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회장은 '보스턴다이내믹스'로 순환출자 깰 수 있을까[김보형의 뷰파인더]
정 회장 지분 가치 6조원 웃돌아
순환출자·상속세 고민 한꺼번에 털어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올해 비전으로 ‘피지컬(Physical) AI’를 제시할 때만 해도 이 정도 파급력을 예상한 전문가는 드물었다. 피지컬 AI는 자동차·로봇처럼 현실의 하드웨어가 스스로 판단하고 움직이는 인공지능(AI) 기술을 말한다. 정 회장은 올해 1월 5일 영상으로 공개된 신년 좌담회에서 “데이터와 자본, 제조 역량을 모두 갖춘 현대차그룹에 AI는 충분히 승산 있는 게임”이라고 강조했다.
정 회장의 피지컬 AI에 대한 자신감은 이튿날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6’ 미디어데이에서 드러났다. 현대차그룹의 로봇 자회사 보스턴다이내믹스가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 ‘아틀라스’ 차세대 모델을 공개한 것. 관절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고 사람처럼 행동할 수 있는 휴머노이드의 등장에 전 세계가 환호했다. 현대차그룹은 단순 로봇 시연에 그치지 않고 2028년부터 미 조지아주 메타플랜트아메리카(HMGMA)의 부품 분류 공정에 아틀라스를 배치하고 2030년부터는 부품 조립으로 작업 범위를 확대하는 등 구체적인 실용화 계획까지 제시했다. 지난해 말 29만6500원으로 마감한 현대차 주가는 아틀라스 효과로 올 들어 최고 68만7000원까지 올랐다. 현대차는 1974년 기업 상장 이후 51년 만에 시가총액 100조원도 돌파했다.
기업가치 4년간 24배 ‘껑충’
현대차그룹의 기업가치를 단숨에 끌어올린 보스턴다이내믹스는 1992년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의 로봇과학자 마크 레이버트 교수가 설립한 회사다. 2족, 4족 보행 로봇 분야에서 세계적인 기술력을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으며 2013년 구글에 인수됐다. 2017년엔 손정의 회장이 이끄는 일본 소프트뱅크그룹 품에 안겼다. 로봇 개 ‘스팟’ 등으로 유명세를 탔지만 수익성에 물음표를 던지는 회의론도 많았다.
하지만 정의선 회장은 하드웨어 제조 경쟁력을 갖춘 현대차그룹이 로봇에서 기회를 찾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정 회장은 2019년 그룹 타운홀 미팅에서 “미래 현대차그룹 사업의 20%는 로보틱스가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현대차그룹은 2021년 소프트뱅크로부터 보스턴다이내믹스 지분 80%를 인수하며 휴머노이드 시장에 진출했다. 당시 현대차(30%), 현대모비스(20%), 현대글로비스(10%) 등 핵심 계열사와 함께 정 회장이 사재를 들여 지분 20%를 확보해 주목을 받았다.
보스턴다이내믹스는 아틀라스 공개 이전인 지난해 이미 30조원에 육박하는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다. 현대글로비스가 지난 3월 제출한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이 회사는 작년 8월 보스턴다이내믹스에 891억2615만원을 추가 출자해 지분율을 10.95%에서 11.25%로 확대했다. 지분율이 0.3%포인트 늘어난 것을 역산하면 현대글로비스 추가 출자 당시 보스턴다이내믹스의 기업가치는 29조7000억원으로 추산된다. 2021년 인수 당시 평가한 기업가치 1조2482억원(11억 달러·당시 환율 기준)에 비해 24배 이상 커졌다.
아틀라스 효과로 올 들어 보스턴다이내믹스의 기업가치는 이전보다 훨씬 높아졌다고 투자은행(IB) 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현대차 주가가 작년 말보다 70% 가까이 오른 점을 감안할 때 보스턴다이내믹스의 몸값은 최소 50조원 이상을 웃돌 것이란 시각이 많다. 일부 증권사는 “보스턴다이내믹스가 2030년 연 3만 대의 아틀라스를 판매하고 휴머노이드 시장도 커질 것”이라며 기업가치를 100조원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순환출자·상속세 한번에 해결
보스턴다이내믹스는 현대차그룹이 자동차 메이커를 넘어 피지컬 AI 기업으로 변신했다는 상징과 함께 그룹의 숙제인 지배구조와도 연결돼 있다. 현대차그룹은 주요 대기업 중 유일하게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를 갖고 있다. 그룹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현대모비스에 대한 정의선 회장 지분율은 0.33%에 그친다. 순환출자 구조를 해소하려면 기아(18.10%)와 정몽구 명예회장(7.47%) 등이 보유한 현대모비스 지분을 매입해야 한다. 현대차그룹 계열사 주가가 오르면서 기아가 보유한 현대모비스 지분을 사들이는데만 6조원 이상이 필요하다. 정 명예회장은 현대차 지분 5.6%도 보유하고 있다.
