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 털기’된 한은 총재 청문회… 주요국 청문회와 비교해 보니

김신영 기자 2026. 4. 19.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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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日 청문회, 통화 정책 중심
‘외국인 총재’ 영입한 영국도 ‘선’은 지켜
보고서 채택 지연되면 21일부터 한은 총재 ‘대행’ 체제로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가 지난 15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재정경제기획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뉴스1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인 신현송 전 국제결제은행(BIS) 통화경제국장에 대한 인사청문 보고서 채택이 두 차례 불발됐다. 세계적인 경제학계의 석학이자 국제기구 고위 당국자인 신 총재를 대상으로 한 15일 국회 인사청문회는 통화 정책에 대한 의견보다는 신 후보자와 가족에 대한 개인적인 신상 문제가 주를 이루다 보고서 채택 없이 끝났고 17일 다시 열린 회의에서도 비슷한 이유로 채택이 무산됐다.

영국 옥스포드대 진학 후 거의 대부분의 삶을 해외에서 살았던 신 후보자와 가족의 자산·국적 문제에 대한 공방이 일면서 그 과정에 ‘검머외(검은 머리 외국인)’ 같은 비속어까지 오갔다. 이를 두고 고위 공직자에 대한 검증 필요성이 있다 하더라도 정책 현안보다는 신상 털기에만 집중하는 지금의 인사 청문회 기조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계 관계자는 “신 후보자처럼 해외에서 오래 활동한 인재를 중용할 경우 한국식 ‘잣대’를 적용해 물고 늘어지는 것이 맞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국회 재정경제기획위원회는 20일 다시 회의를 열고 신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 보고서 채택을 논의할 예정이다. 이창용 총재의 임기는 이날 종료되기 때문에 다시 채택이 불발되면 다음날부터 한은은 일시적으로 총재 및 금융통화위원장 대행 체제로 운영되게 된다. 중동 전쟁과 고환율·고물가, 아울러 경기 둔화 우려까지 동시다발적으로 제기되는 가운데 정치권에 발목이 잡혀 한은 총재가 공석이 되는 혼란이 발생하는 셈이다.

대부분 주요국도 중앙은행 총재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연다. 하지만 청문회 질의·응답은 경제 상황에 대한 평가와 통화 정책 방향에 대한 총재 후보자의 견해를 듣고 평가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신상 검증은 청문회 이전에 대부분 이뤄진다. 본지가 미국·일본·영국 중앙은행 총재 임명 전 이뤄진 각국 국회 인사청문회 전문(全文)을 분석한 결과 개인적 사안에 대한 문답은 거의 없었다.

◇미국·일본 총재 청문회, 사생활 공방 ‘제로’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은 2017년 11월 미 상원 인사 청문회를 거쳐 2018년 초에 취임했다. 당시 금융 위기 후유증이 최대 이슈였기 때문에 통화 정책 및 금융 규제, 불어나는 국가 부채, 연준 독립성 등에 대한 질문이 오갔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 /로이터 연합뉴스

총 120개가 넘는 질문이 제기됐는데 이 중 글로벌 금융 위기를 촉발한 느슨한 금융 규제에 대한 질문이 약 50개로 가장 많았고 통화 정책 관련이 약 30개, 국가 부채 및 연준 독립성에 관한 질문이 각각 15개씩이었다. 상원 인준 절차에 따라 제출된 개인 정보로 사생활에 대한 점검은 이미 마친 후였기 때문에 개인 신상에 관한 질의는 없었다.

후임으로 지명된 케빈 워시 전 연준 이사에 대한 청문회는 21일 열린다. 글로벌 화장품 회사인 에스티로더의 상속자이자 세계 유대인회의 회장을 맡은 장인 로널드 로더가 트럼프와 매우 친한 사이라는 점이 연준의 독립성과 연관된 쟁점으로 부각될 가능성은 있다.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BOJ) 총재가 지난 3월 일본은행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제학자이자 교수 출신인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는 2023년 4월 부총재 후보 두 명과 함께 일본 중의원에서 한국의 인사청문회에 해당하는 ‘소신 청취’에 출석해 질의에 답했다. 장기간 이어진 아베노믹스(아베 신조 전 총리의 확장적 정책) 영향에 대한 의견과 일본의 고질적 저성장·저물가에 대한 해결책 등에 대한 질문이 많이 나왔다. 회의록 분석 결과 약 50개 질문 중 통화 정책 관련이 20개로 가장 많았고 물가 및 재정 건전성 관련이 각각 약 10개, 일본은행 독립성 관련 질문이 5개 정도였다. 사생활이나 도덕성, 가족 문제에 관한 질문은 역시 나오지 않았다. 우에다 총재에 대해선 배우자·자녀의 신상 및 결혼 여부가 공개돼 있지 않다.

