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어떤 병풍의 귀환

허행윤 기자 2026. 4. 20.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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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진에 묻힌 분네 이내 생애 어떠한고/옛 사람 풍류에 미칠까 못 미칠까/천지간 남자 몸이 날만한이 하건마는/산림에 묻혀 있어 지락을 모를건가."

이번엔 병풍이다.

이렇게 수집한 인장으로 '보소당인존'이라는 인보를 편찬해 병풍을 만들었다.

병풍 속의 그림에는 교훈적 의미와 옛사람의 이상과 염원이 서려 있고 멋스러움까지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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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홍진에 묻힌 분네 이내 생애 어떠한고/옛 사람 풍류에 미칠까 못 미칠까/천지간 남자 몸이 날만한이 하건마는/산림에 묻혀 있어 지락을 모를건가.”

조선 초기 문신인 정극인의 가사 ‘상춘곡’은 이렇게 시작된다. 딱 이맘때 읽으면 제격인 운문이다. 그는 세종 때 흥천사 중건의 부당함을 항소하다 충청도로 유배를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평생 지내다 생을 마감했다. 그런 선비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것 중 하나가 풍류였다.

선비들은 멋스러웠다. 풍류를 즐길 줄 알았다. 병풍은 이 같은 분위기를 이끌어 가는 으뜸 장치였다. 그래서 사대부가 머무는 공간에는 대부분 병풍이 둘러져 있었다.

우리의 옛것이 또 귀환한다. 이번엔 병풍이다. 산수화나 붓글씨 대신 다양한 인장을 담았다. 조선 24대 임금인 헌종의 손때가 묻었다. 그동안 미국 코넬대 존슨박물관이 소장해 왔다. (재)문화유산회복재단의 조사 결과 진본임이 최종 확인(본보 16일자 2면)됐다.

정식 명칭은 ‘보소당인존(寶蘇堂印存)’이다. 헌종은 서화와 다양한 인장을 수집했다. 조선 명사의 인장들을 모아 창덕궁 낙선재에 소장했다. 이렇게 수집한 인장으로 ‘보소당인존’이라는 인보를 편찬해 병풍을 만들었다. 하지만 궁궐 내 화재로 소실됐고 고종 연간에 모각된 인장으로만 전해지고 있다.

보소당은 헌종의 서재 겸 휴식을 취하는 공간으로 지어진 창덕궁의 동쪽 건물 편액에 쓰인 이름이다. 원래 보소당이라는 명칭은 중국 청나라 서예가이자 문인인 옹방강(翁方綱)의 당호였다.

병풍은 예부터 바람을 막고 새로운 공간을 만들며 아름다운 장식의 기능도 있었다. 병풍 속의 그림에는 교훈적 의미와 옛사람의 이상과 염원이 서려 있고 멋스러움까지 담겼다. 선현들은 늘 병풍을 뒤로한 채 책과 함께하고자 켜켜이 쌓인 서적과 여러 가지 일상 용구를 그린 책가도(冊架圖)를 방 안에 둘렀다.

이번에 태평양을 건너올 병풍인 보소당인존은 국보급은 아니지만 소중한 자산이다. 앞으로도 나라 밖에서 떠돌고 있는 우리 문화재의 반환을 서두르자. 선현들의 기품과 철학이 담긴 흔적은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할 우리의 자존심이어서다.

허행윤 기자 heohy@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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