1938년생으로 올해 88세인 정몽구 명예회장의 현대모비스, 현대차 지분 상속세도 변수다. 상속세 최고세율(50%)과 최대주주 경영권 프리미엄(20%)을 감안하면 상속세율은 60%에 달한다. 두 회사 지분을 상속받는 데만 5조원에 달하는 상속세를 내야 한다. 정 회장이 상속과 순환출자 구조를 해소하려면 11조원가량이 필요한 셈이다. 정 회장이 보유한 현대글로비스(20%), 현대오토에버(7.3%)는 물론 비상장사인 현대엔지니어링(11.7%) 지분을 매각하더라도 손에 쥐는 돈은 5조원 수준이다.
그런데 보스턴다이내믹스가 30조원 수준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으면서 정의선 회장이 보유한 지분(유상증자 이후 22.6%) 가치가 6조원대로 껑충 뛰었다. 보스턴다이내믹스만 상장하면 단숨에 상속과 순환출자 구조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된 셈이다.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상장 후 기업가치가 50조원에 달할 경우 정 회장의 지분 가치는 11조원에 달한다. 현대글로비스 등 다른 계열사 지분을 팔지 않고도 그룹 장악에 문제가 없다.
현대차그룹도 보스턴다이내믹스의 미국 나스닥 시장 상장을 포함한 기업공개(IPO)를 다각도로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장재훈 부회장 직속으로 기업 인수합병과 사업 포트폴리오 조정 등을 추진할 사업기획 태스크포스(TF)를 꾸린 걸 놓고도 현대차그룹이 보스턴다이내믹스 상장과 지배구조 개편의 밑그림 그리기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내 주주환원책 고민해야
IB업계에서는 현대차그룹이 보스턴다이내믹스 로봇의 미국 정부 조달 시장 진출 등을 감안해 나스닥 상장을 추진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일각에서는 보스턴다이내믹스 지배구조를 감안할 때 국내 상장이 아니더라도 중복 상장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최대주주는 미국 투자형 지주사인 HMG글로벌로 56.5%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HMG글로벌의 주주는 현대자동차(49.5%), 기아(30.5%), 현대모비스(20%)로 구성됐다. 정의선 회장(22.6%)과 현대글로비스(11.25%) 지분까지 합치면 현대차그룹의 지분율이 90%를 넘는다. 우량 자회사가 별도 상장을 추진한다는 점에서 중복 상장 비판을 완전히 피하기는 쉽지 않다는 얘기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현대차, 기아, 현대모비스, 현대글로비스 주주 입장에서는 주주가치가 훼손됐다고 받아들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보스턴다이내믹스 수익성 확보도 정 회장의 과제로 꼽힌다.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작년 매출은 1501억원으로 전년보다 30% 가까이 늘었지만 당기순손실은 5284억원에 달했다. 손실 규모도 전년보다 20% 증가했다. 현대차그룹 인수 이후 보스턴다이내믹스의 누적 손실은 1조원을 웃돈다. 아틀라스 상용화를 위해선 추가 연구개발(R&D) 투자도 해야 한다. 결국 상장을 통한 자금 확보가 필수적이라는 얘기다.
정 회장이 순환출자 구조 해소와 상속세 해결을 위해 보스턴다이내믹스 상장 카드를 활용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다만 보스턴다이내믹스의 나스닥 상장으로 유입되는 자금이나 지분 가치 상승에 따른 이익을 현대차 등 국내 모회사 주주들과 나눌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중복상장 지적이나 해외 상장에 따른 국부 유출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김보형 기자 kph21c@hankyung.com
Copyright © 한경비즈니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럼프 “이란 화물선에 발포, 기관실 구멍냈다”…이란 “보복할 것”
- “라떼 맛집” 트윗 한 줄 올렸더니…경기 외곽 카페에 아랍 왕자가? [포스트 바벨의 시대]
- 머스크는 왜 ‘X’에 천문학적 비용을 쏟아붓나 [포스트 바벨의 시대]
- “이런 경험은 처음”…하룻밤 새 ‘로컬’이 ‘글로벌’로 [포스트 바벨의 시대]
- 호르무즈 안개 속 2차 휴전협상?…코스피, 전쟁 공포 이겨낼까
- 삼성 노조 겨냥?…李 "나만 살겠다는 과한 요구, 다른 노동자 피해"
- "우리도 더 달라"...SK하이닉스, 성과급 '후폭풍'
- Z세대 10명 중 6명 “취업 정보? 유튜브로 찾아요”
- 반도체 '솔드아웃' 선언...삼성전자, 역대급 '자신감'
- 신세계는 왜 '그룹 콘트롤타워' 경영전략실장 자리를 비워두게 됐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