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웅의 디지털]기계의 속도, 인간의 속도

박태웅 녹서포럼 의장 2026. 4. 19.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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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란 전쟁은 후대에 인공지능이 지휘한 최초의 전쟁으로 기록될지도 모른다. 미국은 팔란티어의 전장 시스템을 처음부터 끝까지 활용했다. 메이븐 스마트 시스템이 위성 사진, 드론 영상, 첩보 정보(Humint), 신호 정보(SIGINT) 등 가공되지 않은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해 적의 전차, 미사일 발사대, 병력 이동 등을 자동으로 찾아내 좌표를 찍어주면, 팔란티어의 인공지능 플랫폼이 메이븐이 보내온 표적 데이터에 아군의 무장 상태, 기상 조건, 지형지물, 국제법 규정 등을 결합한다. 이 결합된 정보를 앤트로픽의 클로드가 읽고 “현재 병참 상태로 저 표적을 타격할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과 같은 질문에 적합한 공격 시나리오를 내놓는다. 예전 같으면 수십, 수백명의 군인이 몇주씩 걸려서 해야 했던 일들이다. 지휘관은 인공지능이 빛의 속도로 내놓는 공격방안을 단지 선택하기만 하면 된다.

최종 선택은 인간인 지휘관이 하는데 왜 인공지능이 지휘했다고 할까? 전장의 특이점이라는 개념이 있다. 군사 전문가 폴 샤레, 엘사 카니아 등이 말한 것이다. 전쟁의 속도가 인간의 사고 속도를 추월하는 지점을 말한다. 2026년 현재 전장은 이 임계점에 도달해 있다. 마하 이상의 속도로 날아오는 미사일이나, 수백대가 동시에 달려드는 드론 군집을 상대할 때 인간이 보고를 받고 승인 버튼을 누르는 시간은 얼마나 허용될까? 2026년 미 공군의 DASH(Decision Advantage Sprint for Human-Machine Teaming) 실험 결과, 인공지능은 인간보다 30배 더 많은 선택지를 10초 이내에 제안하며 압도적인 전술적 우위를 증명했다. 게다가 상대도 인공지능을 쓰고 있을지 모른다. 내가 머뭇거리는 사이 상대는 기계의 속도로 공격해 올 것이다.

전장은 이미 인공지능 특이점 도달
미·이란 전쟁, AI가 지휘한 첫 전쟁
세계 보안업계 발칵 뒤집은 미토스
인간이 가속도 붙은 AI 견뎌낼까

앤트로픽의 다리오 아모데이의 선택이 물증을 더 보탠다. 그는 미 전쟁부(국방부)에 앤트로픽을 △미국 시민을 감시하거나, △인공지능이 자율적으로 사람을 죽이는 일에 쓰지 말아달라고 요구했다. 이란전에서 미국 시민을 감시할 일이 있긴 어렵다. 그렇다면 남는 건 인공지능이 자율적으로 사람을 죽이는 일이다. 아모데이가 이란전에서 본 건 무엇이었을까.

공교롭게도 또 앤트로픽이다. 앤트로픽의 차세대 모델 미토스가 전 세계 보안업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보안회사 주가가 폭락하고, 며칠 뒤 은행 주가가 폭락했다. 앤트로픽은 미토스를 일반 공개하지 않는 대신 ‘프로젝트 글래스윙’을 출범시켰다.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팔로알토, 구글, 엔비디아 등 주요 기술 및 보안 기업들, 그리고 리눅스 재단과 핵심 소프트웨어 인프라를 구축·유지하는 40개 조직이 참여한다. 공격자보다 방어자가 먼저 취약점을 알고 막을 수 있게 시간을 벌겠다는 것이다.

미토스 성능이 얼마나 좋길래 이런 난리가 났을까. 미토스는 SWE-bench Verified(코딩)에서 93.9%를 기록했다. 인간의 개입이 거의 필요없는 ‘자율 엔지니어’ 수준이다. 경쟁 제품인 챗GPT 5.4프로는 52.7%에 그친다.

가장 놀라운 것은 영국 AI 안전연구소의 리포트다. 연구소는 이 모델이 네트워크 정찰부터 취약점 탐지, 실제 공격 코드 실행에 이르기까지 복잡한 다단계 공격 과정을 인간의 개입 없이 자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고 밝혔다. 미토스는 이 연구소의 ‘The Last Ones(TLO)’ 테스트를 처음부터 끝까지 통과한 최초의 인공지능 모델이다. TLO는 실제 기업의 IT 인프라를 그대로 복제해 실제 서버, 데이터베이스, 방화벽, 사용자 PC가 얽힌 복잡한 생태계를 뚫는 테스트다. 미토스는 32단계의 복합적인 기업 네트워크 침투 시나리오를 처음부터 끝까지 수행해냈다.

미토스는 지금까지의 보안체계를 근본적으로 무너뜨린다. 공격자는 하나만 뚫으면 되지만 방어자는 모든 곳을 막아야 한다. 상대는 네트워크 정찰부터 취약점 탐지, 실제 공격 코드 실행에 이르기까지 복잡한 다단계 공격 과정을 쉼 없이 실행하는 인공지능이다.

글래스윙 프로젝트가 설사 성공한다 해도 한국, 유럽, 일본의 은행과 공공기관은 여전히 소외된 상태다. 그저 처분을 기다릴 뿐. 게다가 인공지능은 미토스뿐이 아니다. 인공지능이 인공지능을 만드는 ‘재귀적 자기개선’이 지난해 말부터 본격화하면서, 그렇지 않아도 빨랐던 인공지능의 발전은 가속도가 붙은 상태다.

기계의 속도의 시간이다. 전장의 임계점은 모든 곳으로 퍼져나간다. 인간은 기계의 속도의 시간을 견뎌낼 수 있을까?

박태웅 녹서포럼 의장

박태웅 녹서포럼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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