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페퍼스’ 연고 만료·타지역 러브콜… 광주 이탈 위기
성적 반등 속 이전설…팬 상실감 확산
전주·구미 유치전 속 광주 ‘늑장’ 논란
“통합특별시 출범 전 첫 문화 시험대”

"광주광역시의 겨울을 다시 '배구 없는 도시'로 돌려선 안 됩니다."
광주 유일 동계 프로구단 AI페퍼스가 매각 지연과 올해 연고 협약 만료가 맞물리며 연고지 이탈 기로에 섰다. 시 대응이 늦었다는 지적 속에, 사태는 단순한 체육계를 넘어 통합특별시 출범을 앞둔 정치권의 결단을 요구하는 문제로 확산되고 있다.
19일 광주시·지역 체육계 등에 따르면 AI페퍼스는 현재 매각 절차가 진행 중이다. 모기업 페퍼저축은행이 새 구단주를 물색하고 있지만 뚜렷한 인수 주체는 나타나지 않았다. 한때 거론됐던 금융권 협의도 결렬된 이후 진전이 없는 상태다.
지난 2021년 V-리그 여자부 7구단 체제로 출범한 AI페퍼스는 지역의 생활 자산으로 자리 잡았다. 광주체고·목포여상 등 유소년 배구 육성과 선수 수급에 영향을 미쳤고, 염주체육관을 중심으로 연간 17만명이 찾는 겨울철 핵심 콘텐츠로 기능해왔다.
최근 성적 반등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AI페퍼스는 2025-2026시즌 16승을 기록하며 창단 이후 최다 승수와 승점을 올렸고, 처음으로 최하위를 벗어났다. 상승 흐름 속에서 매각·이전 가능성이 불거지며 팬들의 상실감도 커지고 있다.
대부분 경기를 직관했다는 전모씨는 "팀이 자리 잡고 분위기도 올라 내년 멤버십 가입을 고민하고 있었는데, 이전 얘기에 허탈하다"며 "어려울 때도 경기장을 채운 팬들을 생각하면 시가 손 놓고 있어선 안 된다. 외국인 선수도 잔류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아는데, 이런 상황이 이어지는 게 아쉽다"고 말했다.

다른 지자체는 이미 움직이고 있다. 전주시와 구미시는 신축 체육관 등을 앞세워 유치 의사를 밝히고 접촉을 이어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수가 성사되면 연고 이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반면 광주시는 대응이 늦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시는 지난 8일 한국배구연맹을 방문해 상황 파악과 대응 방안 논의에 나섰지만, 매각 논의가 공개된 이후였다. 선제 대응에 실패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배구연맹도 시와 함께 인수 기업 물색에 나서기로 했지만, 직접 구단을 운영하는 '관리 구단' 방식에는 선을 긋고 있다. 재정 부담 등을 고려할 때 연맹 개입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입장이다.
사태의 배경에는 모기업의 재정 상황이 있다. 페퍼저축은행은 실적 부진과 자산 축소 속에 구조조정을 이어가고 있다. 2022년 6조원대였던 총자산은 최근 2조원대로 줄었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부담이 구단 매각 추진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상황이 급박해지자 창단을 주도했던 이용섭 전 광주시장이 공개 발언에 나섰다. 이 전 시장은 전날 SNS를 통해 "통합특별시 출범을 앞두고 팀을 지키지 못한다면 지역 자존심에 상처가 될 것"이라며 인수 기업 발굴 등 대응을 촉구했다.
실제 광주는 겨울 스포츠 공백을 반복해 온 도시다. 프로농구 나산 플라망스와 여자농구 신세계 쿨캣이 잇따라 연고지를 떠난 이후 동계 스포츠 기반이 약화됐다. AI페퍼스는 그 공백을 메운 사실상 마지막 구단이다. 이마저 이탈할 경우 유소년 육성과 겨울철 문화 콘텐츠 위축이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에 대해 광주시 관계자는 "기업 간 협의가 선행돼야 하는 만큼 강한 개입에는 신중할 수밖에 없다"며 "연고지 유지를 위해 인수 기업 물색과 협의 연계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이번 사안은 통합특별시 논의와 맞물려 주목된다. 행정 통합을 통해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구상 속에서, 시민 생활과 맞닿은 문화·스포츠 자산을 어떻게 유지할지가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지역 정가 관계자는 "프로구단 이전과 해체가 반복되면서 지자체 대응이 주요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며 "전남광주통합을 앞둔 상황에서 AI페퍼스 사태를 바라보는 지역 시선도 적지 않다. 이제는 정치권 차원의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