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지마비 딛고 장애인식 개선 활동 펼치는 오성윤 씨 [장애인차별철폐의 날]
경남사람이야기-사회적 장애인식 개선강사 오성윤
누워 생활하다 특수운전 면허증 도전
교사 경력 살려 장애 인식 개선 강연
"활동 지원사 없인 갇히는 현실 바꿔야"

사회적 장애인식 개선 교육을 하기로 한 날, 겨우 몇 ㎝ 턱도 휠체어가 넘기엔 엄청난 장애물이기에 경사로를 설치하고 미끄럽지 않은지 꼼꼼히 살폈다. 이윽고 휠체어를 탄 그가 천천히 조심스럽게 도서관에 들어섰다.
오성윤 강사, 경추 손상으로 사지마비 장애 1급 판정을 받은 그는 목 아래로는 마비된 중증 장애인이다. 온몸의 신경은 마비됐고 타인 도움 없이는 활동 자체가 불가능한 몸이지만 그는 지역에서 알려진 장애인식 개선 강사이다. 어떤 이야기를 할까 궁금한 생각이 들었다.
천천히 자료화면을 넘겨 가며 강의를 시작한 그는 자신이 장애인이 된 경위에서부터 생활, 장애를 바라보는 시선, 그럼에도 최선을 다해 살아갈 수밖에 없음 담담히 이야기했다. 듣는 이들도 금방 그의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는 1966년 김해에서 태어났다. 공무원 생활을 하던 아버지 직장을 따라 어린 시절 마산으로 이사해 산호초등학교, 마산여중, 제일여고를 거쳐 1984년 경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했다.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삶, 대학 시절 사귀던 남자와 1989년 결혼해 아들과 딸을 하나씩 두었고 남편의 사업도 순탄히 이어졌다.
그 자신도 원하던 교사의 꿈을 결혼 후에 이뤘다. 2001년 김해중앙여중을 거쳐 2002년부터 공립학교 교사가 돼 김해, 밀양, 마산 등지에서 사회교사로 일하면서 분주한 일상을 보냈다. 큰 욕심 없이 그대로만 살면 좋겠다 싶었던 나날들이었다.

겨울 방학이라 집에서 쉬는 날이었다. 딸 출근을 위해 식사 준비를 하려고 냉장고 문을 여는 순간, 어쩐지 토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상하다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눈앞이 캄캄해졌고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떠보니 부엌 바닥에 누워있었다. 일어서려고 했지만 팔, 다리가 허공에 떠 있는 듯 움직이지 않았다. 정신은 말짱했지만 그 정신이 몸이라는 감옥에 갇힌 듯 꼼짝할 수 없는 상황에 당황했다.
구급차를 급히 불러 파티마병원으로 갔다가 부산 백병원으로 옮겼고 그날 밤 긴급 수술이 이뤄졌다. 넘어지면서 싱크대에 목을 다친 갑작스러운 사고였는데 조속히 수술했기에 치료를 잘 받으면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예전 생활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희망은 포기했지만 그대로 누워만 있을 수는 없었다. 1년여 병원 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장애인을 위한 특수한 운전장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전에 자동차를 몰고 다녔던 터라 운전 감각은 있었지만 운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는 못했다.
부산 남부 면허시험장에 장애인을 위한 특수한 면허시험 장치가 있다는 말은 그에게 새로운 도전 의지를 심어 주었다. 목 아래 신체 기관이 힘을 쓸 수 없으니 장애인 운전 장치를 움직일 수 있는 최소한의 힘을 기르려 모래주머니를 달고 엄청나게 노력했다. 비장애인 도움을 받아서 운전대에 옮겨 앉는 과정도 엄청난 곤욕이었고 흐느적거리는 몸을 지탱하려고 복대 두 개로 몸을 단단히 묶어야 했다.
천신만고 끝에 2016년 7월, 합격의 기쁨을 누렸지만 어려움은 계속됐다. 운전 연수를 하는 차량이 당시 거주하던 집으로 들어오는 것을 아파트 주민들이 막아선 것이다. 혹시 사고가 나거나 아이들이 다칠 수도 있다는 이유를 들어 거주지에서조차 출입을 거부당한 이 경험은 훗날 그가 장애인식 개선 강사의 길로 나서는 데 큰 계기가 됐다.
온갖 우여곡절을 겪고 운전에 익숙해지고 나서 그는 힘들고 약한 몸으로도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리라 생각해 여러 장애인 단체를 검색하고 가입해서 활동을 시작했다. 적극적인 성격 덕분에 성인 발달장애인을 직무지도하는 일을 시작했다. 불편한 몸이지만 그 정도 일은 충분히 가능했고 대상자들도 그를 잘 따랐다. 문제는 활동 부자유였다. 24시간 활동지원사가 필요한 몸이지만 현실은 이에 미치지 못했다. 활동지원사 지원이 안되는 시간에는 현실의 벽에 갇혔다. 그래서 가장 큰 바람은 24시간 활동 지원사를 보조받는 것이지만 실현은 아득하기만 하다.
그래도 열심히 할 일을 찾아다녔고 서울까지 교육받으러 다닌 결과 그 어렵다는 보건복지부 제2기 사회적 장애인식 개선 교육을 수료하고 강사 자격도 취득했다. 자신의 이야기가 장애인식 개선을 위한 표본인데다 교사 시절 익혔던 강의법 활용 등으로 생생한 교육을 하니 그는 어디를 가나 인기 있는 강사이다.

장애를 겪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딸이 결혼을 결심했는데. 그때 딸이 가장 큰 결혼 상대 조건으로 '엄마를 잘 돌봐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했던 말이 목에 가시처럼 남았다. 자신이 아이들에게 짐이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시련이 그의 걸음을 잠깐 멈춰 세웠지만 끝은 아니었다. 크고 작은 시련이 다가올수록 그는 더욱 단단히 마음을 곧추세웠다. 불편한 몸이지만 서울까지 자동차를 운전해 다녔고 강의를 들으면서 사람들 편견과 마음속 장애물을 거두는 데 온 힘을 다했다.
중증장애인에게는 24시간 돌봄이 필수다. 그러나 현실은 미치지 못한다. 그나마 활동 지원사들도 사지 마비 장애인들을 꺼리고, 종사자들이 갑자기 사정이 있기면 장애인들의 생활은 일시에 멈춰버린다. 장애인들은 이런 부분이 반드시 고쳐지길 간절히 바란다.
현실의 벽이 높을수록 그는 더욱 강의에 매달렸다. 15가지 장애인 유형 중 50%는 지체장애인이며 이중 무려 88.1%가 후천 장애인이라는 말을 하면 비로소 누구나 잠재적 장애인이라는 말을 실감하고 공감한다. 중증장애 몸으로 세상을 향해 외치는 그의 목소리는 때로는 공허하기도 하다. 하지만 강의를 한 번이라도 들어본다면 다시 한 번 장애인의 존재를 생각해보지 않을까. 강의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 장애인 콜택시를 부르니 대기자가 무려 14명이었다. 두 시간 이상 기다림 끝에 그를 태운 노란 차가 떠나고 울컥 눈물이 솟았다.
안간힘을 다해 버티는 장애인들에게 언제쯤 일상에서 인간다움을 누리는 날이 올까.
/윤은주 수필가·꿈꾸는산호작은도서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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