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3당 합당 업보’ 벗고 ‘민주세력 본산’ 명예 회복할까

성한용 기자 2026. 4. 19.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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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636
‘야당 도시’서 ‘보수의 아성’으로 변신
2002년 대선 노무현 30% 못 미쳐
윤석열 탄핵 뒤 대선 김문수 과반 득표
박형준 부산시장이 지난 3월23일 국회 본청 계단 앞에서 부산 발전 특별법, 부산 글로벌허브도시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삭발을 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부산은 대한민국 제2의 도시였습니다. 서울특별시 다음 부산직할시였습니다. 지금은 여러 광역시 가운데 하나에 불과합니다. 부산은 완만한 우하향 추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은 떠나고 부산에 남은 것은 ‘노인과 바다’뿐이라는 자조가 있을 정도입니다.

부산이 쇠락한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수도권 집중입니다. 둘째, 부산 정치의 실패입니다. 오늘은 부산 정치의 실패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부산 사람들을 좋아했습니다. 자유분방하고 개방적이고 활달한 기질이 좋았습니다. 부산 사투리도 좋아했습니다. 대학에서 사회에서 부산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부산시장 후보인 전재수 의원(왼쪽)과 국민의힘 부산시장 후보인 박형준 시장. 연합뉴스, 부산시 제공

박정희 유신 독재가 정점으로 치닫던 1970년대 말 야당에서 가장 치열하게 반독재투쟁을 벌인 정치인은 김영삼 신민당 총재였습니다. 김영삼은 부산을 상징하는 정치인이었습니다. 부산은 야당 도시였습니다. 1979년 와이에이치 노동자들의 신민당사 농성 사건, 김영삼 신민당 총재 제명 사건이 터졌습니다. 부마 민주항쟁이 일어났습니다.

10월16일 교내 시위를 벌이던 부산대학교 학생들이 시내로 진출해 “유신철폐” “독재 타도”를 외쳤습니다. 고신대와 동아대 학생들, 시민과 상인들이 가세했습니다. 경찰로 시위 진압이 어려워지자 박정희 정권은 18일 0시 계엄을 선포했습니다. 특전사 군인들이 투입됐지만, 시위는 오히려 마산으로 확산했습니다. 마산 시위에는 노동자와 고교생도 가세했습니다. 박정희 정권은 20일 0시 위수령을 발동했습니다. 군인들은 곤봉으로 시민들의 머리를 가격하는 등 잔인하게 진압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과 차지철 경호실장은 시위가 또 일어나면 발포해서 진압하겠다고 했습니다.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은 만류했습니다. 권력 내부의 갈등은 중앙정보부장이 대통령을 총으로 쏴 죽이는 10·26으로 치달았습니다. 인과 관계로 보면 김영삼 총재와 부마 민주항쟁이 박정희 독재를 끝장낸 셈입니다.

정치인 김영삼은 전두환 독재와도 치열하게 싸웠습니다. 목숨을 걸고 단식했습니다. 1985년 2·12 12대 총선에서는 김영삼 김대중 양 김 씨가 만든 신민당이 돌풍이 일으켰습니다. 당시 선거제도는 한 선거구에서 두 명씩 뽑는 중선거구제였습니다. 부산은 6개 선거구였는데 무려 3개 선거구에서 민정당 후보를 3등으로 밀어내 떨어뜨렸습니다. 저는 부산 친구들에게 “부산은 참 대단하다”고 경의를 표했습니다.

1987년 6월 항쟁에서 부산의 열기는 서울에 못지않게 뜨거웠습니다. 그러나 1987년 12월 대선에서 김영삼 김대중 양 김 씨는 후보 단일화에 실패하고 민정당의 노태우 후보에게 정권을 상납했습니다. 1988년 13대 총선에서 3당으로 전락한 김영삼은 ‘엉뚱한’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1990년 시무식에 이런 말을 했습니다.

“4당 체제는 국민에게 불안만 가중시키고 나라의 장래를 불확실하게 하고 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반드시 현 체제를 고쳐야 한다.”

“당을 깨고 나간 사람들과의 이합집산이어서는 안 된다. 잔꾀가 아니라 큰 정치를 해야 한다. 작은 바둑이 아니라 큰 바둑을 두는 정치를 해야 한다.”

김영삼은 1990년 1월22일 3당 합당을 했습니다. 명분은 ‘구국의 결단’이었지만 실제로는 ‘배신과 변절’이었습니다. 자신의 대통령 꿈을 이루기 위해 부산시민들이 오랫동안 쌓은 민주화 업적을 통째로 팔아먹은 범죄였습니다. 피케이(부산·경남)를 티케이(대구·경북)에 통째로 갖다 바쳐 영남 패권주의를 완성하고 호남을 고립시킨 만행이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뒷날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한겨레 자료 사진

“3당 합당은 두 가지 충격을 주었다. 첫째, 호남이 정치적으로 고립되었고 영남은 보수 정치세력의 손아귀에 완전히 들어가고 말았다. 이것은 우리 정치사에 심각한 후유증을 남겼다. 지역 구도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고착화되었다. 둘째, 우리 정치를 통째로 기회주의 문화에 빠뜨렸다. 철새 정치의 수준이 달라진 것이다. 정치적 야심을 가진 사람이 국회의원이 되려고 당을 옮겨 다니는 일은 그 전에도 있었다. 그렇지만 정권을 놓고 자웅을 겨루던 정치 지도자가 그런 일을 한 적은 없었다.”

