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일보가 걸어온 길] 정론직필 74년 외길 …격동의 시대 호남 역사 산증인
2015년 호남 최초 2만호 발행
지역 목소리·시대의 진실 기록
호남예술제 71년·예향 42주년
문화 불모지에 예술 터전 마련
포털 등 뉴미디어 핵심 언론 성장
발로 뛴 탐사보도 잇단 기자상

광주일보는 ‘불편부당의 정론을 편다. 문화창달의 선봉에 선다. 지역개발의 기수가 된다’는 3대 사시(社是)를 걸고 격동하는 현대사를 헤쳐 오면서도 지역민의 목소리를 대변해 왔다.
광주일보는 지난 2015년 5월 28일 지령(紙齡) 2만호를 발행하고, 2022년 창간 70주년을 맞이하는 등 호남 지역 최초 기록을 연일 갈아치우는 등 호남의 역사 그 자체를 써 내려가고 있다.
◇74년 역사를 호남과 함께= 광주일보는 1952년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시절부터 태동했다. 1952년 2월 11일 광주일보의 뿌리인 옛 전남일보가 타블로이드판 2개 면 첫 호를 창간호로 발행한 것이 시작이었다.
창간호는 당시 사회·정치 상황에 맞춰 1면 대부분을 판문점 휴전회담 기사로 채웠으며, 총 2000부 인쇄돼 광주 시내는 물론 전남 지방 곳곳에도 배포했다. 발행 부수는 창간 3개월만에 5000부로 늘면서 광주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옛 전남일보는 1958년 5월 1일부터 지방지 최초로 매일 4개면 발행에 들어갔으며, 1959년 1월부터는 월 2회 휴간하던 정기휴간제를 폐지하고 연중무휴로 신문을 발행했다.
광주일보의 또 다른 뿌리인 옛 전남매일신문은 4·19혁명 직후인 1960년 9월 26일 창간했다.
1980년 신군부의 언론 통폐합 조치를 내리자, 두 신문은 ‘광주일보’라는 제호 아래 한 몸이 됐다. 광주일보는 옛 전남일보의 법인설립 등기일(4월 20일)을 창간일로 삼았다.
광주일보가 걸어온 74년 역사에는 한국 현대사와 호남의 역사가 오롯이 녹아 있다.

언론이 탄압받던 유신 시대에도 펜촉은 무뎌지지 않았다. 유신 정권이 1974년 10월 25일 긴급조치 1호를 내리고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는 상황에서도 광주일보는 기자 41명이 뜻을 모아 언론자유 수호선언을 결의했다.
1980년 5·18 민중항쟁 때는 5월 21일부터 열흘동안 신문 발행이 중단되는 등 탄압을 받았으나, 같은 해 6월 2일 ‘아, 광주여’(옛 전남매일신문), ‘무등산은 알고 있다’(옛 전남일보) 등 제목의 기사를 내 한 맺힌 지역민의 목소리를 대변했다. 이어 1989년 ‘5·18-9년’ 시리즈를 47회에 걸쳐 보도했고, 1990년 1월에는 ‘5·18 9년, 광주항쟁의 숨결을 찾아서’ 연재로 한국기자상을 수상하는 등 심층 보도에 앞장섰다.
최근까지도 광주일보는 역사적인 순간을 기록으로 남기고 지역민 목소리를 지면에 반영했다.
세월호 침몰 참사 현장에서 유가족들의 슬픔과 제도 개선 목소리를 전했으며, 박근혜 대통령부터 윤석열 대통령까지 퇴진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현장 열기를 글과 사진으로 기록했다. 또 광주시 동구 학동 참사와 서구 화정동 신축아파트 붕괴 사고, 서울 이태원 참사,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광주대표도서관 붕괴사고 등 비극의 현장을 지면에 생생하게 담았다.

지난 1960년 4월 23일부터 9회 연재된 ‘光州학생 4·19 발자취’ 기획물은 광주에서의 4·19 전개과정과 뒷얘기들을 기록한 것으로 현대사 현장에서 지역민들의 목소리를 담아낸 역사적 기록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5·18민중항쟁을 다룬 기획 ‘5·18 -9년’은 1989년 1월 25일부터 7월 12일까지 총 47회를 게재하며 5·18 진상 규명에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수백회씩 연재한 대형 기획연재로 한국 신문사에 큰 족적을 남기기도 했다. 지난 1973년 9월 1일부터 1975년 8월 15일까지 2년 동안 ‘광복 30년’ 기획물을 553회에 걸쳐 연재했으며, 1975년 12월 1일부터 1977년 7월 21일까지는 역사기획물 ‘義兵列傳(의병열전)’을 439회에 걸쳐 연재했다.
지역 발전 기수(旗手)로서의 역할에도 충실했다.

