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여편 연극·영화로 변주된 ‘흡혈귀’… ‘드라큘라’ 창조한 브램 스토커
1912년 4월 20일 65세

‘흡혈귀’의 대명사 드라큘라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연극은 1931년 토드 브라우닝 감독 영화 ‘드라큘라’를 비롯해 약 600편 만들어졌다. 아일랜드 소설가 브램 스토커(1847~1912)가 1897년 출간한 소설 ‘드라큘라’가 원전이다.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마법사 사루만을 연기했던 배우 크리스토퍼 리는 젊은 시절 드라큘라 전문 배우로 활동했다. 1958년 영화 ‘드라큐라’를 시작으로 20여 년간 드라큘라를 연기했다. 1960년대 한국 영화 관객은 그를 통해 드라큘라를 접했다. 1959년 서울 중앙극장에서 개봉한 ‘괴인 드라큐라’, 1967년 스카라극장 개봉 ‘드라큐라의 복수’, 1975년 대한극장 ‘돌아온 드라큐라’에서 모두 흡혈귀 드라큘라를 연기했다.



드라큘라는 여러 차례 영화로 만들어졌지만 원작자 브램 스토커는 자신이 만든 드라큘라에 가려 덜 알려졌다. ‘대부’ ‘지옥의 묵시록’의 거장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는 1992년 원작자의 이름을 전면에 내세워 영화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를 감독했다. 게리 올드먼, 위노나 라이더, 안소니 홉킨스, 키아누 리브스, 모니카 벨루치 등 호화 캐스팅이었다.

스토커는 실제 역사와 전설을 토대로 흡혈귀 드라큘라 백작 캐릭터를 창조했다.
“스토커의 소설 ‘드라큘라’는 루마니아 트란실바니아 지방에 전하는 흡혈귀 전설을 토대로 15세기경 루마니아 지방의 왕국이었던 왈라키아의 왕자 드라큘라의 잔학상을 가미한 것이다. 본명이 블라드 테페스인 드라큘라 왕자는 적군 포로 수천명을 말뚝에 박아 처형할 정도로 잔인했다는 기록이 있다. 연극 무대 감독이었던 스토커는 자신이 일하던 극단이 파산하자 전업작가로 먹고 살기 위해 이 소설을 썼다. 어릴 때부터 괴기소설을 즐겨 읽었던 그는 트란실바니아 지방에 대한 여행기와 관련 서적을 뒤져 자료 수집을 한 뒤 드라큘라 백작을 창조했다.”(1997년 5월 1일 자 34면)

스토커는 편지를 주고받는 형식인 서간체로 ‘드라큘라’를 서술했다.
“런던의 젊은 변호사 조너선이 트란실바니아의 영주 드라큘라에게 편지를 받으면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영국에 땅을 사고 싶으니 조너선이 대리인이 되어 달라는 내용이었죠. 조너선에게는 미나라는 아름다운 약혼녀가 있었어요. 드라큘라는 미나가 400년 전에 비극적인 죽음을 맞은 연인 엘리자베스의 환생이라 믿고, 그녀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어 자신과의 사랑을 이어나가기 위한 위험한 계획을 시작해요. 백발에 주름진 노인의 모습이었던 드라큘라는 사람의 피를 마시고 젊음을 얻기 위해 차례차례 희생양을 만듭니다. ‘드라큘라 사냥꾼’ 반 헬싱 교수가 등장하면서 드라큘라를 향한 포위망은 점점 좁혀지고 (…).”(2021년 7월 20일 자 A22면)

브램 스토커의 소설 ‘드라큘라’는 지속적으로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구시대의 몰락과 신질서의 대두를 알리는 심각한 사회소설”로서 “양민의 고혈(膏血)로 연명하는 드라큘라 백작은 병든 귀족 사회를 상징”(2002년 9월 7일 자 D2면)한다고 읽기도 한다. “타자기를 처음 등장시킨 소설이어서 요즘엔 ‘빅토리아 시대의 하이테크 스릴러’라는 평가”(2013년 7월 15일 자 A30면)도 받는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갈 길 먼 종전, 이란 “핵 협상은 나중” 제안에 美 “받아들일 수 없어”
- 밥 먹다 혀 씹으면… ‘가속 노화’ 신호일 수 있다
- 우버 픽업 장소 ‘Curbside’ 대체 어디일까?
- “오늘 뭐 읽었어?” 물으면 아이들이 입을 닫는 이유
- “너무 맛있어서 우리가 다 마셨습니다”… 스위스 와인이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
- 허리 못 숙이던 디스크 환자… 일상 되찾아 준 5분 운동
- 1시간 24분 34초… 드디어 서브스리 문턱을 넘어서다
- ‘일하는 일본’과 ‘싸우는 일본’의 부활… ‘평화주의’ 버린 다카이치의 야망
- 베트남 고속철, 왜 중국 대신 독일일까… 일대일로의 굴욕
- [굿모닝 멤버십] 50년 금기 깬 일본… 세계 무기 시장 진출한 속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