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기순, "도박으로 전 재산 날리고 필리핀 잠적…母 '죽지 말라' 붙잡아" 오열 ('특종세상')

[스포츠한국 이유민 기자]
한때 전성기를 누리던 개그맨 황기순이 필리핀 원정도박으로 모든 것을 잃은 뒤, 긴 시간 속죄와 버팀의 삶을 이어온 사연을 털어놨다.
19일 MBN 시사/교양 '특종세상'은 유튜브 채널을 통해 지난 2024년 9월 19일 방송된 '특종세상' 653회 '23년째 거리에서 속죄 중인 황기순의 사연은?' 편 영상을 공개했다.
영상에서는 황기순은 폭염이 이어진 거리 공연장 한복판에서 자선행사 진행자로 분주하게 뛰어다녔다.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을 정도로 행사장을 챙기며 정신없이 움직였고, 오랜 시간 이어온 재능 나눔 활동에 누구보다 진심인 모습으로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그의 선행이 처음부터 박수를 받은 것은 아니었다. 주변에서는 한때 "외국에서 안 좋은 일이 있었던 것을 희석하려고 이런 일을 하는 것 아니냐"는 시선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기사 역시 그런 프레임으로 쏟아졌지만, 황기순은 그조차 자신이 감당해야 할 몫으로 받아들였다. 그렇게 장장 23년 동안 행동으로 진정성을 증명해 왔다.

오랜 일정 끝에 집으로 돌아온 황기순의 일상은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집 안에는 가족사진이 놓여 있었지만, 함께 사는 가족의 온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아들의 사진을 바라보며 "예전에는 '아빠' 하며 애교도 많았는데 이제는 많이 컸다"며 웃어 보였지만, 그 말 속에는 떨어져 지내는 시간을 견디는 아버지의 쓸쓸함이 짙게 배어 있었다.
올해 결혼 20년 차인 황기순에게는 48세에 얻은 귀한 외동아들 동현이가 있다. 장식장에는 개그맨으로 받은 상보다 선행으로 받은 표창들이 더 많이 자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화려한 흔적들 이면에는 너무나 큰 추락의 기억이 남아 있었다. 1980년대를 풍미하며 광고까지 휩쓴 인기 개그맨이었던 그는 한순간에 인생이 뒤집혔다.
황기순은 어린 나이에 갑작스럽게 인기를 얻으면서 주변 사람들과 돈을 주고받는 일을 그저 놀이처럼 여겼다고 돌아봤다. 처음에는 10만 원, 20만 원, 50만 원 정도의 가벼운 판돈이었지만, 어느 순간 그 선을 넘었다. 스트레스를 푼다는 명목으로 시작한 도박은 중독이 됐고, 결국 필리핀 원정도박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사건으로 이어졌다.
당시 그는 "내가 한국에 어떻게 돌아가나, 사람들이 돌을 던질 것 같았다"고 털어놨다. 이어 "어디 가서 마이크를 잡아, 어떻게 방송국을 기웃거리냐. 나는 끝났다고 생각했다"고 말해, 추락 직후의 절망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전 재산을 잃고 노숙자 생활까지 하며 도피하던 시절, 그는 자신이 더 이상 대중 앞에 설 수 없는 사람이라고 여겼다.

벼랑 끝의 그를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게 만든 것은 동료 연예인들의 손길이었다. 귀국을 위한 차비를 마련해주고, 끈질기게 설득해준 동료들 덕분에 겨우 돌아올 수 있었다는 것. 귀국 후 1년 가까이 집에만 틀어박혀 지냈던 그는 생계를 위해 나이트클럽 무대에 서기 시작했다. 첫 무대에서 "열심히 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했을 때 쏟아졌던 큰 박수 소리는 지금도 잊지 못하는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그는 그 박수 속에서 다시 한번 살아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상처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황기순은 여전히 혼자 밥을 먹는 일이 많다고 했다. 밖에서 혼자 식사하면 누군가가 필리핀 도박 이야기를 꺼낼까 두렵고, 이미 자신이 미안함을 알고 있는 일을 타인의 입을 통해 다시 듣는 순간 견디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특별한 약속이 없으면 외출보다 집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는 쪽을 택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가족사 역시 황기순에게 깊은 흔적으로 남아 있다. 모든 것을 잃었던 시기에 그는 이혼의 아픔까지 겪었다. 이후 지금의 아내를 만나 늦은 나이에 아들을 얻었지만, 현재는 떨어져 지내는 '기러기 아빠'의 삶을 살고 있다. 집 안을 정리하고 아들 방을 청소하는 그의 손길에서는 "아빠가 그래도 이렇게 가끔 정리해주는 게 아이에게 조금이나마 좋지 않을까"라는 미안한 마음이 묻어났다.