언론 통폐합 조치 이후의 첫 기획연재물인 ‘榮山江을 살리자(45회)’는 제 5공화국 들어 심리적 절망에 빠진 지역민들을 위해, 영산강 개발을 지역 발전의 계기로 삼자는 취지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또 ‘온누리안 리포트-국제결혼 다문화가정’, ‘고마워요 당신의 땀방울-외국인 노동자의 삶과 꿈’, ‘함께 열어요 우리의 미래 - 다문화가정 2세들의 꿈·희망 대안찾기’ 등 다문화사회 기획물을 연재하면서 국제엠네스티 언론상을 수상하면서 시대의 흐름을 따라 지역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제시하는 기획물도 써왔다.
최근에도 광주일보는 대규모 연속 탐사보도 ‘광복 80주년 되짚어본 광주·전남 아·태유적’, 기획보도 ‘물길 끊긴 어도(魚道), 생태계도 끊겼다’, 심층 보도 ‘특수학교 학생 전쟁같은 등·하교’ ‘지방의원 공약 추적단’등 기자들이 발로 뛰며 현장의 경험을 생생하게 담은 연속 보도로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을 비롯해 한국기자상, 민언련 올해의 좋은 보도상을 잇따라 수상했다.

1970년대에는 아직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던 남도 판소리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남도창’(南道唱·1973년·26회) 기획물을 비롯해 사상 최초의 전문 종교물인 ‘천년가람(千年伽藍)’, 역사탐구시리즈 ‘백제의 숨결’ 등 호남의 역사를 기록하는 기획물을 썼다.
광주일보는 광주지역 최초의 사설공립도서관인 남봉도서관(옛 전일도서관)을 개관하고 광주 최초 사설미술관인 남봉미술관(옛 전일미술관)을 열어 지역민에게 문화·예술을 전파하는 데 앞장섰다.
올해로 71회를 맞는 광주일보 주최 ‘호남예술제’는 지역 문화예술계의 역사로 평가받는 예술 꿈나무들의 등용문으로 자리잡았다. 호남예술제는 특별한 문화 행사가 적었던 1970년대만 해도 온 지역민들이 함께하는 문화 축제였다. 1970년 열린 제15회 호남예술제 개막식에는 무려 10만명의 인파가 광주공설운동장에 모여들 정도였다.
지난 2013년에는 창간 61주년을 맞아 문화예술잡지 ‘예향’을 복간, 21세기 새로운 문화 트렌드와 콘텐츠를 소개하며 지역 내 수준 높은 문화 예술 담론을 펼치고 소통하는 역할을 주도하고 있다. 이밖에 3·1 절 전국마라톤대회 등 전국적인 체육 행사를 통한 지역 인재 육성에도 힘을 보태고 있다.
광주일보는 급변하는 언론·미디어 환경에 맞춰 뉴미디어 시대를 선도하고 있기도 하다.
광주일보는 1971년 4월 24일 정오를 기점으로 ‘전일방송’ 첫 전파를 송출하면서 지역민들에게 바르고 빠른 뉴스, 공정한 논평을 제공했다. 야구 중계방송이나 각종 문화 프로그램은 지역에 부족했던 문화 수요를 충족시켰다. 1970년대 전일방송의 공개방송이 열렸던 광주공설운동장에는 수만 명 인파가 운집하기도 했다.
광주일보는 정보 전달의 정확성과 신속성을 높이기 위해 지역언론 중 일찍이 컴퓨터식자시스템(CTS)을 도입했고, 1996년에는 최첨단 컬러 윤전기를 도입해 독자들의 눈높이에 걸맞은 신문을 제작했다. 1994년 4월에는 전면 가로쓰기로 신문을 제작해 독자 편의성을 증진했고, 1996년 6월부터 인터넷 광주일보(홈페이지) 서비스를 시작하며 디지털 시대에 발맞췄다.
지난해에는 포털사이트 다음(카카오)의 신규 지역대표 언론사로 선정됐으며, 2017년 개설한 광주일보 유튜브 채널은 누적 조회수 3600만 회를 넘기며 뉴미디어 시대에서도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
/유연재 기자 yjyou@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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