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수의 파워인터뷰 | 권오현 오렌지플래닛 창업재단 이사장] “나는 이상한 삼성맨… 주말 쉬고 칼퇴근, 위임 철저”


코스피 지수가 5000을 웃돌면서 세상은 온통 주식 이야기다. 벼락부자와 벼락 거지의 경계에 서서, 세상의 희비는 오직 두 부류의 사람에게만 허용된 것 같다. ‘삼성전자 주식’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미리 사둔 티켓으로 제때 온 기차를 타고 즐기는 사람과 차표도 없이 빈 장바구니를 들고 배회하는 사람. 위로부터의 시그널에 맞춰 젊은 개미는 빚내서 집 대신 주식을 사고, 노인은 현금 다발을 들고 증권사 창구에서 발을 구른다.
반도체 주가가 폭등하는 시기에 반도체 신화 권오현 전 삼성전자 회장(이하 권오현)을 만났다. 그가 ‘다시, 초격차’라는 책을 낸 지 한 달 만이었다. 반도체 사이클이 슈퍼 모멘텀을 맞았지만, 앞날은 더욱 안개 같은 상황에서 권오현이라는 이름은 소환 가치가 꽤 높았다. 1985년 이병철 회장 시절, 미국 삼성반도체 연구소로 입사해 ‘메모리 반도체(이하 메모리) 세계 1위’를 만들었고, 2017년 삼성전자 회장으로 승진해 사상 최대 실적을 끌어낸 설화적 인물.
권오현은 현재 오렌지플래닛의 창업재단 이사장으로 스타트업 지원과 멘토링을 하고 있다. 이병철, 이건희, 이재용으로 이어지는 삼성가 오너 사이클에서 유일한 전문 경영인으로 ‘초격차 전략’의 토대를 닦은 그에게 반도체의 미래와 리더의 클래스에 대한 속 깊은 이야기를 듣고자 대화를 청했다.
이란의 호르무즈해협 봉쇄로 교착 상태가 깊어지는 가운데, 강남 테헤란로의 초고층 빌딩 회의실로 권오현이 들어섰다. 분홍색 티셔츠에 스키니한 바지를 입은 이 젠틀한 신사는 살면서 한 번도 인터뷰를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인터뷰를 왜 안 하셨어요.
“할 이유를 못 느꼈어요. 할 말은 실적으로 다 하고 있었고. 만나면 개인적인 얘기를 물을 텐데, 그건 내 프라이버시니까.”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깜짝 놀랐다. 초집중하지 않으면 맥락을 놓칠 것 같아 눈을 치켜뜨고 귀를 곤두세워야 했다. 청취 그 자체에 신경을 쓰느라 기진한 나와는 대조적으로, 그는 느긋하고 주도적이었다.
‘다시 초격차’를 들고 나오셨어요. 8년 만입니다.
“처음 ‘초격차’ 쓰고 ‘리더의 질문’까지 후속편으로 써냈어요. 그걸로 끝날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요(웃음). 현직에서 물러나서 보니 나라도 어렵고 삼성전자도 어려워요. 그 모습을 보고 궁금했어요. ‘왜 어떤 기업은 나빠지고 어떤 기업은 살아남는지.’ 한동안 그 답을 찾느라 몰두했고 이 책이 그 결과예요.”
처음 ‘초격차’라는 말을 듣고 신선하게 압도됐던 때가 엊그제 같습니다. 이제 그 말은 재계의 보통명사가 됐어요.
“주변에서 상표등록하라고도 해요(웃음). 초격차는 삼성 내부 회의에서 자주 쓰던 말이었어요. 격차를 벌리는 정도로는 안 된다, 그냥 갭이 있는 정도로는 안 된다. ‘클래스가 다르다.’ ‘레벨이 다르다.’ 엄청난 격차를 만들어 내자는 전략이었어요.”
그 결과가 현재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만들어 냈겠지요. 반도체 분야에서 슈퍼모멘텀이 왔고 주식시장의 개인투자자는 흥분 상태입니다. 이 사이클이 장기적으로 유지될 수 있을 것인가가 모두의 관심사예요.
