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4.3 이후 세대, 기억을 넘어 다시 살아내기

1. 들어가며
나는 제주4.3을 직접 경험하지 않은 세대다. 총성이 울리던 그 시기에도, 마을이 불타던 순간에도, 가족을 잃은 그 자리에 있지 않았다. 4.3 희생자 유족도 아닌 나에게 4.3은 처음부터 전해 들은 역사였고, 배우고 익힌 역사였으며, 기념일과 추념사를 통해 마주한 역사였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분명히 4.3 이후를 살아가는 세대다. 이 말은 단순히 시간적으로 뒤에 태어났다는 뜻이 아니다. 4.3이 남긴 공포와 침묵, 낙인과 회복, 억압과 복원의 시간 위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의미다. 그래서 4.3은 내게 과거이면서도 동시에 현재다.
지금까지 제주 사회는 4.3을 말할 수 없는 역사에서 말해야 하는 역사로, 다시 기억해야 하는 역사로 옮겨놓기 위해 긴 시간을 싸워왔다. 국가 차원의 진상조사와 공식 사과, 희생자와 유족의 명예회복, 매년 반복되는 추념식, 학교 교육과 다큐멘터리, 문학과 예술 작업 등 제주는 다양한 방식으로 그 싸움을 이어 왔다. 최근 4.3 연구 역시 80주년을 앞두고 기억과 해석을 넘어서는 방향, 기억의 공간성과 수행성, 세대 전승 이후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하고 있다. 즉, 오늘의 4.3 담론은 단순한 진상규명이나 보상, 혹은 기념의 축적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감각 위에서 움직이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의 맥락 위에서 나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고 싶다. "우리는 4.3을 얼마나 더 잘 기억할 것인가만을 묻고 있는 것은 아닌가?". 세대전승, 즉 기억을 이어받는다는 말은 매우 중요하지만 그 말만으로는 무엇인가 부족하다. 기억은 전달된다고 해서 저절로 살아남지 않는다. 기억은 언제나 어떠한 장소와 사람, 관계와 실천에 기대어 존재한다. 그렇다면 4.3 이후 우리와 같은 청년 세대에게 필요한 것은, 기억을 보존하는 일만이 아니라 그 기억이 기대어 설 수 있는 자리를 다시 만드는 일일지도 모른다. 이 글은 바로 그 지점, 곧 기억의 전승과 추념을 넘어 4.3을 어떻게 다시 살아낼 것인가를 묻고자 한다.
2. 4.3은 멀리 있는 과거가 아니다. 우리 삶의 바로 옆에 있다.
4.3을 다시 살아낸다는 말은 우선 4.3의 위치를 다시 바꾸는 일에서 출발해야 한다. 우리는 종종 4.3을 과거의 비극, 제주의 아픈 역사, 기억해야 할 사건이라고 말한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표현이 반복될수록 4.3은 어느새 현재의 삶 바깥으로 밀려난다. 이와 같은 표현들은 4.3과 그 기억들이 '중요하지만 멀리 있는 것' 혹은 '존중해야 하지만 내 일상과는 조금 떨어져 있는 것'으로 굳어지게 만들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4.3은 이러한 방식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4.3은 우리가 살고 있는 마을과 동네, 산과 오름, 길과 들판, 항구와 해안, 집터와 무덤 가까이에 남아 있는 사건이다. 최근의 4.3 관련 연구들이 4.3 기념공간의 장소성과 가능성을 묻고, 해원상생굿과 같은 찾아가는 위령제가 학살터와 동굴, 항구와 마을, 산과 오름을 이동하며 기억을 수행하는 방식에 주목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여기서 말하는 기억은 공간에 각인된 흔적이며, 그 흔적을 다시 현재로 호출하는 행위이다. 특히 해원상생굿 연구는 위령제가 고정된 상징 공간에 머무르지 않고 제주 전역의 서로 다른 폭력의 장소를 찾아 이동해 왔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4.3의 기억이 제주라는 지역, 삶의 현장 전체에 분포해 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지점은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청년 세대에게 매우 중요하다. 지금을 살아가는 청년들은 4.3을 직접 겪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4.3을 삶의 공간과 다시 연결하지 않으면 쉽게 추상적인 역사로만 받아들이기 쉽기 때문이다. 역사 교과서 속의 4.3, 매년 반복되는 기념식 속의 4.3, 누군가의 추억과 증언 속의 4.3은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기억을 넘어서기에 부족하다. 내가 매일 지나치는 길, 내가 알고 있는 마을,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이 이미 4.3의 현장이었다는 감각이 생길 때, 비로소 4.3은 남의 과거가 아니라 우리 삶의 바로 옆으로 다가온다.
