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형상이면 OK?… '리얼돌 논쟁', 대법 판결로 다시 불붙나
이달 초 대법, 6년 걸친 소송서 '수입 허가' 확정
"인간 존엄성 해칠 만큼 적나라한 표현 아니다"
첫 판례는 2019년… 수입업자들, 대부분 승소
'효용 인정' 판결도… '미성년 외관' 땐 파기환송
"여성 몸 대상화, 성 인식 왜곡 조장" 비판 여전
'수입 반대·규제 촉구' 국민청원 3.7만 명 동의

"우리 장관님께 묻겠습니다. 최근에 리얼돌, 그 우리나라 말로 따지면 '성인용 전신 인형'이란 말 들어보셨죠?"
2019년 10월 18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종합국정감사장. 이용주 당시 무소속 의원이 성윤모 당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에게 이렇게 물었다. 질문과 동시에 이 전 의원 옆 의자 위에 담요를 덮어쓴 채 놓여 있었던, 큼지막한 물체의 정체가 공개됐다. 장내에선 곧바로 취재진의 카메라 셔터 소리가 연달아 터졌다. 여성의 신체를 본떠 만든 성인용품, 이른바 '리얼돌'이었던 것이다.
국감장에 리얼돌을 등장시킨 이 전 의원의 설명은 이랬다. "세계 섹스토이(성인용품) 시장이 2020년 33조 원 규모로 전망되는 상황이기에 산업적 측면에서 검토할 가치가 있다." 그러나 반응은 싸늘했다. 뒤이어 마이크를 잡은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리얼돌, 이게 산업이라 할 수 있을지…"라며 말끝을 흐린 뒤, 멋쩍게 서류만 뒤적였다. 감사 종료 직후엔 국회 여성 보좌진으로 구성된 '국회페미' 등 여성계 단체의 비판도 쏟아졌다. 이 전 의원은 결국 "법적 규제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함이었으나, 리얼돌을 직접 국감장에 갖고 나온 부분에 대해선 좀 더 신중을 기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약 7년 전 국감장을 들쑤시며 불거졌던 '리얼돌 논쟁'이 다시 불붙을 조짐이다. 이번 계기는 대법원 판결이다. 한 리얼돌 유통업자가 2020년 리얼돌 수입을 가로막은 세관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6년 만에 '최종 승소'를 받아냈다는 소식이 이달 3일 언론 보도로 알려진 것이다. 유통업자 손을 들어줬던 원심 판단을 대법원은 2월 말 그대로 확정했다. "이 사건 물품이 그 자체로 사람의 존엄성과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왜곡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 만큼, 노골적 방법으로 성적 부위를 적나라하게 표현 또는 묘사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여성의당은 8일 대법원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이 판결을 규탄하고, '리얼돌 수입 전면 금지'를 촉구했다.
다만 대법원의 논리가 새로운 건 아니다. 기존 판결을 따른 것에 가깝다. 2019년 '국회 리얼돌 소동'이 벌어진 것도 사실은 그즈음 리얼돌 수입을 허가한 대법원 판결이 나온 탓이었다. 국내 시장 규모는 정확히 파악되지 않지만, 현재 리얼돌은 온라인에서 클릭 몇 번으로 손쉽게 구매할 수 있는 실정이다. '법적 규제'가 엄격하진 않다는 방증이다. 그동안 리얼돌 국내 반입을 둘러싸고 벌어진 법적 공방이 어떻게 마무리됐는지, 법원의 판단 기준은 무엇이었는지 등을 정리해 봤다. 또 리얼돌 자체에 대해 여전히 가라앉지 않는 우려와 반대의 목소리도 함께 살펴봤다.
쟁점은 '실제 사람과 혼동할 정도인가'

대법원 판단이 처음 나온 건 2019년 6월이다. 발단은 그로부터 약 2년 전, 일본에서 리얼돌을 수입하려던 업자가 인천공항세관으로부터 받은 수입통관보류 처분을 취소해 달라고 내놓은 소송이었다. 1심을 맡은 인천지법 행정1부는 세관 손을 들어줬다. 여성 신체를 '적나라하게' 표현한 제품이 사람의 존엄성과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왜곡한다고 본 것이다. 길이 159㎝, 무게 35㎏으로 성인 여성 신체와 비슷한 형태 및 크기로 제작됐다는 점, 특정 부위가 실제 사람과 거의 유사하다는 점 등이 판결 근거로 제시됐다.
2심 재판부인 서울고법 행정7부는 다르게 봤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인간 존엄성을 해칠 정도로 적나라하지는 않다'는 판단이었다. 구체적으로는 △일부 부위가 선홍색으로 채색되는 등 실제와 상당히 유사하다고 보기는 어려운 점 △혈관이나 근육 같은 인체의 세세한 특징 역시 표현돼 있지 않다는 점 등을 들었다. 이 판결은 상고심에서 확정됐다. '대법원발(發) 리얼돌 수입 허용' 첫 사례였다.
그 뒤로는 대법원 판례를 따른 결과가 줄줄이 나왔다. 2021년 7월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도 "김포공항세관의 리얼돌 수입통관보류 처분을 취소하라"고 판결했다. 이때도 초점은 '실제 인체와 비슷한 정도'라는 주관적 척도에 있었다. 재판부는 "특수한 상황이 아닌 이상 여성 모습을 한 전신 인형으로 보일 뿐, 실제 사람과 혼동할 여지는 거의 없어 보인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그해 10월 또 다른 리얼돌 수입통관보류 처분 취소 소송에서도 김포공항세관의 상고를 재차 기각했다. 두 번째 사례가 더해진 셈이었다.
"미성년 형상 리얼돌, 수입 불허가 마땅"

