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음감이요? 음악적 소양이 더 중요하죠” [.txt]
230개 현 조이고 풀어 소리 빚는 ‘예술가’
연주자와 악기, 관객 연결 돕는 ‘통역사’
자격증 시험 합격해도 5년 이상 도제식 훈련
“디지털 시대 입지 좁아졌지만, 가업 이을 것”

우리는 일을 해서 돈을 벌고,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보람도 얻습니다. 지금 한국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일 이야기를 ‘월급사실주의’ 동인 소설가들이 만나 듣고 글로 전합니다.
애프터서비스 신청을 하고 일상이 망가진 상태로 일주일을 기다렸다. 저렴한 디지털 피아노라 수리비가 많이 나오면 새로 사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는데, 방문한 기사님은 간단하게 고쳐주셨다. 비용도 저렴했다. 덕분에 루틴을 회복해 퇴고의 고단함을 덜 수 있었다. 그분의 메신저 프로필을 보니 조율사. 어떤 직업인지 궁금해졌다.
“피아노 조율사 오지운입니다. 2022년부터 조율사로 활동하고 있어요. 2018년부터 일을 배웠습니다.”
차분한 목소리의 오지운 조율사를 만난 건 봄비가 제법 세차게 내리던 날이었다. 그가 메신저로 알려준 곳은 서울 예술의전당 맞은편에 있는 피아노 전시장. 나이보다 더 앳돼 보이는 오 조율사의 안내를 받아 안에 들어서니 야마하, 스타인웨이의 그랜드 피아노 수십대가 줄지어 있었다. 난생처음 보는 장관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인터뷰 대상을 물색하다 그들이 조율사라는 직업을 갖게 된 계기를 찾아봤다. 음악을 전공하거나 성가대 반주자로 악기와 친숙한 이들이 조율사의 일하는 모습에 반해 전향한 경우가 의외로 많았다. 악기 수리나 판매를 하다가 전문적으로 조율 기술을 배운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 오 조율사의 경우는 어떨까.
“고등학교 시절에 음악과 과학 과목 성적이 괜찮았거든요. 이 둘을 함께 할 수 있는 직업이 뭘까 고민하다 음향 엔지니어가 될까 하고 생각했었죠. 그러다 할아버지가 제안하셨어요.”
그의 대답에 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몇년 전 유재석이 진행하는 인기 프로그램에 출연해 일반인들에게도 화제가 된 피아노 조율 명장 1호, 이종열 조율사가 그의 외조부님이라는 건 인터뷰 전부터 알고 있었다. 사전 조사를 위해 조율사를 다룬 방송 프로그램을 찾아보다 모 뉴스 채널이 제작한 교양 프로그램을 발견했다. 30년 넘게 예술의전당 전속 조율사인 이종열 명장을 심층적으로 인터뷰한 것이었다. 관심 있게 보는데 인터뷰 말미에 ‘외손녀 오지운’이라는 자막과 함께 오 조율사가 등장했다. 인터뷰 요청을 하기로 마음먹은 직후여서 깜짝 놀랐다. 덕분에 몇가지 정보를 안은 채 그를 만나게 됐다.
“자격증 시험을 위한 학원이 있기는 한데, 저는 할아버지한테 개인적으로 배웠죠.”
국가 기술 자격증은 피아노 조율기능사와 산업기사로 나뉜다. 기능사는 업라이트 피아노, 산업기사는 그랜드 피아노를 대상으로 실기시험을 치른다. 시험에 통과해 자격증을 취득했다고 해서 바로 현장에 투입될 수 있는 건 아니다. 선배 조율사로부터 본격적으로 일을 배우는 과정이 필요하다. 오 조율사처럼 살아 있는 전설과 같은 집에 살면서 배우는 건 당연하게도 극히 드문 사례다.
보통은 학원에서 협회 가입을 권유한다. 이 분야의 유일한 사단법인인 한국피아노조율사협회의 신입 회원이 되면 선배들이 먼저 관심을 보인다. 보조 조율사가 되어 현장에서 배울 기회를 얻기도 하고 악기사, 피아노 매장, 공방 등과 같은 실전에서 써먹을 수 있는 기술을 배운다. 5년차인 오 조율사 역시 인터뷰 장소인 전시장에 주기적으로 나와 배움을 이어 나가는 중이다.