오사카라는 공간과의 연결도 여기서 중요해진다. 매년 열리는 위령제와 이번에 처음으로 함께 하게 된 청년들의 심포지엄이 제주가 아니라 오사카에서 열린다는 것은 4.3의 공간성이 제주 내부에만 닫혀 있지 않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는 실제로 4.3의 기억이 제주라는 섬 안에만 머물러 형성된 것이 아니었으며, 일본으로 건너간 제주인들의 삶과 이주, 유족의 조직화와 공동체 활동 속에서도 유지되고 확장되어 온 역사적·시간적 흐름과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4.3의 현장은 제주 안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 현장은 4.3으로 인해 흔들리고 이동한 사람들의 삶이 닿아 있는 곳까지 넓어진다. 제주와 오사카를 잇는 오늘의 이 자리는 공간의 확장이라는 측면에서 기억의 지리와 공동체를 다시 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3. 기억은 존중의 대상이지만, 동시에 비판적으로 다시 물어야 할 대상이기도 하다.
4.3을 다시 살아낸다는 말의 두 번째 의미는, 그것을 단지 잘 보존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비판적으로 다시 바라보는 것과 연결된다. 여기서 비판적이라는 말은 4.3을 부정하거나 희석하자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그것을 보다 더 살아 있는 역사로 남기기 위해 이미 굳어진 설명과 익숙한 서사를 반복하는 것에 안주하지 말자는 의미이다.
4.3은 하나의 단일한 이야기로 정리할 수 없다. 오랜 시간동안 서로 다른 해석과 언어들이 충돌해 왔고, 지금 이 순간에도 4.3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는 여전히 열려 있다. 그렇기 때문에 4.3 이후 세대에게 필요한 것은 '정답을 잘 아는 태도'로 기억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계속해서 질문을 이어가는 태도'일 것이다.
이러한 지점에서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다고 믿는 그 4.3은 어디까지 질문되어 왔는가?"라는 한 가지 불편한 질문과 마주해야 한다. 이 질문은 "우리는 익숙한 서사를 반복하면서도 그 서사가 무엇을 말하지 않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충분히 묻고 있는가?"' "우리는 기억을 존중하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그 기억을 현재의 문제와 연결하려는 시도는 얼마나 하고 있는가?" 라는 질문으로 확장된다.
이러한 질문들을 피하는 순간, 기억은 쉽게 고정된다. 그렇게 고정된 기억은 점점 현재로부터 멀어지고 정리된 과거에 가까워진다. 존중은 남아 있지만, 그것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힘은 약해진다. 결국 기억은 남아 있지만 그 기억이 현재의 삶과 연결되는 방식은 점점 약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4.3을 다시 살아낸다는 말을 4.3을 다시 '비판적으로 읽어내는 일'과 떼어놓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비판은 훼손이 아니라 책임이다.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한 역사 앞에서 다시 멈춰서서 뒤돌아보는 일, 익숙해진 설명을 다시 열어보는 일, 그리고 그 안에서 아직 충분히 말해지지 않은 부분을 발견하려는 시도가 필요하며, 이러한 접근이 4.3을 과거에 가둬지지 않게 하는 방식일 것이다.
특히 청년 세대에게 이러한 태도는 더욱 중요하다. 앞선 세대가 4.3을 말할 수 없는 역사에서 말할 수 있는 역사로 만들어 왔다면, 이제 우리는 그 역사 앞에서 다시 질문을 시작해야 하는 세대인 것이다. 4.3을 단순히 과거의 사건으로 둘 것인지, 아니면 오늘의 사회를 바라보는 하나의 시선으로 확장할 것인지는 결국 지금 세대의 선택에 달려 있다.

4. 기억 이후의 기억, 추념 이후의 위령제
그렇다면 기억을 다시 살아낸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이어야 할까. 나는 여기서 '기억 이후의 기억'이라는 표현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제 4.3에 대한 접근은 단순히 기억을 발굴하고 전달하는 것에서 멈출 수 없다. 중요한 것은 그 기억이 다음 세대의 삶 속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다시 자리 잡고, 어떤 언어와 감각으로 다시 구성되는가이다. 기억은 전해진다고 해서 저절로 살아남지 않는다. 다음 세대 안에서 다시 받아들여지고, 다시 해석되고, 지금의 삶과 연결될 때 비로소 현재의 기억이 될 수 있다.
