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셋, 전쟁 셋…내우외환 4년 한은 이끈 이창용 총재 내일 퇴임

김신영 기자 2026. 4. 19.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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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용 총재의 공과 과]
역대급 인플레이션 맞서 적극적 통화 정책
‘적극적 소통’은 양날의 검으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0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스1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0일 퇴임한다. 이 총재는 문재인·윤석열 대통령 교체기에 임명돼 이재명 정권에 이르기까지, 4년의 임기 동안 대통령 세 명을 거쳤다. 한은 총재를 처음으로 연임해 8년간 일한 전임 이주열 총재도 세우지 못한 기록이다. 그만큼 지난 4년간 한국 정치 상황이 극심한 혼란을 거쳤음을 드러내는 결과이기도 하다. 코로나 와중에 취임한 이 총재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에 이어 최근 발발한 중동 전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벌이는 관세 전쟁 등 글로벌 충격에도 잇따라 노출됐다. 한 전직 한은 고위 당국자는 “한은이 재무부로부터 독립한 1998년 이래로 한은을 거쳐간 총재 중 나라 안팎의 위기를 이 정도로 겪은 총재는 이 총재가 유일하다는 데는 다들 이견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국회에서 인사 청문 보고서가 채택되면 이 총재는 신현송 전 BIS(국제결제은행) 통화경제국장에게 통화 정책 수장 자리를 넘겨주게 된다. 여러 전쟁이 여전히 진행 중인 가운데 유가 상승, 인플레이션 조짐, 재정 적자, 부동산 거품, 양극화 심화 등 한국 경제는 여전히 초대형 태풍 속을 헤쳐 나가는 중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이명박 정권에서 일했던 전력(前歷)에도 불구하고 경제학자이자 국제기구 경험이 많은 신현송 후보자를 중용한 데 대해선 비슷한 점이 많은 이 총재의 기조를 크게 흔들지 않는 안정을 선택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신 후보자가 미 연방준비제도, IMF(국제통화기금), BIS(국제결제은행) 인사들과 이 총재가 구축한 탄탄한 네트워크를 이어갈 적임자라는 점도 긍정적 요소다.

202년 2월 한 세미나에서 신현송 차기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인 신현송(오른쪽) 당시 국제결제은행 통화경제국장과 이창용 한은 총재가 대담하는 모습. /연합뉴스

◇코로나 인플레이션 대응, 적극적 금리 인상

지난 4년간 잇따라 대형 충격이 발생하면서 이창용 총재도 이에 맞서 여러 기록을 세웠다. 이 중에선 역대 총재 중 가장 큰 폭으로 기준금리를 올린 총재라는 점이 두드러진다. 미국을 필두로 각국 정부가 경쟁적으로 돈을 풀며 40년 만에 가장 심각한 글로벌 인플레이션이 발생한 데 따른 대응이었다. 2022년 4월 취임 이후 전년 대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6.3%까지 오르자 이 총재는 두 차례의 빅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 등을 통해 빠르게 금리를 올렸다. 당시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취임 당시 1.5%였던 금리를 9개월 만에 3.5%로 인상했다. 2008~2009년 글로벌 금융 위기 때 이성태 전 총재, 2020년 코로나 확산 후 이주열 전 총재가 경기 침체를 막으려 기준금리를 빅스텝 이상으로 내린 적은 있었지만 빅스텝 인상 기록은 이 총재가 처음 세웠다.

역대 한국은행 총재와 한미 기준금리 추이. /한국은행

과감한 기준금리 인상으로 한은은 세계 주요국 물가 안정 목표(2%)에 가장 먼저 안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총재는 한은 총재 중 처음으로 글로벌 경제 전문지 ‘더뱅커’가 선정한 ‘올해의 중앙은행 총재상’에 2024년 선정됐는데 그 배경엔 코로나 이후 단행한 적극적인 통화 정책이 있었다고 평가된다. 이 총재가 이끄는 금통위는 2024년 하반기 물가 안정세가 뚜렷해지고 미 보호무역주의 강화 등으로 인해 오히려 경기 둔화 위험이 부각되자 기준금리를 2025년 5월까지 네 차례 인하해 지금의 연 2.5%로 유지하고 있다.

