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 탐사보도] <4>신기술의 이름으로 반복된 실패…바다숲 사업의 ‘민낯’

김웅희 기자 2026. 4. 19.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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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제안서 뒤 현장은 유실·파손 방치
동해안 환경 무시한 부실 공법…실증 데이터도 부재
발주처·시공사 책임 회피 구조 드러나
기술 실패에도 책임 없는 행정…환경 탓만 반복
기술 지상주의 탈피 사후 관리·감리 시급
울산 당사동 우가 앞바다 암반 고정식 해조류 이식 장치가 일부 이탈한 채 방치돼 있다.

동해안 바다숲 조성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다시 확산되고 있다.

겉으로는 첨단 기술과 친환경 복원이 결합된 미래형 해양 정책으로 포장되고 있다. 하지만 실제 바닷속 현장은 이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최근 취재진이 직접 확인한 결과, 일부 사업지에서는 '신기술'이라는 이름으로 도입된 공법이 설계대로 구현되지 않은 사례가 확인됐다. 여기에 검증되지 않은 방식이 적용되면서 구조물 파손과 해조류 유실이 반복되고 있었다.

이는 단순한 기술 실패를 넘어, 검증과 관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구조적 문제를 드러낸다.

◆검증 없는 '신기술' 도입의 함정

현장에서는 같은 문제가 반복되고 있지만, 이를 걸러낼 제도적 장치는 충분히 작동하지 않는 모습이다.

현재 바다숲 조성사업은 '신기술'과 '특허 공법'이 중요한 평가 기준으로 작용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사업 수주를 위해 업체들은 더 넓은 적용 범위와 높은 생존율 등을 강조하며 차별화된 기술을 제시한다. 평가 과정에서도 이러한 요소가 높은 점수를 받는 경향이 있다.

문제는 이러한 기술이 실제 해역에 적합한지 여부에 대한 충분한 검증 없이 현장에 적용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사전 실증이나 장기 데이터 없이 도입되는 사례도 다수 확인되고 있다. 특히 동해안은 수심 변화가 크고 조류가 빠르며 파도의 영향이 강한 해역이다. 이 때문에 환경 적합성을 고려하지 않은 공법은 구조물 유실과 해조류 탈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현장 전문가들은 "문제의 본질은 기술이 아니라, 검증 없이 도입되는 구조 자체"라고 지적한다. 즉, 기술의 완성도보다 적용 방식과 관리 체계가 더 큰 문제라는 의미다.

◆제안서와 현장의 괴리, 책임은 어디에

또 하나 반복적으로 확인된 문제는 제안서와 실제 시공 사이의 괴리다.

사업 제안 단계에서는 신기술 적용과 차별화된 구조, 높은 성과가 강조된다. 그러나 실제 시공 과정에서는 기술이 제대로 구현되지 않거나 기존 방식으로 대체되는 사례가 나타난다.

일부 구간에만 제한적으로 적용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 과정에서 책임은 불분명해진다. 시공업체는 감독기관과 협의된 변경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발주기관인 한국수산자원공단은 이를 부인하고 있다.

이처럼 현장과 행정 사이에서 책임 공백이 발생하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 문서와 현장 사이의 불일치가 확인되더라도 이를 명확히 규명하는 절차는 미흡한 상황이다.

◆반복되는 실패…현장에서는 무슨 일이

이 같은 문제는 울산 당사동 우가 해역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해당 사업에는 약 7억5천만 원이 투입됐으며, 동일 업체가 수행한 타 지역 사업까지 포함하면 총 14억 원 규모에 이른다. 그러나 설치된 수직형 연승 시설 963개 가운데 400개 이상이 유실되며 절반 가까운 구조물이 기능을 상실한 것으로 확인됐다.

바닷속에는 끊어진 로프와 기울어진 구조물이 방치돼 있었고, 해조류는 뿌리를 내리지 못한 채 떠다니고 있었다. 일부 구간은 사실상 바다숲 기능이 사라진 상태였다. 또한 관리 중단 이후 방치된 정황도 곳곳에서 확인됐다.

