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만나는 우리동네 문화유산] 칠곡 약목 신유장군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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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칠곡군 약목면으로 들어서는 길은 평온하다.
조선 후기 무신 신유 장군의 유적이다.
신유 장군은 17세기 중반 무과에 급제한 뒤 군문에서 경력을 쌓은 인물이다.
조선군은 조총을 중심으로 한 병력으로 흑룡강 일대까지 진군했고, 신유 장군은 이 부대를 지휘한 인물로 기록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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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묘역 넘어 동북아 국제 질서 속 군사 행동 조명


경북 칠곡군 약목면으로 들어서는 길은 평온하다. 들녘은 계절을 따라 색을 바꾸고, 마을은 낮은 숨으로 하루를 이어간다. 그러나 이 고요한 풍경 속에, 총을 들고 만주 벌판을 넘어 흑룡강까지 향했던 한 장군의 흔적이 남아 있다. 조선 후기 무신 신유 장군의 유적이다.
유적 입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북정문'이 시야에 들어온다. 이름 그대로 북방 원정을 기리는 상징적 관문이다. 문을 지나면 재실인 존성재와 신도비, 비각이 차례로 배치돼 있다. 구조는 단순하지만 동선은 분명하다. 살아 생전의 삶과 사후의 기림이 하나의 축으로 이어지는 전통 유교식 공간 구성이다.
조금 더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사당 '숭무사'가 모습을 드러낸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장군의 영정과 위패가 단정히 모셔져 있다. 향내가 은은하게 남아 있는 내부는 엄숙하다기보다 차분하다. 누군가의 영웅담을 과장하기보다는, 그가 살아낸 시간의 무게를 조용히 전하는 공간이다.
신유 장군은 17세기 중반 무과에 급제한 뒤 군문에서 경력을 쌓은 인물이다. 그의 이름이 역사에 뚜렷이 남은 계기는 1658년 '나선정벌'이다. 당시 조선은 청의 요청에 따라 북방으로 진출한 러시아 세력과 맞섰다. 조선군은 조총을 중심으로 한 병력으로 흑룡강 일대까지 진군했고, 신유 장군은 이 부대를 지휘한 인물로 기록돼 있다.
이 원정은 단순한 군사 충돌을 넘어, 동북아 국제 질서 속에서 조선이 수행한 이례적 군사 행동으로 평가된다. 특히 조총 중심의 전술 운용은 당시 조선군의 군사적 역량을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원정의 생생한 기록은 '북정일기'에 남아 있다. 전투 상황과 이동 경로, 병력 운영이 일자별로 기록된 이 자료는 오늘날로 치면 야전 작전일지에 가깝다. 단순한 역사 기록을 넘어, 현장의 긴장과 전략적 판단이 고스란히 담긴 텍스트다. 이 유적이 단순한 묘역을 넘어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록과 인물, 그리고 공간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숭무사를 지나 뒤편 선석산 자락으로 오르면 장군의 묘역이 자리 잡고 있다. 산등성이를 따라 형성된 묘역은 화려하지 않지만 단정하다. 주변을 둘러싼 소나무 숲과 어우러져, 오히려 절제된 위엄이 느껴진다. 바람이 스치는 소리 외에는 특별한 소음도 없다. 전쟁의 기억은 사라졌지만, 그 흔적은 이곳에 고요히 남아 있다.
현재의 유적은 1980년대 대대적인 정비를 거쳐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칠곡군이 부지를 확보하고 사당과 재실, 비각 등을 신축·복원하면서 보존의 틀이 마련됐다. 이후 관리가 이어지며 지역 내 대표적인 역사 유적으로 자리 잡았다.
눈여겨볼 점은 이 공간이 단순한 '보존'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산업과 주거 중심으로 알려진 칠곡의 이미지 속에, 역사 자산을 함께 녹여내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전쟁사와 기록, 인물 유산이 함께 남아 있는 이곳은 교육 현장으로서의 활용 가능성도 충분하다. 실제로 지역에서는 학생 대상 체험 프로그램과 연계 방안도 조심스럽게 논의되고 있다.
무엇보다 이 유적이 특별한 이유는 '멀리 있었던 역사'를 '가까운 공간'으로 끌어당긴다는 데 있다. 흑룡강이라는 낯선 지명, 북방 원정이라는 거대한 사건이 약목면의 한 자락에서 현실감을 얻는다. 걸어서 닿을 수 있는 거리 안에, 조선의 북방사가 숨 쉬고 있는 셈이다.
인근에서 만난 주민 김민서 씨(여·41)는 이렇게 말했다.
"여기가 그냥 묘소 있는 데인 줄만 알았지요. 그런데 알고 보니 옛날에 여기서 만주까지 가서 싸웠던 장군 이야기라 하더라고요. 애들 데리고 한 번씩 올라오면, 책에서 보던 역사가 조금은 가깝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인근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박정모 씨(57)는 유적의 '거리감'이 줄어든 점을 강조했다.
"흑룡강이니 나선정벌이니 하면 원래는 책에서나 보던 이야기잖아요. 그런데 이 동네에 그런 인물이 있었다고 하니까 느낌이 다릅니다. 멀리 있는 역사가 아니라, 우리 동네에서 시작된 이야기처럼 느껴져요."
학부모 입장에서의 활용 가능성도 언급됐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이순재 씨(42)는 "아이들 데리고 오면 그냥 산책이 아니라 공부가 됩니다. 교과서에서 배우는 내용이 눈앞에 있으니까 훨씬 잘 이해하더라고요. 안내판이나 설명이 조금만 더 보강되면 체험 학습 장소로 더 좋아질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유적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소규모 상점을 운영하는 최현대 씨(61)는 관광 자원으로서의 가능성을 짚었다.
"지금은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 아니면 잘 모르고 지나가요. 그런데 이런 스토리가 알려지면 분명히 사람들이 옵니다. 칠곡이 공단만 있는 데가 아니라 이런 역사도 있다는 걸 같이 보여줘야죠."
마준영기자 mj3407@yeongna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