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형철 칼럼] 보수 논객 김진, 그의 졸기는 무엇을 기록할까
“노전 대통령 투신은 가족 불법자금 수수 충격" 주장
측은지심 없는 평론 눈살도...‘12·3’ 비상계엄엔 반대

김진은 중앙일보에 기명 칼럼 '김진의 시시각각'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선명하게 드러냈다. 1984년 한국일보 계열 영자지 코리아타임스에서 기자로 입문해 2016년 중앙일보를 끝으로 32년간 언론인으로서 필봉을 휘둘렀다.
김진의 글은 타협 없는 보수적 시각을 견지했다. 박근혜 정부를 향해 '북한에 속아서는 안 된다'라며 대북 유화정책을 극도로 경계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 정책은 '최악의 오판'이라고 싸잡아 비판했다. 이명박 정부 당시 천안함 피격과 관련해 '지도층 인사'들의 입을 빌어 "한국이 3일만 버티면 북한을 이길 수 있다"는 발언을 인용해 논란을 자초했다.
손자(孫子)는 손자병법에서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을 상책'(善之善者)이라고 했다. 이어 '적의 외교를 무너뜨리는 것이 그 다음이고, 직접 공격하는 것은 최악이다'라고 설파했다. 하지만 김진의 글에서는 하지하책(下之下策)만 나열돼 있었다.
그는 나아가 히로시마 원폭 투하를 '마루타의 복수이자 하늘의 응징'이라고 표현해 당시 아베 총리가 이끌던 일본 정부로부터 항의를 받기도 했다.
언론계를 떠난 후에는 현실 정치에 깊숙이 발을 들여놓았다. 2017년 2월 15일 자유한국당 입당 후 대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국민들이 좌파정권을 두려워하고 있다"며 "남한사회를 다시 정비해서 당당하고 멋있는 통일국가를 만들겠다"고 사자후를 터트렸다. 이어 "저도 흙수저 출신입니다. 나의 아버지는 나이 50에 중동 건설 노동자였습니다. 강북에 있는 18년 된 33평 아파트가 제 재산의 거의 전부입니다"라며 지지를 호소했다. 그러나 후보 경선에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후 시사평론가와 유튜브로 활동하면서 보수 논객으로 유명세를 떨쳤다.
김진은 자신이 세상을 바라보는 호불호만큼이나, 자신에 대한 세상의 호불호 간극도 자못 컸다. 그가 쏟아낸 날 선 비평과 논설은 지지층으로부터 박수와 환호를 받았지만, 반대 진영의 사람들에겐 큰 상처와 원망을 남겼다.

대표적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그의 무도한 발언을 꼽을 수 있다. 김진은 "노 전 대통령이 자살한 이유가 가족들이 불법 자금을 받았다는 것을 알고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용감하게 주장했다. 사실 관계가 불분명함에도 그는 공중파 방송에서 이 같이 목청을 돋웠다. 여기에 더해 "노 전 대통령은 부끄러움을 알고 억울하게 죽었다"고 조롱했다.
세월호에 갇혔다가 바다 속으로 수장된 학생들에 대한 그의 발언도 잊을 수가 없다. "세월호는 거대한 교통사고일 뿐이다", "비극적인 재앙이지만 단순 해운사고다"라는 그의 논법에서 시스템을 관리하는 국가의 책임과 유가족을 향한 '따뜻한 가슴'을 찾기는 어렵다. 그는 한때 자유한국당 보수개혁위원장을 맡았다. 측은지심이 결여된 그의 발언이 인터넷 공간에 떠돌아다니고 있는데, 그가 맡은 보수개혁위가 추구하는 가치가 정말 궁금하다.
문재인 정권 때는 언필칭 '나라를 어렵게 만든 5개 분야'를 꼽으며 대국민 각성을 촉구했다. 이런 이유로 2022년 21대 대선 때는 친윤 성향의 논객으로 분류돼, 윤석열의 당선에 기여했다.
2024년 4월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는 "젊은이들이 망친, 젊은이들이 어지럽힌 나라 노인이 구한다"라는 발언으로 좌충우돌했다. 같은 해 7월 채수근 상병 사망 1주기를 맞아, 야당이 추진한 청문회를 "대통령과 정권에 망신살을 주기 위한 막가파식 청문회다"라고 했다. 그는 윤석열에 대한 낮은 지지율에 대해 '대통령 부부에 대한 질투'에서 비롯됐다는 상식 밖의 주장을 펴기도 했다.
그해 12월 3일 비상계엄을 선포하기 전까지는 그는 윤석열 정권의 입장을 대변하거나 옹호하는 평론을 수없이 쏟아냈다. 다만 윤석열의 비상계엄에 대해선 단호하게 선을 긋고 비판한 점이 눈에 띈다. 김진은 12·3 비상계엄을 명분 없는 반헌법적 계엄으로 규정한 뒤 "윤석열의 정신 상태가 의심된다"고 강력 비판했다.
한편 김진은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 대해 흥미로운 분석도 내놨다. 그는 김재규 주치의의 말을 빌어 "김 부장은 발기불능으로 스트레스와 우울증을 겪었을 것이다. 이런 심리상태가 10·26 같은 과격한 행동을 우발적으로 저지른 원인 중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이라는 글도 썼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사자(死者)의 인물평에 대한 기사, 졸기(卒記)가 전한다. 실록에서 '졸(卒)하였다'라는 키워드를 넣으면 1,067건이 검색된다. 주로 종2품 이상의 고위관료들이 대상이다. 악평이든 호평이든 이들은 졸기의 그물망에서 빠져나갈 수 없다. 김진은 떠났지만 그의 글과 말은 남아있다. 저서로는 '청와대 비서실'과 '대한민국의 비명'이 있다. 향년 67세,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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