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세상]거짓이란 이유만으로 처벌할 수 없다
만약 거짓말을 한다는 이유만으로 발언자를 처벌해야 한다면, 요즘 대세인 대형언어모형 인공지능 역무야말로 어떻게든 처벌받아야 마땅하다. 나는 두세 종류의 인공지능 보조역을 필요에 따라 골라서 사용하고 있는데, 모두 불과 몇개월 전과 비교해 확실히 똑똑해졌고 그래서 그런지 거짓말도 더 능숙해졌다. 존재하지도 않는 가짜 논문을 인용해 답변하는 일과 같은 새빨간 거짓말은 확실히 줄었다. 그러나 내 질문의 의도와 배경 동기를 추론해 어떻게든 내 추론이 맞다는 식으로 확인해주려는 편향은 여전하다. 아니 더욱 교묘해졌다. 인공지능 보조역은 거의 숨 쉬듯 진실을 비틀어서 내 의도에 적중하게 답변하려 애쓴다.
인공지능 보조역이 거짓말을 한다면 도대체 무슨 죄를 물어야 할까. 그게 일종의 무능함이나 무신경함의 결과라 해도 규제할 수 있을까. 만약 인간의 언어를 열심히 학습한 결과 그렇게 진실을 무시하더라도 일단 응답하도록 훈련됐다면 어떻게 되나. 인공지능 보조역은 자기 말이 ‘환각’ ‘편향’ 또는 ‘거짓말’이라 지적받고, 또한 객관적으로 확인되더라도, 해당 발언을 겨냥한 처벌적 대응 같은 것은 없다고 응답했다. 그저 언어모형과 추론방식에 대한 전반적 업데이트가 뒤따를 뿐이다.
생각건대, 거짓말하기를 권장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시셀라 보크가 주장했듯이 거짓말은 인간 교류에 필수적인 신뢰를 갉아먹기에, 명백하고도 정당한 이유를 따로 제시하지 않는 한 옹호할 도리가 없다. 그러나 공동체마다 사회마다 적당한 이유만으로도 허용되는 거짓말 관행들이 있다. 단기적으로나 국지적으로 보면 거짓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 없지만 사후적으로 유용함이 확인되는 발언들이 있고, 또한 이 반대의 경우도 많다. 과학의 발전이 후자를 대표한다. 과학적 진실은 진지하고도 정성스럽게 제시된 가설들을 거짓이라고 반박하면서 사후적으로 드러난다.
발전된 법문화를 가진 사회는 거짓말했다는 이유만으로 발언자를 처벌하지 않는다. 발언이 초래한 구체적인 해악에 따라서, 명예훼손이든, 위증이든, 선동 등을 적용해 처벌할 뿐이다. 예컨대, 1992년 캐나다 대법원은 공익을 해할 우려가 있는 거짓말을 처벌할 수 있도록 한 당시 형법 제181조가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여기서 다수 의견을 집필한 베벌리 매클래클린 판사는 국가가 진실의 중재자 노릇을 할 수 없다는 이유도 덧붙였다. 2012년 미국 연방대법원도 무공훈장을 위조해서 차고 다니는 행위를 처벌하는 연방법을 위헌이라 판결하면서, 거짓이라는 이유만으로 발언의 자유를 제약할 수 없다고 확인했다.
최근 발언의 자유를 좁게 해석하려는 규제론자들이 언급하고 싶어 하는 최신 사례가 있다. 2023년 폭스뉴스가 도미니언 투표 시스템을 2020년 선거부정의 당사자인 것처럼 지목해 보도한 뒤, 극적으로 합의한 소송이다. 폭스뉴스는 민사재판 직전에 거짓 보도를 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원고에게 7억8000만달러를 합의금으로 지불했다.
그러나 폭스뉴스가 기꺼이 언론사 대상 명예훼손 소송의 역사상 최대 금액을 지급한 이유는 발언의 자유를 폭넓게 보호하는 미국 수정헌법 제1조 법리를 따르더라도 ‘공인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패소할 게 명확했기 때문이다. 원고인 도미니언은 ‘공인’에 해당했기에 일반적 명예훼손 사건보다 훨씬 강력한 입증책임을 짊어져야만 했다. 재판 전 도미니언은 ‘폭스뉴스가 허위임을 알고 있거나 또는 진위를 무시한 채 무모하게 보도했다’는 점을 입증할 수 있다고 자신했고, 폭스뉴스가 보기에도 그랬으며, 무엇보다도 배심원으로 참여한 일반 시민의 눈높이에서도 명예훼손이 명백했다. 우리 역시 거짓말이면 무조건 처벌해야 한다는 그 무모한 마음만큼이나 엄격한 해악에 대한 입증책임을 설정하는 규칙을 채택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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