지난 10일 금통위까지 11개월 동안 기준금리를 동결한 배경이 환율 상승, 고물가 위험, 부동산 과열 등 ‘인하 불가’ 요인에 지정학적 불확실성, 경기 둔화 조짐 등 ‘인상 불가’가 겹친 ‘진퇴양난 경제’ 탓이라는 점은 신 후보자에게 남겨진 숙제로 꼽힌다. 아울러 역대 가장 길게 유지되며 한국의 자금 유출 원인으로 지목되는 한미 금리 역전도 장기적으로는 해결해야 할 과제다.

/국제통화기금(IMF)

◇글로벌 네트워크로 BIS 고위직도

이 총재 재임 기간은 계속 늘기만 했던 한국의 가계 부채 비율이 줄어든 첫 시기이기도 하다. 문재인·윤석열·이재명 정권 모두 부동산 가격 ‘거품’을 줄이기 위해 적극적으로 주택 대출을 조이는 가운데 한은도 가계부채 통제에 대해서는 정부와 ‘원팀’으로 일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며 대체로 긴축적인 금리 정책을 폈다. 여러 요인이 겹쳐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21년 3분기 99.1%에서 지난해 말 88.6%로 내려갔다. 다만 이 수준은 이 총재가 2024년 3월 기자회견에서 밝힌 목표치인 ‘80% 선 아래’엔 아직 못 미친다.

/한국은행

IMF 아시아·태평양 담당 국장 시절 미 워싱턴 정·재계 및 학계에서 쌓은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경제 규모가 불어난 한은의 글로벌 존재감을 끌어올릴 것도 이 총재의 업적으로 꼽힌다. BIS 이사에 이어 BIS 내 고위급 핵심 협의체인 글로벌금융시스템위원회(CGFS) 의장직을 맡은 것도 첫 성과다. 한은 총재 최초로 연준이 개최하는 중앙은행장 회의인 잭슨홀 경제정책 심포지엄, 유럽중앙은행(ECB) 신트라 포럼, IMF 패널 토론 등에 주요 연사로 참여하는 한편 재닛 옐런 전 연준 의장, 차기 연준 의장에 오를 예정인 케빈 워시 전 연준 이사 등과도 친분이 두터워 한은에 초청하는 등 적극적으로 교류했다.

◇적극적 소통, ‘양날의 검’으로

이 총재는 활발하고 외향적인 성격을 통해 ‘한은사(寺)’라고 불리던, 정적인 한은 내부 분위기를 역동적으로 바꾼 데 일조했다고 평가된다. 기자회견을 통해 그 어떤 한은 총재보다도 솔직하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한 점도 점잖았던 전임 총재들과 차별됐다. 이런 스타일은 특히 전임 이주열 전 총재가 ‘오리지널 한은맨’ 특유의 모호하고 진지한 발언으로 때로는 과도하게 조심스럽다는 평가를 받았던 것과 대조된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022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재닛 옐런 당시 미국 재무부 장관과 면담에 앞서 기념 촬영을 하는 모습. /뉴스1

다만 이런 적극적인 소통은 때때로 시장의 혼란을 부르고 논란을 일으키는 ‘양날의 검’이 됐다. 지난해 11월 블룸버그TV 인터뷰에서 수도권 집값 불안과 환율 급등을 이유로 기존 금리 인하 기조에서 ‘방향 전환(pivot)’을 할 가능성을 시사하자 시장에서 기준금리 인상론이 불붙으며 한국 국채 금리가 급등하는 등 충격이 발생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 10일 기준금리 결정 회의 후 간담회 때 이 총재 본인도 아쉬웠던 점으로 당시의 사건을 꼽으며 “나는 기준금리 인하에서 동결로의 전환을 의미했는데 이것이 인상으로 해석돼 당혹스러웠다. 발언에 신중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계기가 됐다”고 했다. 지난해 하반기 환율이 급등하자 “요즘 젊은 사람들이 ‘쿨해서’ 미국 주식에 투자한다고 한다”고 한 말도 본인의 의도와 달리 한은이 ‘서학개미’에게 책임을 전가한다는 뜻으로 해석돼 논란을 일으켰다.

이 총재 때 새로 시작한 또 다른 프로젝트로는 저출산·고령화, 지역 균형 발전, 입시 제도, 자율 주행 택시, 연명 의료 등 사회 이슈에 대해 한은이 전방위적으로 의견을 내는 이른바 ‘구조 개혁 시리즈’도 있다. 이에 대해선 한국의 장기적인 성장률 제고를 위해 한은이 전문성을 토대로 정책적 의제를 제기했다는 긍정적 평가와 위태로운 경제 상황에 한은이 본연의 의무인 통화 정책에 더 집중해야 했다는 지적이 엇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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