특히 아들과의 전화 통화 장면은 뭉클함을 안겼다. 황기순은"아빠 보고 싶지?", "먹고 싶은 거 말해봐"라며 조심스레 말을 건넸고, 무심한 듯하던 아들은 잠시 뒤 다시 전화를 걸어 "나 아빠 사랑해하는 거 까먹었어. 사랑해"라고 말했다. 그 한마디에 황기순은 금세 풀어진 얼굴로 벅찬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아들이 성인이 됐을 때 아빠가 반성하는 의미로 쉽지 않은 일을 꾸준히 해왔다는 걸 알면, 용서를 구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고 밝혔다.
그는 지금도 3개월에 한 번씩은 꼭 아들을 만나러 간다고 했다. 시장에서 반찬거리와 식재료를 사서 캐리어에 미리 챙겨 놓는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멸치, 삼계탕 재료, 간식, 농구를 좋아하는 아들을 위한 물건까지 하나하나 준비하는 모습에서는 일상 전체가 아들 중심으로 움직이는 아버지의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황기순은 "내가 일곱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못 받은 것들이 있다. 그래서 더 잘해주고 싶다"고 털어놨다.
그의 곁을 지켜준 건 현재의 가족만이 아니었다. 둘째 누나는 혼자 사는 동생이 걱정돼 수시로 반찬을 들고 집을 찾았다. 누나는 긴 기러기 생활을 걱정하며 "식구들 없이 혼자 있는 게 얼마나 외롭고 힘든 건데"라고 안타까워했다. 그러자 황기순은 "외로울 새도 없이 바쁘게 지낸다"고 답했지만, 그 말 속에서도 스스로를 다잡는 애써 밝은 태도가 읽혔다.

무엇보다 가장 가슴 아픈 대목은 어머니의 이야기였다. 누나는 황기순이 사고를 친 뒤 어머니가 담배꽁초를 주워 다니며 아들의 빚을 조금이라도 갚아보려 했다고 전했다. 그는 "담배꽁초 하나에 네 빚 100원씩 갚아 달라고 하셨다"는 말은 황기순을 끝내 울게 만들었다. 아들을 한 번도 원망하거나 손가락질하지 않았던 어머니는 늘 그를 "아가"라고 불렀고, "죽지 말아야 된다"고 붙잡아준 존재였다고 했다. 황기순에게 어머니는 자신을 수렁에서 건져낸 마지막 끈이었다.
그를 지탱해준 또 다른 인연도 있었다. 오랜 동료 이용식은 황기순이 필리핀에서 돌아온 뒤 사람들 시선이 무서워 밖으로 나오지 못하던 시절을 떠올렸다. 황기순은 이용식이 호텔 앞으로 나오라고 했던 일을 기억하며, 당시 형을 만나러 갔다가 가방 안에서 현금 200만 원이 들어 있는 봉투를 발견했다고 말했다. 이용식은 "네가 미안해할까 봐 직접 주는 말도 못 했다. 나오면서도 더 가져왔어야 했나 싶었다"고 털어놨고, 황기순은 그 돈을 빚 갚는 데 요긴하게 썼다고 고백했다.
현재 황기순은 전국 곳곳의 무대를 가리지 않고 오르며 살고 있다. 전북 전주에서는 8년째 시골 장터 노래 경연 프로그램 진행을 맡고 있었고, 무대 환경이 열악해도 애정만큼은 남달랐다. 하모니카 연주를 하는 어르신을 챙기고, 무대 밖에서도 참가자들을 세심하게 배려하며 '전북의 송해'라는 별명에 걸맞은 존재감을 보여줬다. 퇴근길에는 팬미팅을 방불케 하는 인사를 받으며, 여전히 현장에서 살아 있는 사랑을 확인했다.

그럼에도 황기순은 자신이 평생 갚아도 모자를 빚을 지고 산다고 말했다.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켰고,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준 일을 잊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바쁘게 살고, 더 열심히 뛰며, 자신에게 남은 시간을 채워가고 있는 것이다.
방송 말미 그는 담담하지만 무겁게 진심을 꺼냈다. 그는 "사회적으로 무리를 빚고 부끄럽지만, 아들한테 부끄럽지 않은 아빠로 이다음에 눈을 감고 싶다"는 고백이었다. 한때 정상의 자리에 올랐다가 가장 깊은 밑바닥까지 떨어졌던 개그맨 황기순. 지금의 그는 다시 웃음을 전하는 사람인 동시에 평생의 반성과 책임을 짊어진 채 하루를 버텨내는 한 사람의 아버지였다.
스포츠한국 이유민 기자 lum5252@sportshank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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