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역 기피’에 웬 나이 타령일까

그는 일흔이 넘은 나이에 비로소 병역 의무를 완수했다. 그는 이렇게 장장 45년이라는 긴 군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고, 경상북도 울진군의 본가로 돌아가서 여생을 보냈다.
오늘날, 누군가에게는 국방의 의무가 '버티면 그만인 시간'으로 전락했다. 병무청에 따르면, 매년 5천 명이 넘는 이들이 38세가 지나 병역을 면제받는다. 그들 중 상당수는 해외 유학이나 취업을 빌미로 귀국을 미루며 '나이만 차면 끝'이라는 식의 꼼수를 부린 병역 면탈자들이라고 한다.
최근 국회 국방위원회 소위를 통과한 병역법 개정안은 이런 꼼수를 막기 위해 입영 의무 면제 연령을 현행 38세에서 43세로 상향하고, 병역 의무 종료 연령 및 제재 기한도 45세까지 연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이번 개정안을 환영하기에 앞서 어처구니없다는 생각이 든다. 과연 병역 의무 종료 나이를 45세로 연장하는 것만으로 충분한가? 국가를 배신하고 의무를 저버린 자들에게 45세라는 면죄부를 주는 것은 노병 장무환 상병의 45년 세월을 모욕하는 처사다.
영국 왕실의 해리 왕자는 아프가니스탄 전장에서 공격 헬기 조종사로 실전을 치렀다. 앤드루 왕자는 포클랜드 전쟁에서 미사일 유도용 미끼가 되는 위험한 임무를 자원했다. 서구 선진국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선택이 아닌 생존의 법칙이다.
반면 대한민국의 민낯은 어떠할까. 국회 제출 자료 등에 따르면, 과거부터 일부 고위공직자의 자제들은 '불안정성 대관절'을 이유로 '5급 전시근로역(현역 면제)' 판정받고 있다. 특히 해외 체류를 이용한 병역 면탈은 기득권층의 전유물처럼 여겨지고 있다. 이번 개정안이 목표로 하는 45세는 해외 대학에서 학위를 따고 경력을 쌓은 뒤 국내로 돌아와 사회적 명망과 부를 거머쥐기에 가장 좋은 나이다.
젊은 시절을 국가 헌신한 이들이 고군분투할 때, 병역을 기피한 자들이 45세라는 '유통기한'이 지났다는 이유로 기득권 자리에 오르는 것은 정의가 아니다. 그것은 공정의 파괴이자 성실히 복무하는 우리 청년들에 대한 기만이다.
물론 2024년 11월 국민의힘 유용원 의원 등이 발의한 이번 개정안은 병역 면탈의 '기회비용'을 높였다는 점에서는 진일보했다. 하지만 여전히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는 희망을 면탈자들에게 허용하고 있다.
45세가 아니라 60세, 아니 그 이후라도 국내에 발을 들이는 순간 군복을 입히거나 그에 상응하는 혹독한 사회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들이 국내에서 경제 활동을 하거나 고위직에 오르는 길은 원천 봉쇄되어야 한다.
병역은 조선시대처럼 군포로 대체할 수 있는 상품도 아니고, 시간으로 흥정할 수 있는 대상도 아니다. 인구 절벽으로 인해 군 병력이 급감하는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특권층의 병역 면탈은 공동체의 결속을 해치는 독버섯이다.
45세가 되면 대한민국 국적을 누리며 모든 의무에서 해방되는 법안이 진정으로 공정한가? 병역 면탈자들이 45세 이후 교수가 되고, 기업가가 되어 우리 사회의 상층부를 차지하는 광경을 언제까지 지켜볼 것인가?
국민은 더 강한 법안을 원한다. 병역을 기피한 자들에 45세라는 숫자는 너무나 자비롭다. 국가를 버린 자에게 국가가 베풀 자비는 없다. 병역을 거부하고 해외로 도피한 자들에게는 입영 의무의 시효 자체를 없애야 한다. 즉, 병역 면탈자들에게는 죽기 전까지 병역의 무게를 지우는 '무기한 의무'가 필요하다. 그것이 45년 만에 귀환해 병역을 마무리한 노병에게 부끄럽지 않은 대한민국의 모습일 것이다. 손경호 서울취재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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