한편으로는 리얼돌의 효용을 인정한 하급심 판결도 있었다. 2020년 6월 인천지법 행정2부는 인천공항세관의 수입통관보류 처분을 무효화하면서 리얼돌을 "성적 만족감 충족이라는 목적을 위해 제작·사용되는 도구"라고 규정했다. 이어 "그 사용자가 육체적·심리적 성기능 장애를 가지고 있거나 일시적 혹은 상시적으로 성행위 상대가 없는 경우 (리얼돌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따라서 정부가 수입 통관을 막는 건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2심도 "1심 판결이 정당하다"고 봤다.
그런데 상고심에서 반전이 일어났다. 2021년 11월 대법원은 인천세관의 항소를 기각했던 2심 판결을 파기 환송했다. 문제가 된 건 리얼돌의 크기와 외모였다. 대법원은 해당 리얼돌과 관련해 △길이·무게가 각각 150㎝, 17.4㎏으로 성인 여성 평균치에 못 미치고 △얼굴 또한 앳되게 묘사된 점 등을 종합해 볼 때 "16세 미만 미성년자 신체를 본뜬 것으로 인식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성인이 16세 미만 미성년자와 성행위를 하는 것 자체가 형법상 처벌 대상인 만큼, 이를 연상케 하는 제품 역시 풍속을 해칠 우려가 충분히 인정된다는 취지였다.
수입 불허 잇단 패소에… "성인 형상은 허가"

그러나 이는 예외적 사례다. 세관이 리얼돌 수입업자와의 법정 싸움에서 승리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2022년 12월 기준 리얼돌 관련 소송 48건 가운데 세관 측의 승소는 딱 2건에 그쳤다. 그러자 이 무렵 관세청은 '리얼돌 수입통관 지침'을 개정해 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그간의 법원 판결에 따라 '성인 형상 리얼돌'은 통관을 허용하는 대신, 미성년 외관을 띠는 것들만 걸러 내겠다는 게 골자였다.
그 이후로 '성인 형상'에 한해선 수입 문턱이 확실히 낮아진 것으로 보인다. 리얼돌 전문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는 A씨는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아동이나 청소년 모습을 하는 등 한눈에 보기에도 사회 통념상 문제가 될 만한 제품이 아니면 수입하는 데 지장은 거의 없다"고 귀띔했다. 일부 업체는 쿠팡·지마켓·SSG닷컴 같은 국내 주요 전자상거래 플랫폼에도 버젓이 입점해 있다. 반신형·전신형 등 종류에 따라 가격대 역시 수만~수백만 원까지 다양하고, 사용 후기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업계의 전망도 낙관적이다. 7년째 리얼돌 수입 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업체 사장 B씨는 '애니메이션 피규어' 수집 문화 정착에 빗댔다. B씨는 "10~20년 전만 해도 피규어를 산다고 하면 안 좋게 보는 사람들이 많았다"며 "그런데 요즘은 마니아층도 두터워졌고 굳이 그걸 숨기려 하지도 않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시간이 어느 정도 걸리겠지만, 리얼돌도 피규어처럼 한국 사회에 자리 잡을 수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외관만으로 '규제 정당성' 구성은 잘못"

그러나 반대 여론은 만만치 않다. 최근 대법원의 '수입 허가' 확정 판결이 언론 보도로 알려진 지 나흘 만인 이달 7일, 국회전자청원 사이트에 게시된 청원이 단적인 예다. 청원인은 "리얼돌은 단순한 성인용품을 넘어 여성 신체를 대상화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할 우려가 크다"며 "명확한 규제 법안 마련을 촉구한다"고 적었다. 18일 오후 5시 기준 이 청원에 동의한 누리꾼은 3만7,151명에 달했다. 대법원의 첫 판례가 나왔던 2019년에도 '리얼돌 수입 및 판매를 금지해 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제기됐고, 한 달 만에 26만 명의 동의를 얻은 바 있다.
특히 여성계에선 리얼돌이 '그릇된 성 관념'을 강화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본다. 유지혜 여성의당 대변인은 "리얼돌에 관한 논의는 단순히 음란성과 성적 자유 문제로 축소될 게 아니다"라며 "여성 신체를 철저히 성적 소비 대상으로만 재현한 리얼돌이 판매된다면 '타인의 동의 없이도 상대의 신체를 마음대로 다뤄도 된다'는 왜곡된 인식을 확산시킬 우려가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실제로 흉악 성범죄자들의 행적을 추적해 보면 가학적 포르노에 장기간 심취해 있었다는 사실이 비일비재하게 드러나지 않느냐"고 부연하기도 했다.
기존의 법원 판결들이 리얼돌 수입 허가 여부를 판단할 때 '실제 여성의 몸과 얼마나 유사한가'라는 잣대에만 천착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여성학자인 김주희 덕성여대 차미리사교양대학 조교수는 지난해 발표한 '여성화 장치로서의 리얼돌과 섹스돌 복합체의 통치' 논문에서 이렇게 짚었다. "여성의 신체를 모방했다는 외형적 유사성만으로 규제 정당성이 구성되는 환경은 여성 신체 재현 전체를 잠재적 '음란물'로 간주하게 만든다." 리얼돌 수입·유통·판매를 둘러싼 논란이 빚어지는 게 현실이라면, 일차원적 기준이 아니라 그 사용 맥락에 대한 면밀한 조사와 구체적 지침을 마련하는 게 근본적 해법이라는 뜻이다.
최현빈 기자 gonnaligh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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