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한컷] 겹볒꽃 분홍빛 천지…봄의 찰나를 기록하다

황지원 기자 2026. 4. 19.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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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결국 기억을 남기는 일이다.

그 기억을 가장 선명하게 붙잡는 방식은 한장의 사진이다.

나의 여정을 함께한 바람과 구름과 별과 숲, 그 찰나의 환희를 포착하는 것! 사진 작가가 아니라도 값어치 있는 일 아닌가.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며칠만 지나면 이 겹벚꽃도 언제 피었냐는 듯 그 완전한 듯 했던 형체가 뭉개지고 흩어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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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 남긴 한컷] (1) 겹벚꽃 핀 전남 순천 선암사
신선 세계의 통로 승선교 지나
백제 때 세워진 사찰 걷노라면
대웅전 옆 겹벚꽃 시선 빼앗아
상상의 나래 펴고 순간을 담다
돌담·기와·처마 같은 전통적인 건축 요소가 꽃과 함께 어우러지도록 구도를 잡는다. 사진=백승철 프리랜서 기자
여행은 결국 기억을 남기는 일이다. 그 기억을 가장 선명하게 붙잡는 방식은 한장의 사진이다. ‘여행이 남긴 한컷’은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오래도록 붙잡는 법을 전한다. 프레임 안 빛나는 장소, 카메라 구도 설정, 자연스러우면서 다채로운 자세까지 짚는다. 나의 여정을 함께한 바람과 구름과 별과 숲, 그 찰나의 환희를 포착하는 것! 사진 작가가 아니라도 값어치 있는 일 아닌가.

만개한 벚꽃이 하강의 곡선을 그리고 있을 4월 중순. 그 빈자리를 겹벚꽃이 채우니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라는 말을 실감한다. 일반 벚꽃은 연분홍 꽃잎 다섯장으로 자신을 꾸미지만 수십겹 꽃잎을 자랑하는 겹벚꽃은 한층 색감이 짙고 풍성한 느낌을 준다.

전남 순천 선암사는 겹벚꽃 성지로 꼽힌다. 꽃과 사찰의 고즈넉한 기와 처마가 어우러지는 풍경 앞에서 카메라 셔터를 누르지 않고 지나치기 어렵다.

사찰 내 겹벚꽃을 만나기 전 이방인을 먼저 반기는 곳이 있으니 바로 승선교(昇仙橋)다. 선암사에 가려면 버스정류장이나 주차장에 내려 산길을 30여분 걸어야 한다. 승선교는 이 길목에 놓인 다리로, 신선의 세계로 향하는 통로라는 뜻을 지녔다. 길이 14m, 높이 4.7m로 다리 밑이 반원형인 것이 특징이다. 이 모양이 무지개 같다고 해 ‘홍예(虹霓) 다리’ 혹은 ‘홍교’라고도 부른다.

승선교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1698년(숙종 24년) 승려 호암대사가 관음보살의 모습을 보고 싶어 백일기도를 했지만 실패했다. 대사는 실망해 벼랑에서 몸을 던지려 했는데 한 여인이 나타나 대사를 구하고 사라졌다. 대사는 이 여인이 관음보살임을 깨닫고 그를 기리는 다리를 세웠다.

승선교 아래와 반원 속 원경의 밝기가 다르므로 이를 자동으로 보정해주는 HDR 모드를 설정한 후 사진을 찍는다. 사진=백승철 프리랜서 기자

꽃이 피나 눈이 오나 300여년간 자리를 지켜온 승선교엔 사진가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다리 밑으로 내려가 화면 아래쪽엔 냇물과 바위가, 중간엔 승선교가 들어오게 카메라를 든다. 승선교가 그린 반원형 속 원경엔 2층 누각 강선루가 폭 담긴다. 다리 양옆으론 막 돋아난 싱그러운 새잎이 화면을 부드럽게 감싼다. 일행이 있다면 다리 위를 자연스럽게 걷는 모습을 찍어도 작품 같다.

반원 속에 담긴 저곳엔 정말 신선이 살고 있을지. 선암사로 걸음을 옮긴다. 선암사는 백제 때인 527년 창건한 유서 깊은 절이다. 2018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사찰 곳곳엔 겹벚꽃이 앞다퉈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개화 현황과 날씨를 인터넷으로 수없이 찾아보고 기차표를 여러번 바꾼 끝에 마주한 분홍빛 천지다. 그간 애태운 마음이 쉬이 사그라든다.

겹벚꽃 앞에 가만히 서 있기보단 꽃을 바라보거나 꽃에 손을 뻗는 자연스러운 자세를 취한다. 사진=백승철 프리랜서 기자

어딜 가도 그림 같은 세상이지만 최고의 한컷을 찾겠다며 총총걸음으로 이곳저곳을 거닐어본다. 대웅전 담벼락 옆 흐드러진 겹벚꽃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아래로 향한 꽃가지를 활용해 사진을 찍는다. 가지 뒤로 빼꼼 숨어보거나 앞으로 나와 얼굴이 더 잘 보이게 해도 좋다. 역시 꽃보다 사람이 아름답다. 꽃을 바라보는 뒷모습과 돌담 앞을 지나는 느린 걸음, 꽃에 손을 뻗는 순간, 함께한 사람과 마주 선 장면까지 모두 버릴 게 없다.

꽃을 좀더 가까이 보고 싶어 줌을 당긴다. 꽃 뒤로 걸린 전각의 기와 지붕이 사찰 특유의 고요하고 차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나뭇가지 끝에 동글동글 달려 있는 꽃 뭉치가 봄의 온기를 그대로 머금었다. 꽃잎을 벗겨내다보면 작디 작은 엄지공주가 살고 있을까, 한입에 쏙 넣으면 솜사탕처럼 달콤할까. 상상의 나래가 끝없이 펼쳐진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며칠만 지나면 이 겹벚꽃도 언제 피었냐는 듯 그 완전한 듯 했던 형체가 뭉개지고 흩어지겠지. 사진으로 남겨야 한다는 욕망이 자연스레 인다. 그래서 사진기를 들었다. 해마다 봄은 어김없이 찾아온다지만 똑같은 봄이란 것은 또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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