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에 선 삶들, 지워지지 않은 역사를 묻다
위안부 문제·납북 어부·일본인 처 삶 통해
역사 왜곡과 한국 근현대사 속 모순 조명

청산되지 못한 식민지의 유산과 분단의 상흔 속에서 살아가는 ‘경계인’들의 삶을 조명한 심영의 소설가의 장편소설 ‘경계인들’(푸른사상刊)이 출간됐다.
이번 작품은 역사적 폭력과 왜곡 속에서 어디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한 인물들의 삶을 따라가며, 한국 근현대사의 구조적 모순을 되짚는다.
소설은 남파간첩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어부, 좌우 대립 속 방화 사건으로 어머니를 잃은 여성의 딸, 일본인 보육원에서 성장해 한일 간 뒤틀린 역사를 체험하는 역사학자 김은주 등 다양한 인물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들의 삶은 개인의 비극을 넘어, 아직 해결되지 못한 역사적 문제들이 어떻게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지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심 소설가는 “남북 체제 경쟁 속에서 납북 어부들이 고문과 허위자백으로 간첩이 되고, 그 가족까지 연좌제로 고통받는 현실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 구조의 문제”라며 “이러한 비극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반복되는지 들여다보고자 했다”고 말했다.
작품에는 일본 극우 세력의 위협 속에서도 종군위안부 문제를 꾸준히 제기하는 일본 여성 활동가의 이야기도 등장한다. 일부에서는 역사를 왜곡하고 부정하는 반면, 또 다른 이들은 진실을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현실이 교차한다. 작가는 이러한 대비를 통해 ‘진실을 향한 행위는 어디에서 비롯되는가’라는 질문을 서사의 중심에 놓는다.
그는 “어떤 이는 왜곡과 부정을 반복하고, 어떤 이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진실을 말한다”며 “그 차이는 무엇에서 비롯되는지, 인간의 내면과 선택을 따라가보고 싶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일제강점기 조선인과 결혼한 뒤 일본으로 돌아가지 못한 ‘일본인 처’의 삶도 비중 있게 다뤄진다. 일본인도, 조선인도 아닌 위치에서 사회적 비난과 모욕을 감당해야 했던 이들의 존재는 ‘경계인’이라는 개념을 더욱 입체적으로 확장한다.
심 소설가는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양쪽 모두로부터 배척받는 이들의 삶은 우리가 외면해온 역사적 단면”이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찾고자 하는 이들의 태도에 주목했다”고 말했다.
작품은 과거의 사건에 머무르지 않고, 현재의 도시 재개발 갈등 속 가족사까지 연결한다. 서로 다른 이해관계로 충돌하는 주민들의 이면에도 해소되지 않은 역사적 상처가 자리하고 있음을 드러내며, 과거와 현재가 단절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윤정모 소설가는 이 소설집에 대해 “타인의 고통에 대한 응답인지, 진실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인지, 혹은 또 다른 형태의 의식인지에 대한 질문을 깊이 있게 탐문한다”며 “인물들의 복합적인 동기까지 세밀하게 들춰내며 서사의 밀도를 더한다”고 평가했다.
심 소설가는 전작 ‘옌안의 노래’를 통해 항일운동가 정율성의 삶을 조명하고, 소설집 ‘그날들’에서는 5·18, 부마항쟁, 여순사건 등 근현대사의 비극을 다뤄왔다. 이번 작품 역시 그 연장선에서 일제강점기의 유산과 이후 이어진 분단과 갈등의 문제를 탐색한다.
그는 “우리 사회의 분단과 갈등 역시 식민지 경험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며 “정확한 역사 인식 없이 현재의 문제를 이해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소설을 통해 역사적 상처를 다시 바라보고, 그것을 치유할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한편 심 소설가는 올 가을에도 유사한 맥락의 소설집을 선보일 예정이다. 그는 “비극의 역사를 기록하고 기억하는 작업이 결국 우리 사회를 더 건강하게 만드는 토대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최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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