“반도체는 앞으로 10년간은 성장할 거예요. 이번에 좀 비정상적으로 오르긴 했지만. 여하튼 호황기예요. 조정이 와도 예전처럼 크게 널뛰기하진 않을 겁니다. 왜냐? 과거엔 플레이어가 많았고 누가 투자할지 몰랐지만, 지금은 시장에 남은 플레이어가 많지 않아요. 워낙 연구개발(R&D)에 돈이 많이 들고 대규모 투자가 있어야 가능한 업종이라 뛰어들기 쉽지 않아요.”
메모리를 양궁에, 비메모리를 클레이 사격에 비유한 대목이 절묘했어요.
“우리나라 사람이 양궁을 잘하지요. 메모리는 명확한 과녁에 쏘는 양궁 같은 기술이에요. 정밀한 미세 공정으로 불량률을 최소화해서 계속 10점을 쏘는 식이죠.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메모리는 읽고 쓰는 기능이 기본이에요. 목표가 뚜렷합니다. 많은 이가 잘 모르고 ‘우리도 중앙처리장치(CPU), 비메모리를 키워야 한다’고 소리를 높이지만, 쉽지 않아요. 우리가 10년 전, 20년 전에 인공지능(AI) 칩이나 스마트폰 칩(AP)이 필요할 걸 어떻게 알았겠어요?
내가 1997년에 처음 비메모리 사업부 책임을 맡았을 때 총매출액이 10억달러(당시 환율기준 약 9530억원) 정도였어요. 내려올 때 150억달러(약 14조원)쯤 됐죠. 그 정도 성장도 자그마치 10년이 걸렸어요. 그만큼 어려워요. 명문대 수석하고 싶은 건 모든 이의 희망 사항이죠. 그런데 비메모리 잘되는 나라를 보세요. 절대 강자는 (엔비디아, 애플이 있는) 미국이에요. 비메모리는 움직이는 과녁을 상대로 해요. 미국만 유일하게 시스템을 계속 정의하면서 가고 있어요. 지난 20년간 미국은 움직이는 과녁을 쏘는 클레이 사격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 사업은 일본도 유럽도 어려워요.”
파운드리(수탁 생산)의 위상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까요.
“2005년에 내가 파운드리 팀을 만들었을 때, 우리 기술은 대만의 TSMC보다 3세대 정도 뒤처져 있었어요. 지금은 기술 자체로는 비슷해요. 계속 잘해 나간다는 가정하에 TSMC와 삼성은 같이 가야 합니다. 갑자기 ‘내후년에 우리가 TSMC를 이기겠다’, 무리하게 열을 낼 필요 없어요. ‘너도 좀 먹고 나도 좀 먹을게’, 이 정도의 레이스가 좋습니다.”
나라가 인재를 어떻게 쓰고 있는가에 따라 그 나라의 비전과 방향이 달라집니다. 중국의 인재는 공대로, 미국은 법대로, 한국은 의대로 가는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미국은 전 세계의 탤런트를 다 쓸 수 있는 나라예요. 미국 본토의 엘리트는 법대로 간다지만, 외국의 천재는 다 미국에서 창업하려고 몰려가죠. 실리콘밸리는 3분의 2가 이민자고 최고 부자도 다 이민자예요. 일론 머스크도 젠슨 황도 다 이민자잖아요. 중국도 별종이지만, 어쨌든 미국은 ‘안되는 것 빼고 다 하라’는 포용적인 시스템이 떠받치고 있어요. 유럽도 노벨상만 받았지, 20년이 넘도록 새로운 인더스트리를 못 만들었어요. ‘어떤 인재를 키워야 할까?’ 그건 제도가 말해줘요. 한국의 교육 시스템은 유치원 의대반부터 늦은 밤까지 ‘틀리지 않는 기술’만 배우잖아요. 그걸로 어떻게 AI를 이기겠어요?”
자녀는 어떻게 양육하셨습니까.
“우리 딸은 학원에 다니거나 과외를 한 적이 없어요. 그래서 명문대는 못 갔어요(웃음). ‘아빠가 그렇게 교육해서 불행하냐?’ 물었더니 행복하대요. 그럼 된 거예요. 꼭 명문대 나와야 행복한 건 아니니까. 그랬더니 딸이 자기 아이들도 학원을 안 보내요. 그게 맞는 것 같다고. 하지만 자기도 불안하지, 하하. 내가 걱정하지 말라고 했어요.
