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제사에 오지 말라는 엄마, 고민 끝에 찾아간 곳

칼럼니스트 최은경 2026. 4. 20.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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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한번 해봤어] 혼자 보낸 추모의 시간

"올해부터 아버지 제사에 오지 마라."     

지나 4월 초. 전화기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엄마 말에 '그래도 되나' 싶었다. 그래도 가야 할 것 같았다. 제삿날 엄마 혼자 있는 것도 좀 걸리고. 그런데도 엄마가 극구 말렸다. 오지 말라고. 이제부터 엄마 혼자 해도 충분하다고. 다음 날 일해야 하는 것도 신경 쓰이고 하니 그냥 제삿날만 기억하고 있으란다.

아빠가 살아 계실 때도 다정한 딸이 아니었는데, 그게 후회돼서, 이제라도 제사를 챙기려는 것은 아니다. 단지 나는 도리는 하는 딸이고 싶었다. 죄책감이 드는 건 싫어서. 그래서 제사에 가려고 했던 것이다.

이빠가 돌아가신 지 10년이 넘었다. 엄마는 이정도면 되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나밖에 없는 며느리는 아빠를 본 적도 없다. 언젠가는 끝내야 할 제사. 엄마는 지금이 그때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간 제사 문제로 실랑이가 없던 것도 아니었다. 하네 마네, 절로 모시네 마네... 번번이 엄마는 결정을 뒤집었다.

그래서 내심 엄마의 결정을 반겼다. 칠십이 다 된 엄마는 아직도 요양보호사로 일하시는데 제사 준비를 도맡아 하는 게 불편했다. 아빠는 돌아가셔서도 엄마를 힘들게 하네, 그런 생각만 들었다. 그간 엄마가 제사를 해 온 이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갑자기 돌아가신 아빠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도 컸지만 혹시나 나를 비롯한 자식들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길까, 두려운 마음에 안 하기가 어려웠다는 것을(대부분의 제사가 이런 이유 탓에 이어지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내가 나서 엄마를 돕는 것도 아니면서 '제사에 가지 않는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제사란 무엇인가. 망자를 기억하는 날이 아닌가. 추모의 날이다. 그러기 위해 형식적으로 제사를 열고 음식을 차리는 준비 과정이 있는 거였다. 그렇다면 제사란 형태 없이 어떻게 망자를, 아빠를 추모할 것인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이기에 이런 상상을 해봤다. 베란다 창문을 열고 아빠 잘 계시냐고, 그곳은 어떠냐고, 동갑내기 친구 시아버지와는 잘 만나셨냐고 등등의 안부만 전해도 되는 것인가. 뭔가 아쉬움이 남았다.  

고민 끝에 나는 동네 절로 갔다. 올해 성인이 된 큰아이가 20개월 무렵부터 다녔던 어린이집 옆에 있는 작은 사찰이다. 우리 가족이 무시로 드나들었던 길이다. 종교가 불교는 아니지만, 엄마가 절에 다녔던 영향으로 절이란 공간이 그다지 낯설게 느껴지진 않았다. 지난해 큰 아이가 수능을 볼 때도 부디 무사히 시험을 잘 치르길 바라는 마음으로 혼자 기도를 하러 갔던 게 생각났다.

헌데 절에 사람이 없었다. 고양이 한 마리도 없었다. "계신가요?" 두어 번을 외쳤을 때쯤 스님이 나타났다. "법당에서 기도를 좀 할까 하는데 초를 구입하려고요." 스님은 가끔 이렇게 와서 기도를 하고 가느냐고 물었다. 딱 한 번뿐이었지만 그렇다고 했다. 초를 사고 공양금을 냈다. 법당 안은 깜깜했다. 불을 켤까 하다가 말았다. 자연의 빛에 의지해서 절을 올렸다. 나만의 제사였다. 

사실 10년 넘도록 엄마 집에 아빠 제사를 갈 때마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상에 가득한 음식들을 보는 순간부터 그랬다. "뭘 이렇게 많이 했어?" 엄마에게 말이 퉁명스럽게 나갔다. '수고스럽게 이걸 어떻게 다 했느냐'는 말은 한 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하지 말란 일을 기어코 하고야 마는 엄마가 그냥 보기 싫었다. 제사 후에 음식을 함께 나눠 먹어야 하는데 나는 빨리 집에 오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마음이 편한 제사는 단 한 번도 없었다.

법당에서 나 혼자 치르는 제사는 달랐다. 엄마가 고생해서 차린 제사상을 안 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좋았다. 홀가분했다. 마음도 편했다. 화가 나지 않으니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아빠에게 하고 싶은 말도 다 했다. 원망의 말 보다는 안부와 당부가 많았다. 어색했지만 집에서 제사할 때는 한 번도 내뱉지 않았던 말들이었다. 진즉 이렇게 하면 좋았겠다 싶을 만큼.

다만 혼자인 건 아쉬웠다. 다음에는 남편과 아이들도 함께 와야지. 언제, 어디서든 돌아가신 날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시간을 갖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도 알려주면서. 그러니 훗날 엄마에게도 그러면 된다고 말해줘야지.

절 입구에 있던 부처님 상. ⓒ최은경

기도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사찰 입구에 서 있는 작은 부처님 웃음이 내 마음에 전해졌다. 마치 "잘 왔고 잘 했다"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이런 걸 염화미소라고 하던가. '말로 통하지 아니하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 일'. 응답을 바란 것은 아니었을 텐데 부처님께 두 손을 모아 합장을 했다. 감사하다면서. 그리고 엄마의 건강을 빌었다. 

집에 돌아와 엄마에게 사진을 보내며 절에서 추모 시간을 가졌다고 했더니 좋아하셨다. 평소 내가 절에 다니길 원하셨던 터라 더 그러셨던 것 같다. 오랜만에 내 목소리를 들은 아빠도... 좋으셨을까. 좋으셨겠지모. 평소 당신이 원하던 다정한 딸의 목소리인데 말해 뭐해.

*칼럼니스트 최은경은 편집기자로 일하며 두 딸을 키우는 직장맘입니다.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성교육 대화집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일과 사는이야기를 담은 에세이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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