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찬구의 스포츠 르네상스] 전쟁과 파괴의 시대에 스포츠가 건네는 지혜
1998년 월드컵 미국·이란의 악수, 북중미 월드컵서 볼 수 있기를

2026년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합동 공습이 이란을 향해 개시됐다. 이란은 중동 지역의 미군 기지들을 향해 미사일과 드론으로 보복했다. 세계는 다시 한번 우리가 얼마나 위태로운 균형 위에 서 있는가를 실감하고 있다. 지금 스포츠를 말하는 것은 어쩌면 사치처럼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인류가 치열하게 싸우면서도 규칙 안에서 서로를 파괴하지 않는 공존의 방법을 배워온 곳이 스포츠였다. 그 경험이 필요한 순간이다.
인류의 역사는 곧 전쟁의 역사다. 투키디데스가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발견한 것은 권력과 공포와 이익이 뒤섞인 인간 본성의 구조였다. ‘강자는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약자는 감내해야 하는 것을 감내한다’는 그의 통찰은 2400년이 지난 오늘의 중동 상황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홉스의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케네스 월츠의 ‘국제 체제의 무정부성’ 등 냉전의 막바지에 국제관계론 강의실에서 배운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의 계보는 이 냉혹한 명제에서 출발한다.
한편 이상주의자들은 다른 답을 추구해 왔다. 칸트는 1795년 ‘영구 평화론’에서 공화주의 국가들의 연방이 전쟁을 구조적으로 억제할 수 있다고 보았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설계된 UN, IMF, WTO 같은 국제기구와 협약들은 바로 그런 이상주의적 기획의 산물이었다. 국가들이 제도와 규범 안에서 협력을 반복하면 상호의존이 깊어지고, 그 상호의존은 전쟁의 비용을 협력의 이익보다 크게 만든다는 믿음이었다. 냉전 종식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구축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기반으로 한 국제 질서는 제도와 규범을 통해 전쟁 없는 시대를 향할 수 있다는 기대 위에 세워졌다.
하지만 자유주의 국제 질서의 설계자였던 미국 스스로가 그 기반을 흔들고 있다. NATO를 흥정의 대상으로 삼고, 국제법의 회색 지대에서 선제 전쟁을 감행하는 트럼프 체제 아래, 조지프 나이가 강조해 온 미국의 ‘도덕적 권위’와 ‘소프트 파워’는 소진되고 있다. 자유주의 국제 질서는 강대국 패권의 이해관계 위에서만 작동한다는 존 미어샤이머의 냉소적 예측은 어느 때보다 설득력 있게 들린다. 패권국 미국이 약자를 무력화하는 현실주의적 국제정치의 전형적 상황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스포츠는 근본적으로 승부에 관한 것이다. 노버트 엘리아스는 인간의 공격성과 전투 본능이 스포츠라는 제도 안에서 정제되는 과정을 문명화의 핵심으로 보았다. 폭력적 감정이 직접적으로 분출되는 대신 규칙이 매개한 경쟁으로 전환되는 것, 그것이 스포츠의 사회적 본질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올림피아 제전 기간 정전(停戰)을 선포했다. 경쟁은 계속하되 죽이지는 않는다. 제도의 틀 안에서 통제된 경쟁을 가능하게 한 것이야말로 스포츠가 인류 문명에 남긴 가장 중요한 유산이다.

1998년 프랑스 리옹. 미국과 이란은 월드컵 조별 리그 최종전에서 맞붙었다. 1979년 혁명과 444일간의 인질 사태 이후 19년간 적대 관계였던 두 나라가 경기 시작 전 뜻밖의 장면을 연출했다. 이란 선수들은 하얀 장미를 들고 미국 선수들과 인사를 나눴다. 이란은 2-1로 승리했고, 테헤란의 새벽거리는 열광으로 들끓었다. 그 흥분 속에서 이란의 언론과 정치인들은 숙적과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 경기가 양국 관계를 바꾸지는 못했지만, 적대하는 나라들도 규칙 안에서는 경쟁자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올해 여름, FIFA 월드컵이 미국·캐나다·멕시코에서 열린다. 미국이 이란과 전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미국 땅에서 역사상 최대 규모의 월드컵이 열린다는 역설은 쉽지 않은 질문을 던진다. 두 나라 대표팀은 서로 다른 조에 편성되었지만 토너먼트에서 마주칠 가능성은 열려 있다. 그들은 과연 같은 경기장에 설 수 있을까. 그리고 1998년 리옹의 그 악수는 다시 가능할까.
규칙 안에서 치열하게 싸우고 경기가 끝나면 악수하며 돌아서는 것 그리고 상대를 파괴하지 않고도 이길 수 있다는 사실을 인류는 스포츠를 통해 반복해서 배워왔다. 그리고 그 경험의 축적이 곧 문명이다. 현실주의가 인간본성의 냉혹함을 정확히 읽어냈다면, 문명은 그 본성을 제도로 묶어내는 방식으로 발전해 왔다. 전투본능을 규칙 안으로 끌어들이고, 지배욕망을 경쟁의 형식으로 바꾸며, 공멸 대신 공존을 선택하는 법을 배운 것이다. 2차 대전 이후 80년간 강대국 간 직접 전쟁이 억제된 것도 공포의 균형 때문이었지만, 그 공포를 관리하는 제도와 규범 덕분이기도 했다. 지금의 위기는 그 규범체계를 설계하고 수호해 온 나라가 스스로 그것을 허물고 있다는 데 있다.
에마뉘엘 레비나스는 ‘타자의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 윤리가 시작된다’고 했다. 전쟁은 타자를 얼굴 없는 적으로 만드는 행위이고, 스포츠는 가장 격렬한 경쟁 속에서도 타자의 얼굴을 동료로서 보게 만드는 경험이다. 경기 전 이란 선수들이 내민 손은 정치적 제스처가 아니었다. 같은 규칙 위에 선 상대를 경쟁자이면서도 동료 인간으로 마주한 순간이었다. 그 순간이 역사를 바꾸지는 못했지만, 그런 순간들이 쌓이지 않고서는 역사도 바뀌지 않는다. 2026년 여름, 미국의 경기장에서 양국 선수들이 마주한다면 그것은 스포츠 역사의 한 장면을 넘어, 인류가 다시 문명의 언어로 공존을 말할 수 있는가를 시험하는 현장이 될 것이다. 투키디데스의 엄혹한 현실이 지배하는 세계지만, 칸트의 믿음이 그를 극복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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