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숙의 옛그림 예찬] <342> 머나먼 중국 땅에서 고향집을 그리며 청음 김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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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단송음'의 소나무 우거진 북단은 경복궁 북문인 신무문 밖에 있는 회맹단(會盟壇)이다.
공신회맹단, 맹단이라고 했고 한양 북쪽이어서 북단으로 불렀다.
그림 가운데 부분의 넓은 빈터에 사각형으로 도드라진 곳이 회맹단이다.
회맹단에서 가까운 청운동에 살았던 청음(淸陰) 김상헌(1570-1652)이 중국에서 지은 시에 '회맹단'이 있기 때문 아닐까 추정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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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단송음'의 소나무 우거진 북단은 경복궁 북문인 신무문 밖에 있는 회맹단(會盟壇)이다. 현재는 청와대 구역에 포함되어 있다. 회맹단은 공신을 녹훈한 뒤 구리쟁반에 담은 피를 마시며 충성을 맹세하는 회맹제를 치렀던 제단이다. 공신회맹단, 맹단이라고 했고 한양 북쪽이어서 북단으로 불렀다. 영조 때 '한양도성도'에 표시되어 있는 것을 보면 서울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장소였다.
그림 가운데 부분의 넓은 빈터에 사각형으로 도드라진 곳이 회맹단이다. 위로는 솔숲과 백악산을 그렸고, 아래로는 경복궁 소나무가 빽빽하다. 회맹단 바로 아래 갓 쓴 두 양반과 활과 화살통을 멘 소년은 근처의 활터로 가눈 중이다. 왼쪽에 '북단송음 겸재'로 제목과 서명이 있다. 특별한 명승지도 아닌 이곳을 겸재 정선은 왜 그림으로 그렸을까?
회맹단에서 가까운 청운동에 살았던 청음(淸陰) 김상헌(1570-1652)이 중국에서 지은 시에 '회맹단'이 있기 때문 아닐까 추정해 본다. 김상헌은 청나라의 파병 요구에 반대하는 상소를 올렸다는 이유로 1640년 청나라 군대에 의해 심양으로 끌려가 6년이나 억류되어 있었다. 이 때 서울의 집을 그리워하며 지었다.
도성 북쪽 흰 모래 깎은 듯 평평한데/ 네모진 제단 쌓인 것은 예로부터 그러했네/ 나라가 선 이후에는 바로 일이 있었으나/ 일 지나고 사람 없어 텅 빈 채로 적막하네/ 달빛 희고 바람 맑으니 좋은 벗이 찾아와/ 산보하고 소요하니 즐거움 끝이 없었네/ 나의 집은 소 울음 들릴 만큼 가까운 곳에 있으니/ 어느 날에나 돌아가 지팡이 짚고 거닐어 보나
城陰白沙平如削 妥帖方壇自古昔 有國由來卽有事 事過無人空寂寞 月白風淸良友至 散步逍遙樂未已 吾家住在一牛鳴 何日歸來試杖履
정선은 김상헌의 후손들과 가까웠다. 김상헌의 증손자인 김창협, 김창흡, 김창업 등 안동 김씨 집안의 도움으로 벼슬길에 들어서게 되고 이들의 후원을 받으며 화가로 활동한다. '북단송음'은 먹색이 유난히 짙고 흑백의 대비가 선명한 매우 삼엄한 수묵화다. 김상헌의 시에 의거해 그의 후손인 안동 김씨 집안의 누군가를 위해 이 부채그림을 그렸을 것 같다.
대구의 미술사연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