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연연 통폐합’ 이번엔 다를까…대통령이 불 지펴 ‘현실화’ 수순 [이준기의 과·알·세]
李 “비슷한 기관 많고, 조직인력 따로따로 둬야 하나” 반문
NST, “공통행정 전문화 추진”...10개 노조 “현장 혼란 키워” 반대

매 정권 때마다 단골 이슈로 제기됐던 ‘정부출연연구기관 통폐합’ 주사위가 또다시 던져졌다. 대통령이 지난 17일 열린 정부 부처 산하 연구기관 업무보고 자리에서 직접 거론하며 불을 지핀 것이다.
그동안 대통령이 국무회의 등 공개 석상에서 수차례 공공기관 개혁 필요성을 언급하며 속도감 있는 추진을 주문한 만큼 향후 출연연 통폐합도 피할 수 없게 됐다. 출연연 통폐합 논의는 6·3 지방선거 이후 정부 주도의 공공기관 효율화 추진과 연계해 본격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보여 이를 반대하는 연구 현장과 상당한 마찰이 예상된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7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경제인문사회연구회(NRC)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두 조직의 소관 출연연에 대한 통폐합 필요성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은 업무보고를 받은 뒤 “연구분야별로 연구원들이 다 따로 설치돼 있는 것 같고, 연구회에서 소속 연구원들을 관리하고 있다는 건데, 국민적 시각에서 보면 굳이 독립된 기관으로 나눠서 관리를 꼭 해야 하나”고 반문했다.
이어 “하나의 기관에 예를 들면 하나의 연구 부서로 관리해도 충분하지 않을까. 굳이 조직을 독립적으로 만들어 놓을 필요가 있는가”라며 “비전문가가 보기에는 비슷한게 많다. 개편할 수 있는지에 대한 연구에 속도를 내 줬으면 좋겠다”고 주문했다.
공공기관에 이어 공공연구기관 운영체제의 비효율성과 중복성을 직접적으로 제기하며 기존 거버넌스 개편 논의를 추진해 달라는 것으로 해석된다.
과학기술분야 출연연을 소관하는 국가과학기술연구회에 대해서는 더 강력한 메시지를 냈다. 이 대통령은 “NST는 중복돼 보이는 게 더 많은 것 같다. 기관들이 꽤 복잡하기도 하지만 비슷한 것도 많고, 굳이 따로 관리해서 원장, 비서, 총무, 조직관리 인력을 둬 따로 하는 구조가 인력 낭비가 아닌가”라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김영식 NST 이사장은 “(NST 소관) 23개 연구기관은 원래 미션 중심으로 설립됐다”며 “행정 비효율성 때문에 공통행정 선진화 작업을 추진 중에 있다”고 답했다.
NST는 올해 23개 출연연의 감사, 채용, 고충처리, 홍보 등 일부 행정 업무를 통합하기 위한 ‘공통행정 전문화’를 추진하고 있다. 각 출연연의 해당 인력을 NST로 전환해 행정 효율화를 도모하겠다는 취지다. 이를 위해 올해 신규 인력 150명을 증원키로 하고, 인건비 명목으로 114억원의 예산을 확보한 상황이다. 하지만, 노조 등의 반대에 부딪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노조를 포함한 연구현장에서 매번 정권 때마다 반복돼 온 출연연 통폐합에 반대 목소리를 내 왔다. 연구기관 특성상 다른 공공기관과 동일한 잣대로 거버넌스를 개편해선 안 되고, 최소 30년 넘게 독립적으로 운영해 온 기관을 합치고 쪼개게 되면 그간 축적된 연구 역량과 자산이 한 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였다.
전국과학기술노동조합 등 출연연 10개 노조는 지난 16일 “각 출연연이 수십 년간 독립적으로 운영해 온 이질적인 행정시스템의 실상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현장과의 충분한 논의없이 졸속으로 추진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공통행정 전문화는 사실상 새로운 조직을 만드는 수준의 변화임에도 정책 방향은 일관성이 없으며, 오히려 연구현장의 혼란과 불신만 키우고 있다”며 “정부는 이런 변화가 연구 지원을 위한 것인지, 통제 강화를 위한 것인지에 대한 분명한 점검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현 정부 출범 초기 과기정통부도 출연연 통폐합에 선을 그으며 추진 계획이 없음을 직간접적으로 밝혀왔다. 그러나 대통령이 생중계로 진행된 공공연구기관 업무보고 자리에서 통폐합 추진을 사실상 주문함에 따라 앞으로 부처 차원에서 어떻게 대응할 지가 관건이다.
과학계 일부에서는 출연연이 국가와 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국가 연구기관으로 역할을 위해선 통폐합을 포함한 다양한 거버넌스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어 출연연 통폐합 논의가 향후 태풍급 이슈로 부각될 것으로 예상된다.
출연연 전(前) 원장은 “무작정 출연연 통폐합 논의를 반대하기 보다는 출연연에 걸맞는 역할과 임무를 어떻게 하면 더 잘 할 수 있고, 지속발전 가능한 형태로 운영을 해 나갈지에 대한 깊은 고민과 논의가 다시금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준기 기자 bongchu@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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