임관한 지 5년차 된 장교는 대개 중대장을 마치고 참모직을 맡아 해당 분야의 전문가로 일한다. 일반 기업에서도 5년차면 실무에 빠삭한 대리나 과장급이다. 그런데 조율사가 된 뒤에도 짧아도 5년은 도제식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건 그만큼 전문성이 요구된다는 뜻일 터.

좋은 조율사의 자질을 얘기하다 절대음감이냐고 물으니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는 아니고요. 조율사 중에도 절대음감인 분이 많지는 않아요. 음악적인 소양이 필요하죠. 분해하고 조립하는 일에 소질이 있으면 더 좋고요.”
절대음감이 피아니스트에게는 더 유리할 수 있어도 좋은 조율사의 요건은 아니란 게 업계의 중론이다. 여기서 조율사가 하는 일에 대한 간단한 소개가 필요할 것 같다. 피아노 조율은 크게 조율, 조정, 정음으로 분류할 수 있다. 우리가 흔히 ‘조율이 필요하다’라고 할 때는 이 세 요소가 포괄된 것이다.
‘조율’이란 기준 음을 설정한 뒤 230개 정도 되는 현을 조이고 풀어주며 나머지 음의 정확한 높이를 맞추는 일이다. 예전에는 기준 음이 시대와 지역에 따라 제각각이었다. 약간의 비약이 있겠지만, 같은 악보를 보고도 바흐와 베토벤이 각기 다른 소리를 떠올렸다는 얘기다. 20세기 중반에 이르러 국제표준화기구(ISO)가 ‘4옥타브 라’를 440㎐로 맞추는 것을 표준으로 채택하면서 널리 쓰이게 되었다.
어떤 도구로 조율 작업을 하는지 궁금했다. 오 조율사가 가방 안에 있는 도구들을 탁자 위에 올리며 설명해 주었다. 예전에는 외국에서만 파는 도구가 대부분인데다 고가여서 직접 만들어 쓰기도 했는데, 지금은 직구로 구할 수 있는 게 많아졌단다. 기본적인 것들은 학원이나 낙원 상가의 피아노 용품점에서도 구매할 수 있다.
“필수 도구는 조율 해머가 되겠죠. 이건 소리를 막았다 풀었다 하면서 듣기 위한 웨지입니다. 그리고 해체를 위한 드라이버라든가 여러 조정 공구들이 엄청나게 많아요.”
조율 이후의 단계를 이해하려면 약간의 사전 지식이 필요하다. 피아노 건반을 누르면 해머가 현을 때리며 소리를 낸다. 이 과정에 관여하는 내부 장치를 ‘액션’이라고 한다. ‘댐퍼’라는 장치는 소리를 멈추는 브레이크 역할을 한다. 오른쪽 페달을 밟으면 댐퍼가 현에서 떨어지며 소리가 길게 유지된다.
‘조정’은 액션과 댐퍼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동작을 조절해 제대로 된 소리가 나오게 하는 작업이다. 7할 이상이 목재로 이루어진 특성 때문에 피아노는 온도와 습도에 민감하다.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수축과 팽창으로 변형되기 일쑤다. 수평이 어긋난 건반을 바로잡는 것부터 손가락으로 눌렀을 때 느껴지는 무게, 건반이 들어가는 깊이, 해머의 움직임을 맞추는 것도 조정 작업에서 이루어진다.
마지막으로 ‘정음’은 조율과 조정을 모두 마친 뒤 88개 건반에서 나오는 소리가 조화롭도록 다듬는 작업이다. 피아노 소리가 둔탁하거나 쨍쨍하게 느껴지는 건 현을 때리는 해머 펠트의 강도 때문이다. 압축한 양털로 만든 해머 펠트를 바늘로 찌르거나 사포로 다듬어 가며 아주 미세하게 음색을 조절하는 작업은 ‘조율의 꽃’이라 불리며 숙련된 조율사만이 할 수 있다.

“내가 원하는 예쁜 소리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상태를 얼마나 유지하게 하는가도 조율사의 능력이죠. 그리고 고객이 원하는 걸 빨리 알아채야겠죠. 연주자와 관객 모두가 만족할 수 있게요.”