◇한은 총재 청문회 ‘최다’ 질문이 신상

중앙은행 수장을 해외에서 영입한, 신현송 후보와 가장 유사한 사례로는 영국 중앙은행의 마크 카니 전 총재가 꼽힌다. 캐나다 중앙은행 총재를 마치고 영국 중앙은행 총재를 지냈고, 이후 캐나다로 돌아가 현재 캐나다 총리로 일하고 있다. 한국에서 군 복무를 마쳤고 한국 국적을 유지해온 신 후보와 달리 카니는 캐나다 국적자(이후 영국 복수 국적 취득)였기 때문에 이에 대한 문제가 청문회에서 제기됐다.

2013년 2월 열린 영국 의회 청문회 회의록을 보면 자녀 교육 문제로 인해 임기를 당초 8년에서 5년으로 줄인 특혜 논란, 25만파운드(약 4억원)에 달하는 막대한 추가 주택 수당 지급 방침 등에 대한 질문이 다수 나왔다. 카니는 “어린 딸의 교육을 감안하면 임기 8년은 무리여서 거절했지만 재무장관이 임기를 5년으로 줄여주어 총재직을 수락할 수 있었다”, “캐나다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런던의 비싼 물가 때문에 주택 수당을 제공받지 않고는 거주가 불가능하다. 아울러 나는 연금이 없어 총 보수는 전임과 같다” 등 솔직하게 답했고 의회도 수긍하고 넘어갔다.

영국 중앙은행 총재를 지낸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의 지난해 11월 모습. /AP 연합뉴스

이같은 신상 관련 질문이 나오긴 했지만 경제 정책 관련 질문이 역시 주를 이뤘다. 회의록에 따르면 총 136개 질문 중 통화 정책 및 경제 전망이 약 55개, 금융 규제 관련이 약 50개, 영국 중앙은행 독립성 관련이 25개였고 신상 관련은 15개에 그쳤다.

반면 신현송 총재에 대한 인사청문회는 가장 큰 비중을 사생활이 차지하고 정책 관련 질문이 때때로 더해지는 식으로 주객이 전도됐다는 평가다. 사생활 문제로는 배우자와 아들의 외국 국적 보유와 장녀의 한국·미국 복수 국적, 외화 자산 보유에 따른 이해충돌, 옥스포드대 입학 허가를 받고 군 입대를 위해 귀국했을 당시 고려대 편입 절차 등이 도마에 올랐다. 대부분이 40년 넘는 해외 생활에서 비롯된 문제들이다. 청문회 회의록 분석 결과 질문 약 170개 중 신상 관련이 약 70개, 환율 및 외환시장 관련이 40개, 통화 정책과 디지털 화폐 관련 질문이 각각 30개 정도로 사생활 문제가 가장 큰 쟁점이었다. 17일 인사청문 보고서 채택을 위해 재소집된 회의에선 아예 신상 문제만 논의됐다.

금융계 관계자는 “군 입대도 하기 전에 있던 대학 편입 문제까지 반복해 질문이 나올 정도로 개인 사생활이 중요한지 모르겠다. 이런 사생활 위주의 청문회가 반복되면 해외의 우수한 인재가 한국에 와서 일할 엄두가 안 날 것 같다”고 했다. 박근혜 정부 초기였던 2013년 김종훈 전 벨연구소 사장이 초대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됐다가 한국·미국 이중국적 및 배우자 부동산 문제 등으로 당시 야당인 민주당의 공격을 받자 청문회 직전 자진 사퇴한 사례가 있다. 당시 청와대에서 만류했지만, 한때 “조국을 위해 봉사하고 싶다”던 그는 ‘한국식 검증’이 거북하고 부담스럽다는 의견을 표한 후 그만뒀다고 알려졌다. 다만 김 전 사장이 미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았던 이중 국적자였고 논란이 일자 청문회 준비 과정에 미국 국적을 포기하겠다고 밝힌 데 반해 신 후보자는 군 복무를 마치는 등 평생 한국 국적만을 유지해 왔다.

한국은 한은 총재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2014년 이주열 전 총재 취임 때부터 의무화했다.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이 한은 총재를 정권 입맛대로 검증 없이 지명한다고 지적하면서 뒤늦게 도입했다. 지금까지 한은 총재 후보자 인사청문회는 이주열·이창용·신현송 총 세 명에 대해 열렸고, 횟수 기준으론 이주열 총재 연임 때 열린 2018년을 포함해 이번이 네 번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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