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깔은 좋은데…영화감독이 만든 드라마, 왜 몰입이 안 될까
영화 문법 그대로 옮긴 드라마, 공감 대신 이질감
(시사저널=정덕현 문화 평론가)
《오징어 게임》의 황동혁 감독이 글로벌 신드롬을 일으킨 이래, 영화감독들의 드라마 진출은 이제 일상이 됐다. 영화 제작 편수가 급감한 현실에서 영화감독들의 드라마 도전은 업계에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지만, 동시에 분명한 한계도 드러낸다.
ENA 월화드라마 《클라이맥스》는 한마디로 파격적이다. 드라마에서 보기 드문 연예계 성 상납 소재를 전면에 내세웠고, 실제 성행위를 암시하는 장면까지 담았다. 여성 정치인이 남성 연예인의 성 상납을 받는 장면이 등장하고, 남성에게 성 상납을 강요받는 여성 연예인 서사도 빠지지 않는다. 극한에 몰린 여배우가 스스로 손목을 그어 자해를 하는 장면이 등장하기도 하고, 기존 드라마에서 직접적으로 표현되지 않았던 여성 간 키스신도 담겨 있다.
정치인이 되어 청와대 입성을 꿈꾸는 방태섭(주지훈 분)과 그의 야망에 동승한 여배우 추상아(하지원 분), 그리고 그들을 무너뜨리고 모든 부와 권력을 손에 넣으려는 이양미(차주영 분)의 치열한 대결은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쫄깃함을 선사한다. 자극과 도파민의 강도로 보면 지금껏 이런 드라마가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독보적이다.
이 정도 자극이라면 ENA 사상 최고 시청률을 기록할 법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실제로 이 드라마는 시작 전까지만 해도 ENA 역사상 최고 시청률을 기대했다. 이지원 감독은 공공연히 "20%를 넘긴 '우영우'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물론 그 발언에는 이 작품에서 특히 고생했을 배우들에 대한 고마움의 표현도 담겼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기대는 빗나갔다. 현재까지 최고 시청률이 3.9%(닐슨코리아)로 결코 낮은 수치는 아니지만, 이 정도의 파격에도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드라마에서 먹히지 않는 영화 문법
첫 드라마 연출에 나선 이지원 감독의 시행착오가 여기서 드러난다. 영화라면 이러한 파격과 자극은 관객들을 끌어모으는 요소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드라마는 한정된 공간에서 비용을 지불하고 끝까지 관람하는 영화와는 사뭇 다르다. 드라마에서 시청자를 붙잡는 건 자극이 아니라, 공감할 수 있는 서사다. 이 관점에서 보면 자극이 훨씬 적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왜 《클라이맥스》보다 몇 배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또한 드라마는 좀 더 일상적인 공감대를 바탕으로 할 때 더 큰 효과를 낸다.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판타지가 없는 현실적인 개연성을 추구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판타지적 설정이 있더라도 그 근간에 일상적인 사건과 감정이 놓여 있을 때 더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우영우라는 판타지적 인물을 내세우면서도, 그 안에 현실적이고 일상적인 사건들을 배치해 공감의 폭을 넓혔다.
반면 《클라이맥스》는 일상 바깥의 훨씬 극단적인 세계를 그린다. 정치권 비리와 연결된 연예계 성 상납이라는 소재가 드라마에 적합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더러운 세계를 꼬집는 드라마가 '선정적인' 느낌을 줄 때, 시청자들이 이에 공감하긴 쉽지 않다. 비판적 시선에서 오는 공감도 존재하지만, 선정성의 아슬아슬함이 시청자로 하여금 리모컨을 자꾸만 만지작거리게 만드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물론 본방송으로 시청하는 것과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로 시청하는 경험은 다를 수 있다. OTT는 이른바 '몰아보기'가 가능하기 때문에 영화적인 서사 구조가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드라마 특유의 긴 호흡이라는 특징은 여전히 존재한다.
