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안씨 생일에 형 없는 한국 찾은 동생] “형, 한국에서 같이 일하자고 했잖아”

"거대한 기계부터 눈에 들어왔어요. 거기서 형 혼자 일했다니…. 가슴이 너무 아팠습니다."
지난 10일 경기도 이천의 한 자갈공장. 스물한 살 응우옌 반 뚜씨는 형이 숨진 자리를 한동안 바라보다 흐느꼈다. 그는 한 달 전인 3월10일 컨베이어벨트 끼임 사고로 숨진 베트남 이주노동자 뚜안(23)씨의 첫째 동생이다. 뚜씨는 기계 아래 하얀 꽃다발을 내려놓고, 향 대신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날은 형의 스물세 번째 생일이었다.
형과 마지막으로 얼굴을 본 건 3년 전, 형이 한국으로 떠나던 날 공항에서였다. 그 뒤로는 가족 영상통화로만 안부를 나눴다. 동생인 뚜씨 역시 일본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였기 때문이다.
뚜씨는 형이 목숨을 잃은 일터를 두 눈으로 확인하고 회사에서 어떤 설명이라도 듣기 위해 지난 9일 가족 대표로 한국을 찾았다. 14일 오후 경기도 오산 소금꽃나무 사무실에서 만난 뚜씨는 인터뷰 내내 형의 휴대전화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뚜안씨가 귀향할 때 함께 전해진 유품이었다.
그날 현장에 없던 두 가지
형이 일하던 현장에서 뚜씨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건 거대한 컨베이어벨트였다. 뚜씨는 "이런 위험한 기계를 다루는 줄은 전혀 몰랐고, 무엇보다 혼자 일했다는 게 마음이 아팠다"며 "형이 쓰러진 위치를 아무리 살펴봐도 사고가 어떻게 난 건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뚜안씨는 맞교대로 하루 12시간씩 일했다. 야간조였던 3월10일 새벽, 컨베이어벨트가 잠시 멈추자 설비를 점검하러 혼자 내려갔다가 기계에 끼여 숨진 채 발견됐다. 기계 점검은 2인1조가 원칙이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기계는 가동 중이었는데 최소한의 안전장치인 덮개도, 비상정지장치도 없었다. 홀로 작업했던 탓에 사고 즉시 도와줄 사람조차 없었다.
뚜씨는 형의 숙소 쓰레기통에서 찢어진 모자 하나를 발견했다. 형이 가족과 통화할 때마다 쓰고 있던 모자였다. 뚜안씨는 매달 월급에서 15만원 정도만 남기고 나머지를 전부 고국으로 보내면서도 힘든 내색 한번 없었다. 뚜씨는 "악착같이 아껴 살았을 모습이 떠올라 슬펐다"고 말했다. 뚜안씨는 사고 열흘 전 고향에 다녀가면서 부모님께 새 옷을 사드리고 집에 필요한 물건들도 장만했다.
3천만원 들여 건너온 한국,
3년 만에 멈춘 삶
뚜안씨는 6남매의 가장이었다. 건설노동자였던 아버지는 추락 사고 이후 거동이 불편해졌고 어머니도 몸이 편찮아 홀로 생계를 책임질 수 없었다.
첫째였던 그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한국행을 택했다. 입국을 위해 2년간 준비하며 약 2천800만원을 들였다. 한국어 교습비와 서류 처리 비용, 보증금 등 고용허가제(E-9) 비자 발급에 드는 비용이다. 가족들은 넉넉지 않은 형편에도 그의 한국행을 도왔고, 본인도 빚을 졌다.
뚜씨는 "형이 한국에서 돈을 벌 수 있다는 소식에 가족 모두가 기뻐했다"고 회상했다. 이미 형에게 큰 비용이 들어가자 동생은 한국 대신 일본으로 향했다. 그렇게 두 형제는 3년 전 흩어졌고 뚜씨는 "얼굴 한번 보지 못한 게 가장 속상하다"고 말했다.
"내년에 같이 일하기로 했는데"
형 없는 한국땅 밟은 동생
일본 치바현의 한 농장에서 일하던 뚜씨는 어머니에게 형의 부고를 처음 듣고 믿지 못했다. 형과 함께 일했던 동료에게 다시 한번 확인했다. 사실이었다. 곧바로 비행기 표를 끊었고, 일본에서의 생활을 정리한 채 베트남으로 귀국했다. 이젠 그가 가장 역할을 해야 했다.

또 다른 '뚜안씨들' 슬픔 나눠
고향까지 번진 애도 물결
뚜안씨는 사망 2주 만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 어머니는 비보를 듣고 쓰러졌고, 지금도 치료를 받고 있다. 소식은 한국에 있는 베트남 이주노동자들의 SNS를 통해 퍼졌고, 그를 알지 못하던 이들까지 경기의료원 빈소를 찾았다. 고향에서도 이름 모를 이웃들이 장례에 함께하며 추모 발길이 이어졌다.
뚜씨는 한국에 머무는 동안 다른 이주노동자 유족을 찾아 위로를 건넸다. 공교롭게도 형과 한국어 이름 표기가 같은, 지난해 10월 법무부 단속 과정에서 추락해 숨진 베트남 유학생 고 뚜안씨의 부모였다. 그는 "상황은 다 다르지만 타국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은 같다"고 말했다.
산업안전보건법 39건 위반
사망 38일 만에 사과한 회사
뚜안씨 사망 이후 경기지방고용노동청 성남지청은 근로감독을 실시해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사항 39건을 적발했다. 그중 26건에는 시정명령을, 14건(시정명령 1건 포함)에는 과태료 1억2천300만원을 부과했다. 회사는 2인1조 원칙을 지키지 않았고, 기계 안전장치도 일부 설치하지 않았다. 유해위험방지계획서도 작성하지 않았으며 안전보건표지도 부착하지 않았다. 채용교육은 물론 정기·특별교육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관리감독자 업무에서도 안전보건 관련 사항이 빠져 있었다.
사고 수습을 미루던 사쪽은 뒤늦게 기계에 안전장치를 설치했고 사망 38일 만인 지난 17일 유족과 만나 합의했다. 중앙산업 대표는 이날 뚜씨를 만나 "다시는 중대재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한 재발방지 대책을 수립하고 안전을 최우선에 두겠다"며 사과했다. 내국인 노동자와 같은 기준으로 배·보상하기로도 약속했다. 뚜씨는 다음날인 18일, 집으로 돌아갔다.
합의는 이뤄졌지만 뚜안씨의 죽음이 드러낸 '위험의 이주화'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유족을 대리한 소금꽃나무 등 시민단체는 고용허가제 사업장 전반에 대한 근로감독과 사업장 이동의 자유 보장을 요구하며 고용허가제 개선을 촉구했다.
형에게 전할 말이 있냐고 묻자 뚜씨는 "마음이 힘들어 말이 나오지 않는다"며 고개를 떨궜다. 잠시 뒤 잠긴 목소리로 한국 정부를 향해 입을 열었다. "형처럼 한국에 와서 일하는 모든 이주노동자가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으면 좋겠습니다. 형과 같은 일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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