문제는 단순한 유실에 그치지 않는다. 당초 과업지시서에는 특정 길이와 방식의 시설 설치가 명시돼 있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다른 형태와 규모로 시공된 정황이 확인됐다. 해조류 종자 투입량 역시 계획과 차이를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관련업계는 이를 명백한 계약 이행 문제로 보고 있다. 제안서대로 시공이 이뤄지지 않았다면 이는 기술의 한계를 넘어 관리·감독 체계의 실패로 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계약 위반 여부를 따지는 절차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울산 당사동 우가 앞바다에서 로프에 이식된 해조류 종자가 활발히 성장하며 풍성한 생육을 보이고 있다.
같은 해역에서 신기술을 적용해 해조류 이식용으로 설치된 로프 주변에 해조류가 전혀 확인되지 않고 있다.

◆해법은 '기술'이 아닌 '구조'

사업에 적용된 신기술 자체는 이론적으로 정교한 구조를 갖추고 있었다. 부력 장치를 활용한 다층 구조, 포자 확산을 통한 자연 증식, 조식동물 접근 차단, 이동형 종자 확산 시스템 등 다양한 장점이 제시됐다.

설계 단계에서는 높은 효율과 생존율이 기대됐지만, 이러한 기술이 실제 해양 환경에서도 동일하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실증 데이터는 충분하지 않았다.강한 파도와 태풍, 계절 변화 등 복합적 변수에 대한 검증 없이 적용된 기술은 결국 대규모 유실로 이어졌다. 일부 기술은 실험실 수준에서는 효과가 있었지만, 현장에서는 재현되지 못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사후 대응 역시 문제로 지적된다. 해조류 유실이 확인된 이후 재시공 요구가 있었지만 일부 업체는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 특히 이에 따른 명확한 행정 제재도 뒤따르지 않았다.

보수 논의 역시 지연되거나 실행되지 않는 경우가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책임 구조는 더욱 불명확해졌다. 현재 구조에서는 실패는 환경 탓으로, 신기술은 '도전'으로 포장되며, 책임 주체는 사라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실패에 대한 기록과 공유도 체계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반면, 성공 사례(본보 3월 9일 3면 보도)는 다른 방향을 제시한다.

포항 구룡포 강사·구평 해역에서는 신기술 적용 여부보다 해역 조사와 조류 분석, 단계적 시공, 지속적인 사후 관리가 우선됐다. 그 결과 해조류가 안정적으로 정착하고 어장이 회복되는 성과가 나타났다. 이는 현장 여건에 맞춘 설계와 꾸준한 관리가 사업 성패를 좌우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 사례는 바다숲 조성사업의 성패가 기술의 혁신성보다 기본적인 절차와 관리에 달려 있음을 시사한다.

해양 전문가들은 이제 문제의 핵심을 기술이 아닌 제도로 보고 있다. 사전 검증 강화, 해역 적합성 평가 의무화, 제안서 이행 여부에 대한 현장 점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아울러 책임 시공 및 보증 제도 도입, 독립적인 감리 체계 구축 등이 시급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평가 기준 역시 기술 중심에서 성과와 관리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좋은 기술이 아니라 제대로 관리되는 구조다. 동해안 곳곳에서 반복되고 있는 바다숲 사업의 실패는 우연이 아니다. 검증 없는 기술 도입, 계획과 다른 시공, 책임지지 않는 구조가 맞물린 결과다. 같은 유형의 문제가 반복된다는 점에서 구조적 결함이라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바다를 살리기 위해 시작된 사업이 오히려 생태계를 위협하지 않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하다. 신기술의 도입을 멈추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검증하고 책임지게 만드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바꿔야 할 것은 '기술'이 아니라 '구조'다. 그리고 그 변화가 바다숲의 진짜 출발점이다.

해양특별취재팀=신준민 기자 sjm@idaegu.com 김웅희 기자 woong@idaegu.com 한국재난구조단 경북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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