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기름이여 안녕···8만2000톤 규모 ‘항공모함급 전기 크루즈선’이 뜬다
길이 275m 대형 선체…승객 1856명 탑승
‘엔진 선박’보다 온실가스 배출량 95% 감축
소형 발전기 탑재하면 대륙 간 이동도 가능



1912년 4월10일, 영국 사우샘프턴 항구에서 미국 뉴욕을 향해 출발하려고 대기 중인 한 척의 배는 사람들의 눈길을 단박에 사로잡았다. 덩치 때문이었다. 길이가 무려 269m였다. 당시 세계 최대 선박이었다. 배의 이름은 바로 ‘타이태닉’이었다.
첫 출항에서 빙산과 충돌하며 대서양에 가라앉는 비극을 겪지만, 타이태닉이 20세기 초반 빠르게 발달한 금속공학 같은 과학기술의 결과물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나무보다 훨씬 튼튼한 강철을 활용해 몸집을 키운, 타이태닉에 필적할 만한 대형 선박이 이 시대에는 자고 일어나면 쏟아져 나왔다.
그런데 이때 등장한 선박에는 덩치를 빼고도 특징이 하나 더 있었다. 굵고 높은 굴뚝이었다. 석탄을 태울 때 나오는 다량의 연기를 효과적으로 뽑아내려면 꼭 필요한 시설물이었다. 거대한 굴뚝을 만든 이유는 또 있었다. 당시 시대적 정서였다. 큰 굴뚝은 힘과 안전의 상징으로 통했다. 이 때문에 타이태닉에는 굳이 필요 없는 굴뚝을 하나 더 꽂기까지 했다. 타이태닉 굴뚝 4개 가운데 하나는 일종의 장식물이었다.
선박 연료에서 석탄이 자취를 감추고, 굴뚝을 ‘힘’으로 보는 시선도 사라지면서 지금 여객선에서는 큰 굴뚝을 찾아볼 수 없다. 그렇다고 굴뚝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작지만 여전히 있다. 엔진에 화석연료를 넣기 때문이다. 중유나 액화천연가스(LNG)를 태워 배의 추진력을 만드는데 배기물이 나오지 않을 리 없다.
그런데 여객선에서 굴뚝이 완전히 사라질 날이 갑자기 성큼 다가왔다. 바다에서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선박 온실가스 배출 감축에 즉효
지난주 독일 조선기업 마이어 베르프트는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열린 국제 크루즈 산업 박람회 ‘시트레이드 크루즈 글로벌’에서 크루즈선 건조 계획 하나를 공개했다. 크루즈선이란 휴양 시설과 고급 객실을 함께 갖춘 대형 여객선이다.
마이어 베르프트가 공개한 이 배의 상상도를 보면 갑판에는 여러 개의 수영장과 선베드가 설치돼 있다. 열대 해변을 연상하게 하는 야자수도 식재돼 있다. 객실은 수백개 이상이다. 방 내부에는 고급스러운 소파와 화장대, TV 등이 갖춰졌다.
사실 지금도 크고 멋진 크루즈선은 많다. 그런데 마이어 베르프트가 만들려는 크루즈선은 좀 다르다. 엔진이 아닌 전기 모터의 힘만으로 스크루를 돌려 바다를 헤쳐가도록 설계됐다. 승객 1856명이 탈 수 있는데, 길이는 275m이고 총톤수는 8만2000t에 이른다. 지난 수년 새 전기만으로 움직이는 배가 세계에서 속속 등장하기는 했지만, 이만한 덩치는 처음이다. 세계 최대 전기 추진선이다.
배에 전기 모터를 달려는 이유는 뭘까. 기후변화 대응 때문이다. 현재 크루즈선 같은 대형 선박은 중유나 LNG를 태워 추진력을 얻는다. 엔진이 실리는 것이다. 작동 과정에서 나오는 배기물에는 온실가스가 섞였다.
반면 배터리와 전기 모터가 실린 전기 추진선에는 배기물을 뿜는 굴뚝 자체가 없다. 마이어 베르프트는 공식 자료를 통해 “(화석연료를 쓰는 크루즈선보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95% 줄어든다”고 했다.
2023년 국제해사기구(IMO)는 해운 활동에서 생기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여 2050년까지 ‘탄소중립(넷제로)’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전기 추진 크루즈선은 이런 계획을 실천할 중요 수단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하이브리드 동력으로 대양 횡단 가능
마이어 베르프트는 전기 추진 크루즈선을 유럽 국가를 오가는 항로에 투입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면서 “스페인과 이탈리아를 잇는 노선이 한 예가 될 것”이라고 했다. 유럽국가의 여러 항구에 설치된 충전 시설에 수시로 들르며 배터리를 쉼 없이 충전하는 방식으로 항해하려는 것이다.
이는 유럽을 벗어난 먼 대륙으로는 항해하기 어렵다는 뜻도 된다. 실제로 현재 상용 배터리 성능으로는 단 한 번 충전해서 수천㎞를 논스톱 항해하는 일은 어렵다. 충전시설을 설치할 만한 육지가 없는 대양을 수십 일에 걸쳐 이 배로 건너는 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마이어 베르프트는 차선책을 만들고 있다. 전기 동력을 기본으로 하되 석유로 돌아가는 소형 발전기를 함께 탑재하려는 것이다. 배터리와 발전기 힘을 조합한 하이브리드 방식으로 운항 거리를 늘리려는 의도다. 마이어 베르프트는 “하이브리드 동력 체계를 쓰면 대서양 횡단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마이어 베르프트는 전기 추진 크루즈선이 이르면 2031년 취항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선박 건조 과정에서 미래 기술이 아닌 상용화한 기술을 최대한 활용할 예정이어서 5년 뒤 실물로 만드는 데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마이어 베르프트는 크루즈선에 실을 배터리 용량이나 예상되는 최대 운항 거리는 공개하지 않았다.
마이어 베르프트는 “전기에서 동력을 얻으면 엔진 소음과 진동이 없어져 승객들에게 안락함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UAE, 내달 1일 ‘OPEC 탈퇴’···호르무즈 봉쇄 장기화에도 독자적 증산 나서나
- ‘조국 저격수’ 김용남 “먼저 공격 안 해” 혁신당 “민주당 우군 맞냐”···재보선 핫플 ‘
- [속보]이 대통령 “하정우 수석, 큰 결단했다…어디에서든 국가·국민 위해 역할 하길”
- 도이치 주가조작 ‘유죄’ 뒤집힌 김건희, 2심 ‘징역 4년’···“시세 조종 가담, 중대 경제 범
- “오배송 책임 전가” 거센 반발에 결국···쿠팡이츠 ‘라이더가 메뉴 확인’ 하루 만에 중단
- [단독]“생각보다 빡빡한 선거될 수도, 절대 오만해선 안돼”···민주당, 비공개 의총서 ‘내부
- MBC ‘추경호 클로징 멘트’에 국힘 “사과 안 하면 취재 거부”···‘선거 개입’ 주장
- ‘진짜 사나이’ 출연했던 해군 첫 여소대장, 최초 주임원사 역사 썼다
- 30년 넘게 제사 지냈는데…대법 “종손 지위는 양도 불가능”
- 대학 붙어 자취방 구했는데 입학 취소?…농어촌전형 거주요건 완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