어떤 조율사가 되고 싶은지에 대한 그의 답을 들으며 나는 조율사라는 직업이 예술가이면서 통역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상적인 소리를 찾기 위해 오감을 발휘하고, 연주자와 악기, 관객이 올바르게 소통하도록 연결해 주는 일이다. 피아노를 분해해 금속 도구를 손에 들고 소리를 바로잡는 모습을 보면 외과 의사처럼 보이기도 했다.
여느 전문직과 마찬가지로 조율사가 일하는 영역은 다양하다. 연주장이나 기관, 대학, 학원 등의 전속 조율사로 활동하기도 하고, 악기사 매장의 직원으로 일하거나, 수리를 전문으로 하기도 한다. 우리가 가장 먼저 떠올리는, 가정집에 방문하는 프리랜서는 ‘필드 조율사’라고 부른단다.
오 조율사는 요즘 여러 매장과 학원에서 일하고 있다. 필드 조율사도 해보았는데, 처음 마주한 고객들이 나이가 너무 어려 보인다며 놀라는 경우가 많았단다. 그는 체구도 작다. 건반 뚜껑과 보면대는 생각보다 무겁다. 한 가닥의 장력만 해도 70㎏이 넘는 현을 해머로 돌리려면 꽤 큰 힘이 필요하다. 젊은 여성이라는 그의 정체성이 불리할 수 있지 않을까.
“나이가 어리니 조율 실력이 미숙할 것 같다는 의심을 받긴 했어요. 성별은, 글쎄요. 한 20년 정도 전까지만 해도 여자 조율사가 흔치 않았어요. 여자도 조율을 해? 이런 반응도 많으셨고. 그런데 요즘은 여자 조율사가 편하다는 분들이 많아졌어요. 아무래도 집에 외부인을 들이는 거니까.”
조율사의 직업병으로 화제를 돌려 난청이나 손목 관절 문제 같은 건 없느냐고 물었다. 자신은 아직 괜찮은데, 손목이 안 좋은 조율사가 많은 건 사실이며 특히 허리를 굽히는 일이 많아 주의가 필요하단다. 인터뷰 말미에 그가 흥미로운 에피소드도 하나 들려주었다.
“협회에서 폴란드로 국제 총회를 간 적이 있어요. 대절한 버스를 타고 가는데, 차가 멈춰도 어느 정도의 진동이 있잖아요? 그런데 그 진동에 맞춰서 틱틱틱 소리가 계속 나더라고요. 한동안 차 안이 조용했는데 갑자기 한 분이 못 참겠다며 벌떡 일어나셨어요. 야, 여기 잡아봐. 저기 잡아봐. 그러다가 기어이 원인을 찾아냈죠.”
피아노에서 들리는 원인 불명의 잡음과 싸우는 게 조율사들의 일상이다. 고문에 가까운 시간을 견딜 수 없던 이들이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차 내부를 샅샅이 살펴보니 좌석 위 선반에 올려둔 무거운 짐 하나가 원인이었다. 무게를 못 이긴 선반이 아래로 살짝 내려와 봉과 닿으며 진동을 일으킨 것. 조율사가 가득한 버스 안은 이내 평안을 되찾았다.
거실에 놓인 피아노가 중산층의 상징이던 시대가 있었다. 이제 가정집에서 피아노는 사라지고, 디지털 피아노가 그 자리를 메우고 있다. 조율사의 입지도 좁아지고 있다. 그럼에도 2001년생, 앞날이 창창한 오 조율사는 지금 이 길을 뚜벅뚜벅 걸어 가업을 잇겠다며 눈을 반짝였다.
인터뷰를 마치고 도착한 서초역, 퇴근 시간에 물려 지하철을 두대나 보냈다. 겨우 오른 열차 안에서 전쟁 뉴스를 기웃거리다 나를 들여다보았다. 혼란스러운 세파에 마음의 수평이 어긋나고 뒤틀려 있지는 않은가. 내 안에도 기준 음이 필요한 때다. 찌르고 다듬어 좋은 소리를 만들고 싶다. 생명의 노래를 부르고 싶다.
염기원 작가
염기원 l ‘문학의봄’으로 등단해 장편소설 ‘구디 얀다르크’ ‘인생 마치 비트코인’ ‘오빠 새끼 잡으러 간다’ ‘여고생 챔프 아서왕’ ‘블루아이’를 썼다. ‘월급사실주의’ 동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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