시민연대의 낙선운동이 시민운동을 빙자해 정권의 뜻을 실행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제기했다. “확인되진 않았다”는 걸 전제로 깔고서였다.
이에 대해 좌파 평론가로 활약했던 진중권이 반론을 펼쳤다. 총선시민연대와 홍위병을 동일선상에 놓는 음모론을 던지고 있다는 것이다. 진중권은 이문열 칼럼의 논리대로라면 ‘에로영화 스타 젖소부인과 소설가 이문열의 관계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으니 앞으로 있을지도 모르는 관계다’라는 진술이 기사에 실려도 된다며 역공했다. 책 장례식 피켓에 젖소부인이 등장한 배경이다.
이에 강준만 전북대 교수가 자신이 펴내는 잡지 ‘인물과 사상’에 진중권을 옹호하고 이문열을 저격하는 글을 싣는다. 당시 조선일보에 반대하는 운동, 즉 안티조선운동에 적극적이었던 강 교수는 언론개혁을 막는다는 이유로 보수 우파 인물들에 비판적이었다. 책 장례식을 이끈 이문열돕기 운동본부는 인물과 사상 독자모임이 주축이었다.

◇“더 보수화되는 데 영향”
이문열은 책 장례식 직후엔 담담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상처가 깊어지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2003년쯤에는 자다가도 깨서 벌떡 일어날 정도로 화가 나곤 했다. 이후 내 생각이 더 보수적이 되는 데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한다.”
지난 2011년에 그를 부악문원에서 만났을 때 그 내상(內傷)이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있었다. 사건이 벌어진 지 10년이 지났음에도 그는 그때의 심정을 길게 밝혔다. 책 장례식을 주도한 이에게 “호남 사람 아니냐”고 말한 적이 없는데 잘못 알려져 지역 갈등을 조장한 작가로 오해받았다며 섭섭함을 토로했다.
그는 동료 작가들의 침묵에 더 큰 상처를 받았다고 했다. 당시 모든 문학 단체와 문인들이 이에 대해 함구했다. 문인 중 박완서(1931∼2011) 작가만 유일하게 공개적으로 책 장례식을 비판했다. “그렇게까지 문학이 모독당하는 일이 생겨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내가 이문열 씨와 같은 생각을 하거나 같은 방향으로 가는 것은 아니지만 작가에겐 최소한 그런 상처를 받지 않을 권리가 있는 것 아닌가요.”
책 장례식을 주도한 인물은 이에 대해 반박했다. 이문열의 칼럼이 자신과 다른 입장의 사람들을 ‘홍위병’이라 몰아붙이는 정치 테러를 했기에 묵과할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이문열은 스스로 단언(斷言)을 자주 한 탓에 세상의 시비를 불렀다고 말한 바 있다. 삶의 복잡한 층위를 성찰하는 문학인이 ‘강경 보수’ 딱지가 붙을 만큼 정치 사안에 대해 빈번히 단언을 했다.
그러나 작가의 발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책 장례식을 하고 그 작품을 태우는 행위는 반문화적 폭거다. 무슨 명분을 내세워도 아이에게 영정을 들게 한 것은 패악이다. 이문열 작가와 정치 견해가 다른 황석영(1943∼) 작가도 훗날 저서에서 이를 언급하며 “나는 분노하며 반문화적 처사라고 밝혔다”고 했다. 당시에 공개되진 않았으나, 같은 생각을 한 작가들이 더 있을 것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문열을 공격하며 책 장례식의 논리적 틀을 제공했던 강준만, 진중권이 요즘엔 진보 진영과 시민사회의 위선을 비판하고 있다는 점이다.
◇김지하·황석영 친했지만 …
“작가가 소설만 쓰지 왜 세상에 개입하는가.” 이런 질문에 이문열은 문학이 정치와 무관할 수 없다고 답한다. 사람 이야기를 다루는 소설가로서 세상이 좋아지는 데(혹은 덜 나빠지게 하는 데) 도움이 되는 발언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소신은 ‘태백산맥’의 작가 조정래(1943∼)와 유사한데 서로 딛고 있는 진영은 다르다.