10년 지나면 인구가 줄어서 서울 소재 대학에 전국 학생 다 채우고도 남을 거라고. 지방대는 학생을 모시러 다니겠지요. 아니, 대학이라는 게 사실 큰 의미가 없어요. 농담으로 내가 건강 잘 지켜서 손주 창업이라도 도와주겠다고요. 진심은 그거예요. 사회적 비용만 늘어나고 투자수익률(ROI)이 안 나오는 이 입시 교육, 안 틀리는 기술 좀 그만 가르치라고요.”
삼성이야말로 안 틀리는 기술을 잘 익힌 사람이 모인 곳이지요. 모범생만 모이는 곳 아닙니까.
“그런데 모범생으로 교육받은 사람은 시키는 일은 잘하지만, 스스로 하는 일은 잘 못해요. 삼성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우리 사회가 딱 그렇습니다. 패스트 팔로어 방식으로 트레이닝받은 사람은 실수나 낭비가 거의 없어요. 그렇게 낭비 요소를 줄이는 전략으로 한국이 선진국 문턱까지 올 수 있었죠. 하지만 세상이 바뀌니 다들 헤매고 주춤거려요. 한국인이 갑자기 머리가 나빠져서? MZ 세대(밀레니얼+Z 세대·1981~2010년생)가 게을러서? 아닙니다.”


어떤 제도가 최적의 타이밍을 효과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을까요.“옛날 카피 시대에는 ‘소니를 이기자’ ‘인텔을 이기자’ 같은 분명한 타깃이 있었어요. 지금은 어떤 기술이 어디서 튀어나올지 몰라요. 그래서 무조건 선점이 중요합니다. 선점하려면 제도가 행위를 막아서면 안 돼요. 중국도, 실리콘밸리도 열정적으로 연구해요. 잠도 안 자고 그 일만 합니다.
반면, 우리는? 근무시간을 법으로 52시간 규제해 놓으면 못 당해요. 52시간 제도는 블루칼라에게는 맞아요. 지식재산(IP), 콘텐츠, 반도체 산업은 달라요. 유연하게 가야죠. 1년 세게 일하고 한 달 휴가 줘도 됩니다.”
AI는 어느 정도 쓰세요?
“나는 실무를 하는 편이 아니라 간단한 것만 써요. 내가 말하는 건 AI 시대에 맞는 제도예요. 우리 제도가 미국만큼 좋진 않아도, 일본이나 유럽보다는 잘 만들어낼 수 있어요. 제도는 상대적인 거라 조금만 고쳐도 성과가 나요. 그러면 1등은 못 해도 2등은 쉽게 할 수 있습니다. 골프에서 남이 더블 보기 칠 때 나는 보기만 쳐도 되거든요. 너무 이상적인 걸 좇을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현재 미국은 트럼프 리스크로 전 세계를 곤혹스럽게 하고 있어요. 실리콘밸리, 빅테크, 유니콘은 잘나가지만 기업의 금융화 현상은 심각하며, 40년 동안 사회 인프라와 제조업은 붕괴 일로를 걷고 있습니다.
“맞아요. 그런 어려움을 이용해 트럼프가 갈라치기를 해서 대통령이 됐어요. 하지만 제도가 좋으니 대법관이 막아서고, 트럼프는 2년 뒤면 교체됩니다. 미국 시스템이 다 좋다는 건 아니지만 기업 입장, 경영자 입장에서 보면 상대적으로 가장 나아요.
지난 10년을 봐도, 최근 3년을 봐도 미국만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어요. 10년 전 유럽연합(EU)의 국내총생산(GDP) 총합이 미국하고 같았는데, 지금은 미국이 두 배쯤 될 거예요. EU가 새로운 인더스트리를 못 만드는데 미국은 만들고 있잖아요. 250년간 지속적으로 성장한 유일한 국가가 미국이에요. 제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최강 대국이 됐고, 트럼프 리스크가 심해도 앞으로 30~40년간 미국 위상은 흔들리지 않을거예요. 그 기초가 바로 ‘네거티브 시스템’ 즉 안되는 것 빼고 다 하라는 허용적인 시스템입니다.”
다시 리더 이야기를 해보죠. 스티브 잡스, 일론 머스크, 이병철, 정주영을 노이즈 속에서 시그널을 읽은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런 촉은 어떻게 생깁니까.
