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대 노장 딥 퍼플… 머슬카처럼 질주하는 록 사운드

“난 고속도로의 스타니까(I’m a highway star)!”
18일 오후 7시 인천 파라다이스시티 리조트 내 컬처파크. 밴드 딥 퍼플이 대표곡 ‘하이웨이 스타’로 공연 포문을 열었다. 멤버들의 손마디는 굽이굽이 주름졌고, 백발에는 희끗한 세월의 무게가 내려앉았다. 그럼에도 녹슬지 않은 관록의 연주로 질주를 앞둔 8기통 머슬카(고출력 자동차)처럼 공연 분위기를 금세 달궜다. 야외무대에선 인천공항 활주로를 오르내리는 비행기 이·착륙 모습이 보였다. 관객들은 마치 활주로 위 스타라도 된 듯 우렁찬 떼창을 쏟아냈다.
이날 딥 퍼플은 약 1시간 40분간 총 18곡의 라이브 무대를 선보였다. 1999년 트라이포트 록 페스티벌, 2010년 올림픽공원 공연에 이은 16년 만의 내한 무대. 1968년 영국에서 결성된 이 밴드는 지난 반세기 넘게 ‘하드록의 전설’로 불렸다. 1기~4기까지 잦은 멤버 교체에도 2024년 정규 23집 ‘=1’까지 누적 1억장 이상 판매고를 기록했고, 미국 클리블랜드에 있는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이번 내한 직전 밴드가 일본을 찾았을 땐 대학 시절 밴드부에서 드럼을 쳤던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직접 팬을 자처하며 면담을 갖기도 했다.
이번 내한 멤버는 원년 멤버인 이언 페이스(78)와 딥 퍼플 황금기인 2기 보컬 이언 길런(81)을 비롯해 베이시스트 로저 글로버(81)·키보디스트 돈 에어리(78) 등이다. 2022년 합류한 기타리스트 사이먼 맥브라이드(48)를 제외하면 평균 나이 80대인 노장(老將) 밴드다.

관객들의 가장 큰 걱정도 밴드의 ‘건강’이었다. 이날 무대에 선 멤버들이 “(원년 키보드) 고(故) 존 로드를 기린다”고 했을 만큼 초기 멤버 중 일부는 이미 세상을 떠났다. 첫 곡에서 보컬 이언 길런이 마이크를 쥔 손을 부들부들 떨며 노래할 땐 객석에서 “공연 괜찮을까?”란 웅성거림이 흘렀다. 그러나 밴드는 ‘A bit on the side’ ‘Hard Lovin’ Man’ ‘In to the Fire’까지 내리 4곡을 완벽한 연주로 선보이며 그 걱정이 기우였음을 증명했다. 이언의 음색은 전성기 시절보다 가늘어졌어도 여전히 흔들림 없는 음정을 자랑했고, 일부 곡에선 샤우팅 창법과 멋들어진 하모니카 연주를 거뜬히 소화했다. 눈을 질끈 감고 온몸을 쥐어짜듯 노래하는 80대 보컬의 열정에 관객들은 검지와 새끼손가락을 함께 치켜드는 ‘메탈 사인’(Sign of the horns)으로 화답했다.
여전히 날카롭게 벼린 악기 멤버들의 라이브 기량도 압권이었다. ‘Lazy’ ‘Anya’ ‘Uncommon Man’ 등 전설적인 대표곡들이 건장한 2~30대 밴드맨도 다루기 힘든 5~8분짜리 대곡 편곡으로 펼쳐졌다. 박자 감각만큼은 노화를 비켜나갔는지 단 한 치의 오차도 없는 70대 드럼과 80대 베이스의 연주에 관객들은 종종 입을 떡 벌리며 경이에 찬 감탄사를 뱉었다. 기타를 잡을 때마다 객석에서 “어리다!”는 외침이 터져 좌중 폭소를 자아낸 사이먼은 세련된 연주 실력으로 밴드의 시대 격차를 메우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중에서도 MVP는 단연 키보드의 돈 에어리 차지였다. 딥 퍼플 음악 정체성의 주축이자 1970년대 국내 음악계에도 영향을 미친 ‘해먼드 오르간’(Hammond Organ) 소리가 돈의 손끝에서 화려한 글리산도(glissando·건반을 주르륵 내리 긁는 주법)로 재현될 때마다 열띤 환호가 쏟아졌다. 돈은 솔로 무대에서 깜짝 애국가 연주를 선보이기도 했다. 하드록 전설의 반주에 맞춰 “길이 보전하세~”를 떼창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공연 대미는 ‘록 기타의 교본’으로 불리는 ‘Smoke on the water’가 장식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기타 리프(riff·반복 연주 구간)가 들리자마자 공연 중 가장 쩌렁쩌렁한 환호가 터졌다. 국내 베이비 부머 세대들에겐 1970년대 여행지나 해안가 등에서 기타를 ‘와장장’ 쳐대게 만든 당대 청춘의 상징곡이다. 1971년 스위스 몽트뢰 카지노 화재를 주제로 한 가사가 마침 카지노가 위치한 공연장 부지와 묘한 조화를 이뤘다. “나~나나나~”가 반복되는 후렴구로 유명한 ‘Hush’, 각종 광고곡으로 사랑 받은 ‘Black night’ 등 앙코르까지 관객 떼창은 식을 줄 몰랐다. “딥 퍼플”을 연호하는 관객들을 몇 번이나 돌아본 밴드는 “여러분을 사랑한다”(We love you)를 반복해서 외치며 퇴장했다.
이날 공연은 전석 스탠딩석으로 진행됐고, 무대에서 가장 가까운 대신 체력 소모가 심한 일명 ‘펜스석’에는 20~30대 뿐 아니라 50~60대 중·장년층까지 방방 뛰며 장시간 공연을 즐겼다. 멤버들이 직접 사인한 드럼 헤드, 기타 피크를 활용한 키링 등 공연 굿즈는 공연 2시간 전부터 이미 동이 났다. 서울에서 온 대학생 강현구(19)씨는 “멤버들 나이 때문에 오늘이 아니면 다시 보기 어려울 것 같아 무조건 시간을 내서 왔다. 제 또래 사이에서도 전설로 통하는 팀을 직관해 기쁘다”고 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대전 백화점서 옛 연인에 ‘칼부림’ 40대男 체포
- 철거 위기 넘긴 ‘밥퍼’… 동대문구 상대 소송서 최종 승소
- 항소심서 형량 늘어난 윤석열·김건희 나란히 상고... 대법원 간다
- 종합특검, ‘양평고속도로 특혜 의혹’ 백원국 전 국토부 차관 조사
- 검찰, ‘대장동 50억 클럽’ 권순일 전 대법관에 징역 1년 구형
- 대검 “공소취소 특검법, 재판에 부당한 영향”
- 화성 동탄호수공원서 흉기 들고 돌진한 40대 중국인 ‘징역 3년’
- 전원주 “1년 전 치매 초기 진단…자녀에 짐 될까 걱정”
- 조전혁 전 의원, 서울 교육감 예비후보 등록
- [단독] 안덕근이 ‘12·3′ 받은 문자, 2심서 尹 유죄로 뒤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