위령제 역시 마찬가지다. 위령제는 오랫동안 4.3의 아픔을 공적으로 기리는 소중한 장이었다. 그러나 앞으로의 위령제는 단지 정해진 형식을 반복하는 것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위령제는 추모의 자리인 동시에 기억을 지금 여기에서 다시 살아 움직이게 하는 자리여야 한다. 기억은 말로만 지속되지 않는다. 사람이 직접 그 자리에 가고, 몸으로 머물고, 장소를 다시 부르고, 서로의 감정과 생각을 나눌 때 비로소 현재의 삶 속으로 들어올 수 있다. 앞으로의 위령제는 단순한 의례의 의미를 넘어 기억을 다시 현재화하는 실천의 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앞으로의 위령제는 두 가지 과제를 안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기억을 생활세계로 다시 데려오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기억의 주체를 넓히는 일이다. 위령제가 그 공간 안에서만 완결된다면, 청년 세대에게 위령제는 존중해야 하지만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형식으로 남게 될 수 있다. 반대로 위령제가 장소와 일상, 감각과 질문의 언어를 통해 새롭게 구성된다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살아 있는 경험으로 접근할 수 있으며, 이는 곧 기억의 주체를 넓히는 일과 연결된다. 기억은 멀리서 바라보지 않고 각자의 삶 속에서 다시 만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오사카 통국사에서 열리는 이번 위령제와 심포지엄도 그러한 가능성을 품고 있다. 특히 오늘의 심포지엄은 이미 익숙해진 기념을 반복하는 의미를 넘어, 제주 밖 오사카라는 공간에서 재일 제주인들의 기억과 오늘의 청년 세대가 마주하며 4.3을 다시 말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제주와 오사카라는 두 공간은 오랫동안 제주인의 이주와 노동 그리고 생존과 기억을 통해 연결되어 왔고, 4.3 역시 그 연결 속에서 섬 바깥으로 건너가 기억되어 왔다.

5. 기억은 스스로 살아남지 않는다: 기억의 '기댈 곳'에 대하여
내가 이번 발제에서 가장 중요하게 말하고 싶은 것은 '기억은 스스로 살아남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그래서 기억에도 '기댈 곳'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기억을 마치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말한다. "기억을 보존한다, 기억을 전승한다, 기억을 계승한다"는 표현이 그렇다. 그러나 사실 기억은 홀로 서지 못한다. 기억은 언제나 어떤 사람에게 기대고, 어떤 공동체에 기대고, 어떤 장소와 의례, 언어와 관계에 기대어 남는다. 누군가 말해주지 않으면 기억은 사라지고, 누군가 붙들어주지 않으면 기억은 흩어진다. 누군가 계속 돌아보지 않으면 기억은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없다.
이를 기반으로 4.3에 대한 기억에서 필요한 4.3 이후 세대의 역할을 '계승자'라는 말보다 '기댈 곳'이라는 말로 표현하고자 한다. '계승자'는 앞에서 넘겨준 것을 잘 받아 보관하는 사람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다소 제도적이고 수동적으로 들릴 수 있다. 그러나 '기댈 곳'은 다르다. '기댈 곳'에는 관계가 있고, 체온이 있고, 책임이 있다. 누군가 힘들 때 몸을 기대듯이, 기억도 그렇게 기대어 있을 수 있는 자리가 필요하다. 그 자리는 기록 보관이나 기념행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결국 사람과 세대, 공동체가 그 역할을 해야 한다.
'기댈 곳'은 그저 감정적인 은유의 표현이 아니다. 기억은 대체적으로 구체적인 자리와 사람을 통해서 남기 때문에 '기댈 곳'이라는 표현은 4.3이후의 세대가 기억을 다시 살아내게 하는 사회적 조건을 가장 정확하게 드러나게 해준다고 생각한다. 오사카의 4.3 관련 단체가 꾸준히 위령제와 모임을 이어온 것 또한 4.3의 기억이 바다를 건너 다른 삶의 자리에서 기대어 남아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4.3에 대한 청년 세대의 과제는 단순히 4.3을 잘 아는 사람이 되는 것에 있지 않다. 기댈 곳, 4.3이 기대어 설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에 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차원이 포함된다.
첫째, 4.3을 지금 우리의 언어로 다시 말해야 한다. 이미 정리된 공식언어를 반복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오늘의 청년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 오늘의 삶과 연결되는 문제의식으로 다시 풀어내야 한다.
둘째, 4.3의 기억이 머물 수 있는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 제주 안팎의 청년들이 만나고 이야기하고, 마을과 장소를 함께 걸으며, 각자의 삶과 4.3을 연결해 볼 수 있는 공동의 장을 더 많이 만들어야 한다.