“골방에서 면벽하면 도사는 되겠지만, 촉이 좋은 리더는 못 됩니다. 촉은 다양한 사람만나고 세상의 흐름 속에 있어야 생겨요. 흐름을 알려면 내 비즈니스 밖의 사람,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을 자주 만나야 해요.”
골프 선수가 맨날 골프 얘기만 하면 골프 말고 뭘 알겠느냐고 했다. 카피 시대는 이제 지났으니 역사 전공하다가 생물학으로 튀는 서양인처럼 사방으로 열려 있으라고. 최고경영자(CEO)의 통찰력은 ‘누굴 만나는지’ 보면 다 가늠이 되더라고. 그 자신, 회장 된 이후로 주말에 출근을 안 했다고 했다. “주말이면 예술가 만나고 PD 만나러 다녔어요. 기자하고 정치가만 빼고는 다 만나고 다녔어요.”
놀랍습니다. 삼성을 포함해 주요 그룹 임원 중 주말에 출근 안 하는 사람은 없을 텐데요.
“나는 제너럴한 쪽은 아니었어요(웃음). 좀 이상한 사람이었죠. 그런데 어떻게 안 쫓겨났느냐? 나는 적자 사업부를 많이 맡았어요. 그렇게 발령을 많이 받았어요. R&D하다가 메모리 하다가 적자 사업부를 맡은 거예요.
다행히 나는 겁이 좀 없었어요. ‘쫓겨나도 굶어 죽긴 하겠어’ 이런 베짱이랄까. 무엇보다 호기심이 시키는 대로 했더니, 턴어라운드가 됐어요. ‘주말도 안 나오고 칼퇴근하고, 저 사람 맨날 노는 거 아니야?’ 주변에서 의심해도, 일단 일이 잘되니 용납이 됐어요. 전교 1등 하면 아무도 안 건드리잖아요(웃음). 그런데 그건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직원을 잘 키워서예요. 기독교도 예수님이 뛴 게 아니라 제자가 뛰어서 지금까지 왔잖아요.”
하지만 위임만큼 어려운 것도 없지요.
“나는 아랫사람 볶아치러 회사 오지 말라고 경고했어요. ‘냉장고 정리하고 유통기한 검사하고 싶으면, 집에 가서 해라. 회사 오면 직급에 걸맞은 일을 해야지.’ 불안하다고 자기가 지식과 정보를 독점하면 아랫사람이 크질 못해요. 카피 시대엔 틀리는 게 죄악이니까 상사한테 깨지면 큰일 나는 줄 알았어요. 안 됩니다. 실패하더라도 시켜야죠.
실수하더라도 그 부하 직원이 실력이 늘잖아요. 패스트 무버 시대에는 부하 직원과 경쟁하면 안 돼요. 경쟁사와 경쟁하고 미래와 경쟁해야죠.”
경영자 시절 내린 가장 의미 있는 결정과 실패는 무엇이었습니까.
“미래에 투자한 일은 다 성공했어요. 3D NAND(반도체를 옆이 아닌 수직으로 쌓아 올려 용량을 획기적으로 늘린 기술)도 삼성이 독점하다 다른 기업이 쫓아왔어요. 그때 또 한 번 다음 단계로 판을 바꿨어요. 진짜 1등이 되려면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나만이 할 수 있는 걸 찾아야 합니다. 내가 더 잘하는 걸 하면 돈은 벌겠지만, 피곤하게 살아야 해요(웃음).
삼성디스플레이 시절에 대형 액정 디스플레이(LCD) 사업을 축소하고 모바일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로 전환한 것도 기억나요. 흑자 사업이었지만, 쇠퇴하는 사업으로 판단되면 접어요. 이익이 나고 있다고 해도 호통을 쳐요. ‘당신 아들이 여기서 일하게 할 거냐’고. 내리막길을 걷는 사업은 접고 성장 산업으로 돌려야 해요. 미래가 중요해요. 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사실 지금 반도체, 방산, 조선 말고는 업황이 좋은 게 없잖아요. 새로운 시도를 하면서 계속 업을 정의해야 해요. 실패를 자산 삼아서.”
삼성도 고대역폭 메모리(HBM)와 관련해 의미 있는 실패가 있었습니다. 2024년 10월, 3분기 잠정 실적 발표 직후에 반성문까지 쓸 정도로 뼈아픈 실패를 선언했었지요.
