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시대와 우리의 일상

이런 재난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현대사에서 대규모 재난이 없던 시기는 찾기 어렵다. 우선 스페인독감과 코로나19로 대표되는 팬데믹과 에이즈, 사스, 에볼라 등의 감염병을 꼽을 수 있다. 인도양 쓰나미, 탕산·동일본·아이티 지진, 볼라 사이클론과 허리케인 카트리나 같은 초강력 폭풍 등 자연재해도 주목할 만하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와 보팔 가스누출 사고 같은 산업기술 관련 환경 재난이 있다. 이런 사건은 누구도 원하거나 의도하지 않았기에 그 충격은 더욱 크고 일상에 미치는 파장도 깊다.
전쟁도 별반 다르지 않다. 특정 목적을 지닌 누군가의 의도에 의한 결과라는 점에서는 분명 차이가 있지만 대다수 사람들에게 느닷없이 닥치는 불상사라는 것은 똑같다. '뜻밖에 일어난 재앙과 고난'이라는 재난의 어의를 상기해본다. 유의어로 '날벼락'이 맨 앞에 나오는 것도 그런 '불의(不意)' 속성 때문이리라. 1차 대전 이후 1920년대라든가 베트남전쟁 종료 뒤 이어진 1970년대 후반과 같이 외견상 평화로운 때가 몇 차례 있긴 하다. 하지만 그 지속 기간은 턱없이 짧았고 강대국 간 전면전만 없었을 뿐 크고 작은 국지전은 지구촌 어디선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어느 작가는 '재난의 반대말은 일상'이라고 했다. 재난에 짓밟힌 일상적 삶을 조명하며 그것을 극복하고 나날의 안온함을 되찾고자 하는 희망의 메시지로 읽힌다. 그러나 현실은 낙관적 전망을 순순히 허용하지 않는다. 각종 재난이 우리 일상을 수시로 흔든다. 재난의 일상화가 오히려 이 시대의 냉혹한 실상일 듯싶다. 그렇다면 뭘 어떻게 해야 할까? 역사는 어떤 재난들이 발생했고 그 피해는 어떠했는지 보여준다.
지금 전쟁이라는 재난을 경험하고 있다. 그 전장이 먼 곳에 있음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우리는 글로벌 시대에 살고 있으며 특히 석유의 수급과 관련해서 직격탄을 맞고 있다. 국가는 그 날벼락으로 인해 뜻밖의 피해를 본 국민들에게 적절한 지원을 해야 하며 아울러 그 광풍의 조속한 소멸을 위해 다방면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대처 방식은 각자 다를 수밖에 없겠지만 평온한 일상의 유지라는 맥락에서 나는 아날학파 브로델의 '구조' 개념에 주목하고자 한다.
시간 차원의 '장기지속'과 함께 언급되는 이 '구조'는 우리의 삶을 장기적으로 규정하는 틀이다. 그것은 종종 우리를 가두는 '감옥'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일상을 지탱하는 '안전판'이기도 하다. 이 틀이 큰 동요 없이 유지되는 한 기존의 일상도 원만히 이어갈 수 있다. 반대로 어떤 재난이 그것의 변화를 초래할 정도로 큰 충격을 준다면 일상 역시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이번 전쟁은 어떨까? 브로델이 말했듯이 '구조'의 특정 요소들이 표출된 단기적 '사건'에 그칠 것인가. 그의 설명에 따르면 대체로 그렇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바닷물에 비유하자면 '표면의 찰랑거림'에 가까운 현상이다. 따라서 매우 느리게 움직이는 심층 해류인 '구조'에 곧바로 큰 변화를 주지는 않는다. 그 결과 일상에 본질적인 변화를 압박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현시점에서는 이번 전쟁도 그 범주에 머물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 세계 에너지 시장, 물류 네트워크, 지정학적 블록 형세 등에 미치는 영향이 감지된다는 보고도 있지만 그것이 과연 구조적 변화를 초래할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더욱이 지금의 전쟁은 2차 대전이나 이 땅의 마지막 전쟁(1950-53)과 양적 질적 측면 모두에서 비교하기 어렵다고 본다. 개인적으로는 이전처럼 독서와 산책 그리고 탁구동호회 활동을 중심으로 은퇴자의 일상적 리듬을 이어갈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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