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십자각] 늑구가 남긴 ‘세 가지 발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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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흐레 만에 끝났다.
17일 새벽 대전 안영 나들목 인근 야산에서 마취총을 맞고 쓰러진 두 살배기 한국 늑대 '늑구'가 다시 오월드로 옮겨졌다.
소동은 가라앉았지만 늑구가 지나간 자리에는 발자국 몇 개가 또렷이 남았다.
마취에서 깨어난 늑구가 마주할 사육장이 어제와 똑같다면 우리가 마주했던 9일은 한바탕 해프닝으로 흩어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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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흐레 만에 끝났다. 17일 새벽 대전 안영 나들목 인근 야산에서 마취총을 맞고 쓰러진 두 살배기 한국 늑대 ‘늑구’가 다시 오월드로 옮겨졌다. 사육장 울타리 밑을 파고 빠져나간 지 9일 만이었다. 소방·경찰·군이 드론과 열화상 카메라까지 동원해 보문산을 훑었다.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었고 늑구의 건강 상태도 정상이었다.
소동은 가라앉았지만 늑구가 지나간 자리에는 발자국 몇 개가 또렷이 남았다. 도시의 불안 위에, 우리의 휴대폰 화면에, 그리고 사육장 흙바닥에. 그 발자국 셋을 되짚어 본다.
가짜 사진 한 장이 첫 번째 발자국을 남겼다. 탈출 당일 아침 늑구가 도심 도로를 어슬렁거리는 사진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퍼졌다. 그럴듯했지만 가짜였다. 횡단보도 정지선이 두 줄로 그어져 있고 이정표 글씨가 어색한, 생성형 인공지능(AI) 특유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문제는 이 사진이 공공기관의 손을 거치며 권위를 얻었다는 점이다. 시민 제보가 검증 없이 소방으로 넘어갔다. 안전 안내 문자가 발송됐고 인근 초등학교는 휴교했다.
가짜가 만든 공포가 진짜 일상을 멈춰 세웠다. 접수된 제보 100여 건 가운데 상당수가 거짓이었고 정작 보문산을 뒤져야 할 인력이 도심을 헤맸다.
두 번째 발자국은 디지털 광장 위에 찍혔다. 한 시민이 만든 ‘어디 가니 늑구맵’은 잔잔한 감동을 줬다. 공식 브리핑과 보도를 짜맞춰 늑구의 동선을 지도에 그리고 허위 신고를 자제해 달라는 카드뉴스까지 손수 올렸다.
그런데 같은 시간 해외 가상화폐 거래소에는 늑구의 영문 이름을 딴 밈코인이 슬그머니 상장됐다. 액수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한 생명의 생사가 오가는 시간을 시세 차익의 재료로 바꾸는 발상이 서늘했다. 같은 사건을 두고 한쪽에서는 연대가, 한쪽에서는 장난이 피었다.
세 번째 발자국은 사육장 흙바닥에서 시작됐다. 시멘트 바닥 위 전기 철조망이라는 시설은 땅을 파는 늑대의 본능을 막지 못했다. 토사가 밀려들자 늑구는 흙을 파헤치고 녹슨 철조망을 찢었다.
문제는 같은 사육장이 그를 다시 맞이한다는 점이다. 오월드는 2031년까지 3300억 원을 들여 사파리 면적을 30% 넓히고 워터파크와 글램핑장 등을 새로 들이는 ‘재창조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설계도에는 면적이 적히지만 흙바닥의 깊이는 적히지 않는다.
마취에서 깨어난 늑구가 마주할 사육장이 어제와 똑같다면 우리가 마주했던 9일은 한바탕 해프닝으로 흩어지고 만다. 출처가 의심스러운 사진 앞에서 한 번 더 멈추는 손가락, 유리벽 너머 동물의 표정을 한 번 더 살피는 눈길, 새 시설의 평수보다 동물이 디딜 한 평을 먼저 헤아리는 셈법. 늑구가 남긴 발자국을 따라갈지 지워 버릴지는 우리 몫이다.

박동휘 기자 slypd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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