스릴러 같은 장르물에서 특히 자주 등장하는 반전 요소는 영화에서는 작품의 긴장도를 높이는 데 효과적인 장치다. 하지만 드라마처럼 긴 호흡으로 이어지는 작품에서 매회 반전을 반복하는 것은 좋은 선택이 아니다. 과도한 반전은 오히려 긴장감을 분산시키고, 심지어 사건을 복잡하게 만들어 이해를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클라이맥스》에서 반복되는 연합과 배신의 구조가 바로 그런 사례다. 이로 인해 작품은 점점 복잡해지고, 인물들의 욕망마저 흐릿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발생한다.
이러한 문제는 임필성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tvN 토일드라마 《대한민국에서 건물주 되는 법》에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이 작품은 생계형 건물주 기수종(하정우 분)이 빚에 쪼들리면서도 재개발 구역에 포함된 자신의 건물을 지키기 위해 가짜 납치극까지 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기막힌 사건을 다룬 블랙코미디다. 기수종이 허름한 건물 하나를 지키기 위해 점점 더 황당한 범죄까지 저지르는 상황들은 분명 풍자적인 웃음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이 작품은 지나치게 많은 등장인물이 반복적으로 죽어 나가는 전개를 이어가며 현실을 풍자하려다, 오히려 현실감을 붕괴시킨다.
반전에 대한 강박이 느껴질 정도로 예측 불가능한 사건들이 이어지면서, 기수종이나 그의 아내 김선(임수정 분) 같은 평범한 인물들의 캐릭터는 점점 흔들린다. 이들이 살인과 시체 유기에 가담하는 순간, 시청자가 평범한 인물에게 느끼던 정서적 공감은 흔들린다. 가족을 지키기 위한 선택이라는 변명이 제시되지만, 그들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범죄자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역시 영화라면 충분히 블랙코미디적인 웃음으로 승화될 수 있는 요소다. 하지만 드라마처럼 긴 시간에 걸쳐 전개되는 서사에서는 감정의 연속성을 유지하기 어렵게 만든다.


영화와는 다른 드라마, 그 차이를 인지해야 한다
영화감독들의 드라마 진출은 더 이상 특별한 일이 아니다. 《오징어 게임》의 황동혁 감독을 시작으로 《킹덤》의 김성훈 감독, 《카지노》와 《파인: 촌뜨기들》의 강윤성 감독, 《삼식이 삼촌》의 신연식 감독, 《사냥개들》의 김주환 감독, 《욘더》의 이준익 감독 등 수많은 영화감독이 드라마 연출에 뛰어들고 있다.
한때는 영화감독들이 드라마를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하는 시선도 존재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적어도 기회만 되면 드라마를 찍고 싶어 한다. 현실적으로 영화 제작 편수가 급감했고, 극장에서 OTT 중심으로 재편된 콘텐츠 환경은 감독들로 하여금 드라마라는 형식에 눈을 돌리게 했다.
이러한 흐름이 가져온 장점은 분명하다. 작품의 영상적인 완성도가 높아졌다. 미장센과 연출 의도가 분명하게 살아나며, 드라마의 시각적 수준은 크게 향상됐다. 하지만 그만큼 단점도 분명히 드러난다. 영화적 문법을 그대로 드라마에 옮겨오면서, 단순히 긴 이야기를 회차로 나눈 것처럼 보이는 작품도 적지 않다. 회차 간 연결이 느슨해지거나, 몇 회면 충분할 이야기를 불필요하게 늘어뜨리는 경우도 발생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는 드라마라는 작품의 정서적 특성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영화에서 효과적이었던 성공 공식을 그대로 이식한다는 점이다. 그 결과 기대했던 만큼의 몰입도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물론 제작자들은 이를 기존 드라마와는 다른 '시리즈 문법'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여전히 드라마를 기존의 감상 방식으로 소비하고 있다.
결국 필요한 것은 차이에 대한 인식이다. 영화와 드라마는 분명 다른 장르다. 이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완성도가 높아도 '끝까지 보게 만드는 드라마'는 나오기 어렵다. 과도기가 필요할 수는 있겠지만 현재의 대중이 원하는 드라마 전략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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