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주차장은 비었는데 도로는 ‘주차장’…KTX 경주역의 민낯
단속 사각지대 틈타 확산…관광도시 이미지 훼손

19일 오전, 경주역 광장을 벗어나 내남면 방향으로 이어지는 왕복 2차선 도로에 들어서는 순간, 풍경은 낯설게 일그러져 있었다. 차선 위로 차량들이 빼곡히 늘어서 있었고, 다리 밑 그늘과 하천 제방 위, 심지어 농기계가 오가야 할 농로까지 승용차들이 점령하고 있었다. 관광도시 경주의 첫 관문이라는 이름이 무색한 광경이었다.
그런데 불과 수백 미터 떨어진 공영주차장과 코레일 주차장에는 빈자리가 눈에 띄었다. 주차 공간은 남아 있는데, 도로가 주차장으로 변해 있었다. 이 기형적인 역설이 경주역 일대의 현실이다.
현재 경주역 인근에는 공영주차장 566면, 코레일 주차장 357면, 사설 주차장 350면 등 총 1270여 면의 주차 시설이 갖춰져 있다. 물리적 공간이 부족한 것이 아니다. 문제는 '이용 회피'다.
배경에는 요금 부담이 있다. 공영·사설 주차장은 하루 6000원, 코레일 주차장은 1만3000원(열차 이용 시 할인) 수준이다. 며칠씩 차를 세워두는 이용객들이 비용을 아끼기 위해 도로변과 농로를 택하고 있다는 것이 현장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인근 주차장 관계자는 "주차장이 부족한 게 아니라 돈과 이동 거리를 줄이려는 심리 때문"이라며 "농로 주차로 농기계 운행이 막히고, 도로변 차량은 시야를 가려 사고 위험이 크다"고 말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단속의 공백이다. 해당 구간 상당수가 법규상 단속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사실상 방치되고 있다. 단속이 없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무단 주차 구역은 점점 넓어지는 추세다. 농민들은 농로 이용을 제한당하고, 보행자는 위협받으며, 교통사고 위험은 높아지고 있다.
경주역을 찾은 시민 A(50대)씨는 "관광도시의 얼굴인 역 주변이 이렇게 어수선한 것은 문제"라며 "단속이 어렵다면 최소한 질서를 유도할 장치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나"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단속 중심의 접근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주차 유도 시스템 구축, 임시 주차 제한 구역 설정, 계도 및 안내 강화 등 복합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천년 고도의 첫인상을 결정짓는 공간이 '얌체 주차'의 무대로 전락하고 있는 지금, 이 문제는 단순한 교통 불편을 넘어 도시 경쟁력과 직결된 사안으로 다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