이문열의 초기 작품들엔 좌파 성향이 비친다고 보는 평론가들도 있다. 그는 한때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었던 김지하(1941∼2022) 시인과 친했고, 좌파 문학계 좌장 역할을 한 황석영 소설가와도 가까웠다. 진보를 표방한 문학단체인 민족문학작가회의(현 한국작가회의) 이사를 지내기도 했다.
그랬던 그가 언제부터 보수 우파의 대표 논객으로 불리게 됐을까. 한국의 이름난 문학인들이 대부분 진보 진영에서 목소리를 낼 때 왜 외롭게 반대쪽에서 발언을 했을까. ‘분단의 질곡’ ‘균형 감각’ ‘시대와의 불화’ 등이 그것을 설명할 화두다. <하편에 계속>

원고 써서 번 돈을 후학 창작공간 지원
경기 이천 부악문원(負岳文院)은 작가 이문열이 1998년 사재를 들여 만든 현대적 서원(書院)이다. ‘삼국지’ 평역 등의 인세로 번 돈을 인문학 인재 양성에 되돌린다는 취지에서 출발했다. 당초 이곳에 사 뒀던 농가주택에 작가 지망생들이 과객처럼 드나들었는데, 아예 사숙(私塾) 형태로 문원을 연 것이다.
젊은 시절 방 한 칸 없이 떠돌며 설움을 겪었던 그였다. 먹고 자는 걱정 없이 글을 쓸 수 있는 환경을 후학에게 제공하고 싶었다고 한다.
문원의 이름은 주변을 에워싼 부아악산(負兒岳山)에서 비롯했다. ‘아이를 업은 모습’이라는 뜻이 사람을 돌본다는 의미와 통하기 때문이다.
4628㎡(약 1400평)의 대지에 작가의 살림집과 함께 본관, 도서실, 강당, 세미나실, 식당, 휴게실을 갖췄다. 문학인, 인문학자 지망생들의 학습과 토론 장소로 주로 활용됐다. 이념 성향이 다른 이들끼리 과격한 논쟁을 할 때도 있는데 이문열은 관여하지 않았다.
세월이 지나며 인재들이 몰리는 열기가 떨어져 폐원 위기에 몰리기도 했다. 몇 년 전부터 문화체육관광부 등의 지원을 받아 5∼6명의 문인들이 수개월씩 숙식하는 창작 레지던스로 운영하고 있다.
한국의 문학인이 자신의 고혈을 짜 얻은 작품 인세를 이렇게 사회에 환원하는 경우는 드물다. 걸핏하면 공동체 정의를 내세우며 목소리를 낸 문단 거물들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이런저런 혜택을 받아내는 데 골몰한 것에 비할 때 세상에 던지는 메시지가 크다.
“더 늙기 전에 고향에 갔으면 좋겠어요. 거기서 종생(終生)할지 모르지만 돌아오더라도….”
지난 2011년 만났을 때, 60대 초반의 그가 이런 소망을 피력했다. 그는 서울에서 태어났으나 어린 시절을 보낸 경북 영양의 재령 이씨 집성촌 두들마을을 고향이라고 여겼다. 두들마을에 집을 짓고 광산문학연구소(匡山文學硏究所)로 칭했다. 거기에 책과 세간살이를 서서히 옮기고 20년 넘게 주말 왕래를 하며 영구 귀향을 꿈꿨다. 그런데 그 집이 지난 2023년 원인 모를 화재로 모두 불에 타버렸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경북도와 영양군이 복원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부악문원에 머물고 있는 이문열은 심신의 상태가 썩 좋지 않다고 한다. 2024년 말 이후 외부 활동을 거의 하지 않고 있다. 그가 건강을 회복해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뜻한 대로 고향에서 노년을 누리기를 바란다.
장재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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