최근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해 울산 남갑 보궐선거에 출마하기로 한 전태진 변호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1987년 6월 민주화운동을 보며 역사와 정치에 관심을 가졌다. 대학에 입학할 때 3당 합당이 있었다. 그 이후 한국 정치는 어두운 지역주의에 갇혔다. 특히 민주화를 선도하던 제 고향 울산을 비롯해 부·울·경이 급격히 보수화되고 지역주의가 고착화되는 것을 보며 심한 안타까움을 느꼈다. 언젠가 이를 반드시 극복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게 됐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전태진 변호사가 4월17일 국회에서 열린 인재 영입식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전태진 변호사는 울산 남갑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다. 연합뉴스

노무현과 전태진의 말대로 1990년 3당 합당 이후 ‘민주화의 성지 부산’은 사라지고 ‘보수의 아성 부산’만 남았습니다. 3당 합당 이후 선거에서 나타난 부산의 표심이 이를 증명합니다.

1995년부터 지금까지 보궐선거 두 차례를 포함해 모두 열 번의 부산시장 선거가 치러졌습니다. 2018년 오거돈 시장 한 차례를 빼고는 모두 국민의힘 계열 정당 후보가 당선됐습니다. 2018년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 여파,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압도적 지지, 김정은-트럼프의 북미 정상회담이 겹치며 민주당이 부산, 울산, 경남 광역단체장을 다 차지했던 바로 그 선거였습니다. 온 우주의 기운이 민주당을 밀어준 아주 예외적인 경우였습니다.

부산시장은 지방선거니까 그럴 수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부산의 대통령 선거 표심은 매우 실망스러운 것이었습니다. 2002년 한나라당 이회창, 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맞붙었을 때 부산 득표율은 이회창 66.74%, 노무현 29.85%였습니다. 노무현 후보는 부산 사람이었는데도 부산에서 30%도 얻지 못했습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어쨌든 노무현 후보가 당선되는 바람에 부산 사람들은 욕을 덜 먹고 넘어갔습니다.

2012년 새누리당 박근혜,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가 맞붙었을 때 박근혜 59.82%, 문재인 39.87%였습니다. 부산에서 변호사로 일하며 민주화에 기여한 ‘부산 사람’이 아니라 ‘독재자의 딸’을 선택한 것입니다.

제가 가장 놀란 것은 지난해 대통령 선거였습니다. 윤석열 비상계엄과 탄핵으로 치러진 궐위 대선인데도 부산 득표율은 이재명 40.14%, 김문수 51.39%였습니다. 부산 유권자들의 생각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한동안 제 주위의 부산 출신 지인들에게 “부산 사람들은 도대체 왜 그러냐”고 짜증을 부렸습니다.

6·3 지방선거에서 부산시장 후보로 민주당의 전재수 후보, 국민의힘의 박형준 후보가 확정됐습니다. 여론조사는 전재수 후보가 앞서 있습니다. ‘여론조사꽃’이 13~14일 부산 18살 이상 1004명에게 전화 자동응답 방식으로 한 여론조사는 전재수 49.9%, 박형준 41.2%였습니다. 8.7%포인트 차이입니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누리집 참고)

부산에서 전재수 후보가 박형준 후보에 앞서는 것은 ‘이재명 효과’와 ‘전재수 효과’ 때문이라고 저는 봅니다. 전재수 후보는 2024년 총선 때 부산에서 민주당 후보로 유일하게 당선된 사람입니다. 하지만 여론조사꽃 조사에서 정당 지지도는 민주당 45.7%, 국민의힘 40.0%로 5.7%포인트 차에 불과했습니다. 오차범위 이내입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실제 선거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남은 기간에 선거가 ‘전재수 대 박형준’ 구도로 진행되면 전재수 후보에게 승산이 있지만, ‘민주당 대 국민의힘’ 구도로 진행되면 박형준 후보에게 승산이 있다고 저는 봅니다.

지난 15일 ‘한겨레 송채경화의 공덕포차’에 전재수 후보가 출연했습니다. 과거 선거에서 나타난 부산의 표심에 대해 제가 불만을 표시하자 전재수 후보는 “그래도 부산에서 민주당의 득표율이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며 자신의 승리를 자신했습니다.

그런데 전재수 의원의 지역구인 부산 북갑 보궐선거를 둘러싸고 좀 이상한 기류가 형성되고 있습니다. 하정우 청와대 에이아이(AI) 미래기획수석 출마 여부가 관심사로 떠오르고, 국민의힘에서 제명된 한동훈 전 대표가 무소속 출마 의사를 밝히면서 민주당과 국민의힘,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와 한동훈 전 대표의 대결 구도가 부산시장 선거에 투영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전재수 후보나 박형준 후보 두 사람 모두에게 바람직하지 않은 흐름입니다. 하정우 수석의 거취가 결정되고 국민의힘에서 공천을 마무리한 뒤에야 불안정성이 해소될 것으로 보입니다.

마무리하겠습니다. 부산은 본래 민주개혁 세력의 본산이었습니다. 1990년 김영삼의 3당 합당을 계기로 보수의 아성으로 변했습니다. 배신은 김영삼이 하고 그 대가는 노무현과 문재인이 치렀습니다. 부산이 3당 합당의 업보를 갚을 때가 됐습니다. 승패와 관계없이 부산은 이제 국민의힘 인질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이번 부산시장 선거에서 유권자들은 ‘누가’ ‘어떻게’ 부산을 대한민국 제2의 도시로 다시 우뚝 세울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정책 선거로 가야 합니다. 그게 바로 부산을 살리는 길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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