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끼, 겨우 만들 줄 알게 됐지만…한 끼만으론 헛헛한 세상인 걸요

김영원 기자 2026. 4. 20. 07:06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입맛을 당기는 구수한 냄새가 지난 15일 서울 노원구 다운복지관 식당을 채웠다.

중요한 사업은 '발달장애인 중장년 및 1인 가구 요리 한끼 사업'의 줄임말이다.

그래서 최대한 구하기 쉬운 재료로 가장 쉽게 요리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복지관이 없다면 어떨 것 같냐고 묻자 "재미없죠. 친구 있으면 어울리면 재밌는데"라고 말한다.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 순간] 중증 지적장애인의 ‘나 혼자 산다’
허정미씨가 지난 15일 오후 서울 노원구 다운복지관에서 ‘중요한 사업’ 수업에 참여해 대파를 다지며 웃고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입맛을 당기는 구수한 냄새가 지난 15일 서울 노원구 다운복지관 식당을 채웠다. ‘중요한 사업’ 요리 수업이 열렸기 때문이다. 메뉴는 된장찌개와 햄계란볶음밥. 된장찌개는 시판 양념을 물에 넣고 끓이다가 두부와 대파를 넣으면 끝이다. 볶음밥은 재료를 각각 볶아 비비면 완성된다. 요리 경연 방송에 나오는 화려한 레시피와는 정반대다.

중요한 사업은 ‘발달장애인 중장년 및 1인 가구 요리 한끼 사업’의 줄임말이다. 혼자 살거나 나이가 많은 발달장애인들에게 자립 기술을 알려주기 위해 시작됐다. 그래서 최대한 구하기 쉬운 재료로 가장 쉽게 요리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대파를 써는 법, 파 기름을 내는 이유 등 과정마다 친절한 설명이 붙는다. “간장은 원료가 뭘까요?”, “햄은 무슨 고기로 만들까요?” 퀴즈도 재미를 돋운다. 허정미(62)씨와 친구들은 완성된 음식을 각자 가져온 반찬 통에 담아간다. 허씨는 “음, 맛있다. 오늘 저녁은 이거 먹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허정미씨가 지난 14일 오후 서울 노원구 자택에서 반려견 루이를 품에 안고 앉아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허정미씨가 지난 15일 오후 서울 노원구 다운복지관에서 ‘중요한 사업’ 수업에 참여해 만든 햄계란볶음밥과 된장찌개.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허씨는 20여년째 다운복지관에 다니는 독거 중증 지적장애인이다. 요리 수업 설거지도, 체육 시간 뒷정리도 먼저 소매를 걷어 올리며 솔선수범하는 그는 제과제빵 자격증을 따서 직접 만든 빵을 복지관 친구들에게 나눠주는 게 소원이다.

허정미씨가 지난 14일 낮 서울 노원구 다운복지관에서 딸기 케이크를 만들고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허정미씨(왼쪽)가 지난 14일 오후 서울 노원구 다운복지관에서 친구 정미라씨와 오미자 에이드를 마시며 웃고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허정미씨가 지난 14일 오후 서울 노원구 다운복지관에서 체육활동을 하고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2026년 세계다운증후군의 날 기념 장애인, 비장애인 함께 하는 걷기 행사’가 열린 지난 11일 서울 노원구 공릉동근린공원에서 허정미씨(왼쪽)가 정미라씨와 부침개를 나눠 먹고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복지관에선 친구들을 도와주지만, 허씨는 사실 혼자 살기가 벅차다. 지난 14일 방문한 허씨 자택에는 퀴퀴한 곰팡내가 진동했다. 허씨가 널어놓은 빨래는 탈수가 되지 않아 물이 뚝뚝 떨어졌다. 서울주택도시공사(SH) 전세 임대료도 석달치가 밀렸고 정수기엔 거미줄이 쳐졌다. 주방 세제가 없어 설거지를 못 한 허씨는 “돈 들어오면 세제 사러 가야 해요”라고 했다. 통장에 남은 돈은 3957원. 수급비는 매달 20일에 들어온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허씨의 어려움이 휑한 집 안을 채웠다.

지난 14일 오후 서울 노원구 허정미씨 자택 베란다에 허씨가 널어놓은 빨래에서 물이 떨어지고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지난 14일 오후 서울 노원구 허정미씨 자택 싱크대의 모습. 이날 허씨는 주방 세제가 없어서 설거지를 마치지 못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지난 15일 오후 서울 노원구 허정미씨 자택에 이불이 정리되지 않은 채 펼쳐져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허씨는 “활동지원사가 있으면 좋겠어요”라고 했다. 그러나 신청 과정이 복잡하고 오래 걸리는 데다, 지원 대상 연령은 65살 미만까지다. 도움받기 어려운 사각지대에 허씨가 놓여 있는 것이다. 반려견 ‘루이’만이 허씨에게 유일한 온기가 돼준다. 집에선 주로 방바닥에 앉아 루이를 안고 텔레비전을 본다. 복지관이 없다면 어떨 것 같냐고 묻자 “재미없죠. 친구 있으면 어울리면 재밌는데”라고 말한다. 허씨가 모아놓은 영수증들 사이엔 복지관 친구들과 찍은 사진이 껴있다. 집에서 함께 밥을 먹고 싶은 사람은 “딸”이다. 딸도 중증 지적장애인이지만 취직이 가능한 수준이라 함께 살면 수급비가 줄어들어 따로 산다.

허정미씨가 지난 14일 오후 서울 노원구 자택에서 텔레비전 가요 프로그램을 시청하고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허정미씨가 지난 14일 오후 서울 노원구 자택에서 이날 복지관에서 만든 딸기 케이크를 먹고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허정미씨가 지난 15일 오후 서울 노원구 자택에서 딸의 중학교 졸업 앨범에서 딸 사진을 찾고 있다. 허씨는 한참 동안 앨범을 뒤적였지만 결국 딸의 사진을 찾지 못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완전히 고립된 독거 발달장애인의 상황은 어떨까. 이병철 다운복지관 지역사회통합지원부 부장은 “심한 발달장애인은 스스로 라면도 못 끓여 먹고 복지관도 못 온다”며 “혼자 생을 마감하면 누가 장례를 치러줄지 알 수도 없어 지역사회 이웃과의 일대일 결연이 절실하다”고 했다. 실질적 관심과 지원이 경제적 결핍과 사회적 고립을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분들을 발굴하려면 수시로 가정방문과 실태조사가 병행돼야 하지만, 현재 인력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독거 발달장애인의 삶이 고립이 아니라 자립이 될 수 있도록 공공과 민간이 힘을 합쳐야 하는 이유다. 이 부장은 “사회와의 단절이 깊어져 의미 있는 활동을 권해도 밖으로 나오길 거부하는 분들도 간혹 있다”며 “독거 발달장애인 가구의 고립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만큼, 이들의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지원 체계가 조속히 마련되길 바란다”고 정부에 당부했다.

‘2026년 세계다운증후군의 날 기념 장애인, 비장애인 함께 하는 걷기 행사’가 열린 지난 11일 서울 노원구 경춘선숲길에서 혼자 걷는 허정미씨 뒤로 벚꽃잎이 떨어지고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2026년 4월 20일자 한겨레 사진기획 ‘이 순간’ 지면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