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의 시대, 김상유가 건네는 묵직한 침묵의 위로
현대미술 김상유 작가 탄생 100주년 전시
종로구 석파정 미술관에서 전시 중
800평 규모 전시실... 150여 점 작품 공개
실명 위기에도 붓 놓지 않던 예술혼 전시

현대미술의 요란한 문법 대신 묵직한 침묵을 선택했던 화가, 김상유(1926~2002)가 탄생 100주년을 맞아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종로구 석파정 서울미술관에서 지난 4월 1일 개막한 ‘쉽게 닳지 않는 사람’은 반세기 넘게 이어진 그의 예술 세계를 150여 점의 방대한 규모로 펼쳐 보이며 관람객들을 명상과 침잠의 세계로 초대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1990년 제2회 이중섭미술상 수상 직후 열렸던 회고전의 규모를 훌쩍 뛰어넘는 대규모 전시라는 점에서 개막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800평 규모의 전시실을 가득 채운 연대기별 구성은 한국 현대 판화사의 지평을 연 초기 동판화부터 정교한 목판화, 그리고 노경(老境)에 이르러 무위자연의 경지를 보여주는 유화까지 작가의 삶을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특히 실명 위기 속에서도 끝내 칼과 붓을 놓지 않았던 그의 집념은 ‘도파민’과 ‘자극’에 매몰된 동시대인들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전시의 주요 볼거리 중 하나는 그룹 BTS의 RM(김남준)이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공개하며 대중적 재조명의 계기가 된 ‘대산루’ 시리즈다. 고요하면서도 단정한 조형 언어가 돋보이는 이 작품은 작가가 전국의 오래된 건축물을 직접 찾아다니며 발견한 ‘한국의 시간’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화면 속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노인의 모습은 세상의 시름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리듬을 지켜온 작가 자신의 투영이자, 우리가 잃어버린 삶의 중심을 상징한다.
전시가 성사되기까지의 비하인드 스토리도 흥미롭다. 잊혀 가던 김상유를 다시 불러낸 것은 컬렉터들의 지극한 ‘외사랑’이었다. 서울미술관 설립자 안병광 회장은 작가의 마지막 전시 작품 대부분을 구매하며 100여 점의 컬렉션을 완성했고, 김용원·박주환·이우복 등 1세대 후견인들의 헌신적인 지원이 쌓여 이번 100주년 전시의 기반이 됐다.
스타 작가 위주로 편중된 미술 시장에 색다른 질문을 던지는 이번 전시는 오는 8월 17일까지 이어진다. 빠르게 흘러가는 시대, 한 예술가가 평생을 바쳐 구축한 예술적 성취와 마주할 수 있는 자리다. 성인 관람료 2만원. 매주 월·화요일은 휴관한다.

☞ 김상유는
1926년 평안남도 안주 출생. 연세대학교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중학교 영어교사로 재직하던 중 30대 중반의 나이에 독학으로 화가가 됐다. 1960년대 초 국내 최초로 동판화를 시도하며 한국 현대 판화사의 지평을 열었다. 1970년 제1회 서울국제판화비엔날레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아르헨티나, 이탈리아, 일본 등 국제 무대에서 활동했으며, 1980년대 중반부터는 유화작업을 시작해 1990년 제 2회 이중섭 미술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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