셋째, 4.3을 현재의 문제와 연결하는 감수성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 국가폭력, 낙인, 혐오, 침묵, 공동체의 파괴 등의 문제를 오늘날 나타나는 다른 방식의 문제로 나타나고 혹은 반복되는 상황 속에서 과거와 현재의 문제를 연결한다면, 4.3의 기억은 비로소 현재의 윤리로 다시 이해하고 새로운 시각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기댈 곳'이 된다는 것은 기억을 대신 짊어진다는 뜻이 아니다. 기댈 수 있게 한다는 것은 기억이 계속 호흡할 수 있는 자리를 내어주는 일이다. 누군가의 말이 사라지지 않도록 들어주는 일, 누군가의 아픔이 박제되지 않도록 현재의 질문과 연결하는 일, 그리고 과거의 사건을 오늘의 삶 속에서 계속 다시 불러내는 일과 같은 기억을 넘어 다시 살아내는 여러 행동과 과정들을 이행하는 것이 4.3 이후 세대가 감당해야 할 가장 중요한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6. 4.3 이후 세대의 기억을 넘어 다시 살아내기 위한 과제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4.3을 다시 살아낸다는 것은 단순히 과거를 잘 기억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4.3을 삶의 자리에서 다시 만나고, 익숙한 서사를 다시 질문하며, 그 기억이 기대어 설 수 있는 관계와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일과 연결된다. 결국 중요한 것은 4.3을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느냐가 아니라, 그 기억과 어떤 방식으로 함께 살아가느냐이다. 이제 질문은 조금 더 분명해진다. 4.3 이후 세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 과제를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제시한다.
첫째, 4.3을 삶의 공간 속에 다시 위치시키는 일이다. 내가 사는 지역과 동네, 내가 밟고 있는 땅이 이미 4.3의 흔적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을 감각하는 것, 그리고 제주 안에서든 오사카처럼 제주 밖의 삶의 터전에서든 4.3의 기억이 구체적인 삶의 자리와 연결되어 있음을 다시 확인하는 것이다. 4.3이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과 맞닿아 있는 역사라는 감각이 있을 때 비로소 기억은 추상적인 지식이 아니라 삶의 문제로 다가올 수 있다.
둘째, 4.3을 비판적으로 다시 묻는 일이다. 이는 이미 굳어진 설명만을 되풀이하지 않고 그 안에 여전히 남아 있는 미해결의 질문들을 꺼내는 일을 의미한다. 국가와 폭력, 공동체와 침묵, 저항과 낙인의 문제를 오늘의 시선으로 다시 사유하고, 4.3이 단지 과거의 사건인지 아니면 지금의 사회를 바라보는 하나의 시선이 될 수 있는지를 끊임없이 묻는 태도가 필요하다. 질문받지 않는 기억은 쉽게 고정되지만, 다시 질문되는 기억은 현재와 연결되며 살아남을 수 있다.
셋째, 4.3의 기억이 기대어 설 수 있는 자리가 되는, 자리를 만드는 일이다. 이는 기억을 단순히 보관하는 것을 넘어 그것이 계속 살아 있을 수 있도록 붙들어주는 사람과 관계, 공동체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기억은 저절로 유지되지 않는다. 누군가가 듣고, 말하고, 함께 머물고, 다시 불러낼 때 비로소 살아남는다. 이러한 맥락에서 청년 세대는 단순한 계승자로 남아 있지 않고 기억이 머물 수 있는 자리이자 다음으로 건너갈 수 있는 다리가 되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앞으로의 청년 세대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자, 반드시 감당해야 할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7. 나가며
4.3은 충분히 기억되어 왔다. 그러나 기억되었다는 사실만으로 4.3이 살아 있는 기억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살아 있는 기억은 늘 현재의 자리에서 다시 불려 나와야 하고, 다시 질문되어야 하며, 다시 기대어 설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4.3 이후 세대의 과제를 전승이라는 단어만으로는 다 설명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지 이어받는 것이 아니다. 기억을 다시 살아내는 것이다.
다시 살아낸다는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4.3을 내 삶의 바깥이 아니라 바로 옆에 두는 일, 익숙한 서사에 안주하지 않고 다시 질문하는 일, 그리고 기억의 기댈 곳이 되어주는 일이다. 그것이 가능할 때 4.3은 현재를 비추는 역사로 남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오사카에서 열리는 이번 심포지엄 역시 그러한 의미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제주와 오사카, 과거와 현재, 유족 세대와 청년 세대가 만나 4.3을 다시 말하는 이 자리는 기억의 다음 자리를 함께 묻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결국 질문은 하나로 모인다. 우리는 4.3을 얼마나 더 잘 기억할 것이며, 그 기억을 어떻게 다시 살아낼 것인가?
이 질문이 지금 우리 청년이 당면한 4.3의 중요한 과제이다. 이 질문에서 청년, 즉 4.3 이후 세대는 이제 기억의 관람자가 아니라 기억의 기댈 곳이 되어야 한다. / 제주4.3청년위원회 손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