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졸 첫직장, '포괄임금'에 힘겨운 청년들

조신주 2026. 4. 19. 19:08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왜 지금] 사고가 아니라 ‘지금’ 당하는 열악한 일터
포괄임금제 속에 감춰진 고졸 청년의 노동
학력·연령·고용형태로 벌어지는 구조적 차별
1000명의 목소리로 흔들릴 청년 노동 현장
[지데일리] 고졸 청년 노동자의 노동 환경은 여전히 사고와 비극만 있을 때에만 사회의 주목을 받는 ‘보이지 않는 일터’ 속에 갇혀 있다. 
고졸 청년 노동자는 지금까지 사고가 날 때만 사회의 주목을 받았을 뿐, 일하는 현실은 제대로 기록되지 않았다. 전국특성화고노동조합은 직업계고 졸업생 1000명을 대상으로 노동시간, 임금, 차별 구조를 조사해 ‘보이지 않는 일터’를 드러내고, 포괄임금제 폐지와 장시간 노동 관행 개선을 촉구하겠다고 밝혔다. ⓒ픽사베이

전국특성화고노동조합(특성화고노조)가 지난 15일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학교에서 일터까지, 직업계고 졸업생 노동실태 조사 선포 기자회견’을 열고, 또래보다 더 빨리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직업계고 출신 청년 노동자 1000명을 대상으로 본격 실태조사를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구의역 김군, 여수 현장실습생 홍정운, 전주페이퍼 산재 사망 등 사고가 터질 때마다만 뒤늦게 화제가 되는 현실을 넘어, 고졸 청년이 일하는 “지금의 순간”을 구조적으로 드러내고 바꾸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고졸청년, 사고가 아니라 ‘일하는 현실’을 말하다

특성화고노조는 직업계고 졸업생이 고등학교 졸업자 7명 중 1명에 달할 정도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첫 노동시장 진입 세대’라고 강조한다. 이들은 대학 진학을 거치지 않고 직장을 먼저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빠르게 익숙해지는 구조를 강하게 지적한다. 

기자회견에서 신수연 위원장은 “지금까지 고졸 청년 노동자는 사고가 발생했을 때만 사회에 드러났다”며, 구의역 김군, 전주페이퍼 청년 노동자, 런던베이글뮤지엄 노동자 사망 등 최근 사례도 여전히 사고 이후에만 조명된다는 점을 꼬집었다.

그는 또 기자회견 전 진행한 예비 실태조사(조합원 49명 대상)에서 연차와 병가를 자유롭게 쓰지 못한다는 응답이 약 25%, 직장 내 부당한 대우를 경험했다는 응답이 25.7%에 달했다고 밝혔다. 

출퇴근 시간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는 응답도 16%에 이르렀고, 포괄임금제 아래 야근·초과근무가 일상이면서도 수당이 지급되지 않는 사례가 다수 보고됐다. 이는 일부 사례가 아니라, 청년 노동 전반의 열악한 현실을 축소판처럼 보여준다는 지적이었다.

포괄임금제·장시간 노동·고졸차별의 구조

박동균 인천지부장은 포괄임금제 아래에서 청년이 겪는 구조적 착취를 직접 증언했다. 그는 “밤 10시 이후 늦게 퇴근해도 급여가 지급되지 않고, 휴가로 대체한다는 말뿐”이라며, 출장이나 외근 시에는 휴가 대체조차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했다. 

야근이 일상이 되고 주말이 사라지며, 회사가 바쁘다는 이유로 모든 부당함이 정당화돼 왔다는 것이 그의 경험담이다.

이겨레 민주노총 청년특별위원장은 “수당·임금이 일한 만큼 지급되지 않고, 계약기간이 끝나면 일자리도 잃을지 모른다”고 말하며, 고졸 청년의 불안은 개인 문제가 아니라 학력·연령·성별 등에 따른 차별을 통째로 반영하는 구조라고 규정했다. 

그는 노조에 도움을 요청한 청년이 결국 노조 결성을 이유로 해고되는 현실을 소개하며, “노동조합의 투쟁만으로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정부의 적극적 개입과 구조적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법정 한도 넘어선 ‘기록되지 않는 노동’

남미경 서비스일반노조 청년모두지부 준비위원장은 포괄임금제와 장시간 노동이 결합한 현실을 ‘구조적 살인’에 비유했다. 그는 주 80시간에 가까운 노동을 하다 쓰러진 청년 사례를 언급하며, 회사가 “구조적으로 장시간 노동은 불가능하다”라고 발뺌하는 태도를 강하게 비판했다. 

근로기준법상 주 40시간, 연장근로 포함 최대 52시간이 ‘최대 한도’라는 점을 강조하며, 이 한도를 넘는 43·46시간을 ‘괜찮다’고 말하는 현실을 기준 자체의 왜곡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실제 노동시간을 지워버리고 초과 노동을 이미 월급에 포함됐다는 말로 덮어버린다”며, 이 관행이 불법에 가까운 노동을 합법처럼 보이게 만든다고 말했다. 

노동자가 추가로 일한 시간을 주장하면 불이익이 돌아오는 구조 속에서, 노동시간은 기록되지 않고, 그만큼 청년의 삶 역시 ‘사라진다’고 지적하며 포괄임금제 전면 폐지와 일한 시간만큼의 정당한 수당 지급, 근로시간 관리 시스템 도입 등 구조적 대책을 강하게 요구했다.

1000명의 목소리로 드러내겠다

이번 기자회견은 1000명 규모의 본격 실태조사와 심층 인터뷰로 이어질 예정이다. 노동시간, 임금·수당 지급 구조, 학력·연령에 따른 차별, 고용불안, 극한 노동, 교육미제공 위험작업, 직장 내 괴롭힘 등 전반적인 노동조건을 조사해, 정부와 사회에 구체적인 데이터와 증언을 전달하겠다는 계획이다.

기자회견문에서는 “사고 이후만 기록되고, 일하는 현실은 기록되지 않았다”고 반복하며, 이제는 사고 이후가 아니라 ‘일하는 지금’을 바꾸겠다는 메시지를 내세웠다. 

직업계고 졸업생과 현장실습생을 포함한 모든 고졸 청년 노동자가 안전하게 일할 수 있고, 정당한 권리를 보장받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제시하며, 노동부의 실태조사와 특별근로감독 실시, 포괄임금제 폐지 등 구체적 요구를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