“HBM은 내가 대표하던 시절에 만들었어요. 전영현 부회장이 그때 사업부장이었는데 HBM2를 만들어서 엔비디아에 100% 납품했습니다. 그런데 이후 이익률이 떨어지니까 재무적 판단을 해버렸어요. 미래를 준비하지 않는 거죠. 쉽게 말해 자식이 시험 성적 좀 떨어졌다고 아예 공부를 안 시킨 거예요. 결국 HBM은 SK하이닉스에 가서 대박이 났어요. 당장 돈이 안 된다고 버리면 이렇게 뼈아픈 결과를 맞아요. 삼성뿐 아니라 한국의 기업을 보면 지금 잠재성장률이 계속 떨어지고 있어요. 이 사인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지나온 궤적을 돌아보면 후회되는 점은 없는지요. 스스로 운 좋은 인생을 살았다고 생각합니까.
“나는 모범생은 아니었어요. 내가 했던 경영도 삼성의 대표적 경영이라고 생각하면 안 돼요. 나는 어쩌면 이상한 경영을 한 거예요. 열심히 한 사람도 아니었어요. 브레인은 열심히 돌렸지만, 피지컬리(physically) 열심히 한 사람은 아니었어요. 다만 학창 시절부터 ‘틀리면 어떡하지’보다 ‘틀려도 한번 해볼게’ 쪽이었어요. ‘이렇게 하면 더 낫지 않을까요?’ 선생님에게 얘기라도 해보는 아이였죠.
운을 이야기하자면, 1950년생부터 1965년생까지는 다 운 좋은 세대예요. 고속 성장기를 살았으니 진짜 ‘럭키’한 거죠. 그중에서도 나는 더 운이 좋은 사람이었어요. 1975년에 대학을 졸업하고 카이스트 석사로 반도체라는 학문을 처음 배운 거예요. 한국엔 반도체 산업이라는 게 없을 때였어요. 미국 실리콘밸리에 있는 스탠퍼드대로 유학을 한 것도 절묘했어요. 이병철 회장이 1983년에 반도체를 시작하면서, 한국에 반도체를 경험한 사람이 없으니 졸업하자마자 나를 부르셨어요. 그게 다 천운이 아니면 뭐겠어요? 그런 타이밍이 아니었다면 내가 크게 쓰일 수 있었겠어요? 삼성이 그때 반도체를 시작하지 않았으면 나는 미국에서 교수나 하며 늙어갔을 거예요.”
마지막으로 우리에겐 어떤 리더가 필요합니까. 어떤 경영자에게 가장 많이 배우셨어요.
“미래를 생각하는 리더. 진짜 그거 하나예요. 이건희 회장에게 ‘매출 얼마야?’라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어요. 리더가 매출만 질문하면 그 조직은 평생 발전을 못 합니다. 이건희 회장은 ‘앞으로 어떤 미래가 오는지? 뭘 준비해야 하는지? 인재는 어떻게 키울 건지?’ 같은 질문만 집요하게 던졌어요.
그런 질문을 받으면, ‘모르겠다’고는 할 수 없어서, 나는 또 나름의 로직을 치열하게 연구했어요. 내가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어느 타깃을 맞춰야 하는지 정답은 없어요. 계속 시도하고 시스템을 정의하도록, 리더가 길을 열어줘야지요.
실무적으로 조언하자면, 리더는 자기에게 온 공을 빨리 패스해야 합니다. 나는 문자도, 메일도 보는 즉시 답을 줬어요. 공을 갖고 뭉개면 남는 건 번아웃입니다. 메시도 호날두도 전체 경기 중 공 소유 시간은 1분이 채 안 돼요. 오래 갖고 있으면 공격당하고 부상만 잦죠. 결정적일 때 해결사 역할을 하면 됩니다.”
권오현은 초격차의 비밀은 인간 본성에 있다고 했다. 탐험하고 한계에 도전하는 본성이 바로 초격차의 비밀이라고. 그 자신, 적자사업을 맡아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결정을 내렸던 순간이 모여 결단력이 자랐던 것처럼, 과감하게 위임하고 질문하라고. 결국 의미와 흥미, 재미와 보상이 있는 곳에 자석처럼 사람이 모인다는 말에 오래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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