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 꽃구경조차 ‘도전’이 되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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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여행의 계절이다.
유명 맛집에서 지역 특색의 음식을 즐기고, 여행지 기념품을 지인에게 건네는 소박한 기쁨도 빼놓을 수 없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상상하고 계획을 준비하는 것에서부터 여행은 시작된다.
여행지로 향하는 휠체어 탑승 가능 시외·고속버스는 우리나라에는 단 한 대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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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힐링이 아닌 분노를 일으키는 일

봄은 여행의 계절이다. 기온이 오르고 산천에 꽃이 피면, 사람들도 기차에 오르고 버스에 몸을 싣는다. 유명 맛집에서 지역 특색의 음식을 즐기고, 여행지 기념품을 지인에게 건네는 소박한 기쁨도 빼놓을 수 없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상상하고 계획을 준비하는 것에서부터 여행은 시작된다. 이처럼 문화를 능동적으로 향유하는 일, 그것이 바로 '문화향유권'이다.
문화향유권이 보편적 권리가 되려면 다음과 같은 조건들이 필수적으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노동을 통한 안정적 소득의 '경제적 자원', 빠듯한 생계활동 외의 여유 '시간적 자원', 편리한 교통과 편의시설의 '물리적 접근성', 사전 정보를 충분히 획득할 수 있는 '정보 접근성', 그리고 일상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주변과 연대감을 느끼는 '심리적 안정과 사회적 분위기'이다. 따라서 문화향유권은 그 시대와 상황을 단면적으로 보여주는 척도인 셈이다.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에서 장애인에게 이 권리는 여전히 '벽'에 가로막혀 있다. 먼저 경제적 기반이 취약하다. 한국장애인개발원 보고서를 보면 취업 활동을 하는 장애인은 절반 수준인 56.1%에 불과해, 문화를 즐길 소득 자체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시간적 자원 역시 마찬가지다. 필수적인 장애인 활동지원서비스를 받는 인원은 15% 남짓이며, 그마저도 이용자의 절반은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낀다.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시간 외에 문화를 향유할 여유는 사치처럼 여겨지는 것이 현실이다.
물리적·정보적 장벽은 더욱 가혹하다. 여행지로 향하는 휠체어 탑승 가능 시외·고속버스는 우리나라에는 단 한 대도 없다. 교통약자 콜택시는 자기가 사는 지역을 벗어나기 어렵다. 어렵게 도착한 여행지에서도 이름뿐인 장애인 화장실과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는 발길을 돌리게 만든다. 지자체 홈페이지에는 장애인 주차구역이나 경사로 유무 등 구체적인 정보를 찾기 힘들다. 전시물 앞에서도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성안내나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어해설은 거의 드물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엄연히 존재함에도 식당에서 안내견 동반을 거부당해 좌절감을 느끼는 일은 다반사이다. 아직도 사회적 인식이 얼마나 낮은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결국, 장애인에게 여행은 힐링이 아닌 '스트레스'이자 '분노'의 과정이 되고 만다.
얼마 전 지역의 모 장애인단체에서는 장애인들이 발품을 팔아 가며 경남 관광명소의 편의시설 정보가 담긴 여행 가이드북을 직접 제작했다는 기사가 있었다. 이에 반하여 지난 3월 창원에서 열린 경남관광박람회에서는 엄청난 예산이 투입되었으나, 18개 지자체의 200여 개 홍보물 중 장애인 편의정보를 담은 것은 단 한 건도 없었다.
문화향유권은 다양한 인프라의 총합이며, 그 사회의 인식 수준을 보여주는 가늠자다. 장애인의 문화향유권이 온전히 보장되는 사회는, 곧 모든 시민의 문화향유권이 보장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그 봄날이 모든 이에게 공평하게 찾아오는 사회, 그것이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야 할 방향이다. 내년 4월 20일, 장애인의 날에는 폐쇄된 체육관에서 기념식과 위로잔치 대신에, 경남의 아름다운 관광지마다 장애인들이 쏟아져 나오는 꽃물결이 일어나는 진정한 '문화의 봄'이 오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남정우 장애인권익옹호활동단 삼별초 대표
※남정우 장애인권익옹호활동단 삼별초 대표가 필진으로 합류했습니다. 앞으로 장애인 인권 문제를 중심으로 독자들과 얘기를 나눌 예정입니다. 관심과 응원 부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