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석의 그라운드] 트로피보다 오래 남을 추억…러시아 출신 안나가 말하는 고려대 유학과 테니스

김종석 기자 2026. 4. 19. 06:13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5세 때 할아버지 영향으로 라켓과 처음 인연…NH올원뱅크 여자대학 동아리부 우승 주역
- 고려대 국제학부 유학생. 유창한 한국어 실력…한국 테니스의 대중적 인기에 놀라움
-참가자 만족도 높인 농협 대회…깔끔한 운영과 책임감 있는 진행이 인상적
NH올원뱅크 아마추어 테니스대회 여자대학 동아리부 우승의 주역 안나 보이노바. 안구동 제공

낯선 땅에서 유학하고 있지만 그의 곁에는 다섯 살 때 처음 만난 테니스 라켓이 있습니다. 코트에 서는 순간 그의 열정은 강의실만큼이나 뜨겁습니다. 최근 NH농협은행(은행장 강태영) 올원뱅크 아마추어 테니스대회 여자대학 동아리부에서 고려대를 정상으로 이끈 안나 보이노바(23)의 이야기입니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신의 보이노바는 고려대 국제학부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러시아의 한 대학에서 동양학을 전공하다 고려대로 편입한 그는 능숙한 한국어 실력만큼이나 빼어난 테니스 기량으로도 주목받았습니다. 이번 대회 결승에서 고려대의 영원한 라이벌로 불리는 연세대와 맞붙었을 때도 그는 173cm의 큰 키에서 뿜어져 나오는 위력적인 스트로크를 앞세워 단체전 2-1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특히 첫 서브가 실패했을 때는 세컨드 서브로 변칙적인 언더 서브를 넣어 오히려 상대 리시브를 흔들어 놓았습니다. 안나는 "원래는 언더 서브를 잘 넣지 않는데 대회라 긴장했던지 서브 성공률이 낮아져 시도했는 데 효과가 좋았다"라고 미소를 지었습니다.

  시상식에서 고려대 상징인 크림슨 점퍼를 입은 보이노바는 5남매 가운데 장녀로 자랐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한 편이었다고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부모님을 도와 어린 동생들을 돌봤고, 학업 성취도도 높은 편이었다고 했습니다. 지금 고려대 국제학부에서 국제관계, 정치, 경제, 금융, 무역을 공부하고 있는 현재의 모습은 어쩌면 그 어린 시절의 연장선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자기 몫을 해내는 데 익숙한 사람, 낯선 환경에서도 리듬을 만드는 사람의 인상이 인터뷰 전반에 깔려 있었습니다.

 그는 테니스의 매력을 묻는 말에 "미학과 철학"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아름다운 스포츠이면서도 매우 전략적이고, 몇 수 앞을 내다보며 경기를 설계하는 과정이 좋다는 뜻이었습니다. 공 하나를 넘기는 기술보다 흐름을 읽는 사고에 더 큰 매력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NH올원뱅크 아마추어 테니스대회 여자대학 동아리부 우승을 차지한 고려대 선수들. 테니스코리아

테니스 강국 러시아 출신답게 그는 다섯 살 때 처음 테니스를 시작했습니다. 할아버지가 테니스를 좋아해 손녀도 배우길 바랐다고 합니다. 처음부터 테니스를 좋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규칙은 복잡했고, 라켓으로 공을 정확히 맞히는 일도 쉽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주 2회 그룹 레슨에 꾸준히 나갔고, 점차 실력이 늘기 시작했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수업을 듣게 되면서 테니스는 조금씩 덜 어려운 운동, 그리고 더 즐거운 운동이 됐습니다. 처음부터 재능과 열정으로 달려든 이야기가 아니라, 익숙지 않은 것을 오래 붙든 끝에 자기 것으로 만든 이야기라는 점에서 오히려 더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는 테니스가 자신의 태도까지 바꿔놓았다고 말했습니다. 예전에는 경기가 불리해지면 쉽게 포기하는 편이었지만, 코치가 늘 강조한 정신력의 중요성을 받아들이면서 끝까지 집중하고 버티는 법을 배웠다는 겁니다. 그런 마음가짐은 일상에서도 그를 더 이성적이고 신중한 사람으로 성장하게 했습니다. 이 대목이 흥미로운 이유는 테니스를 단순한 취미나 운동이 아니라 삶을 조율하는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입니다.

 러시아 대학에 입학했을 때는 교내에 테니스 동아리가 없어 탁구했다고 합니다. 대학에서는 일본어와 한국어, 동아시아의 역사와 문화를 공부했습니다. 이후 한국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참여했고, 그 경험을 통해 한국과 한국의 교육 시스템에 큰 매력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결국 그는 고려대로 편입해 국제학부에서 학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현재는 모든 수업이 영어로 진행된다는 점도 만족스럽다고 했습니다.

 아직은 한국어보다 영어가 더 익숙하지만, 그렇다고 한국어가 약한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인터뷰를 보면 그의 한국어는 상당히 자연스럽고 정교합니다. 비결을 묻자, 러시아 대학에서 2년 동안 한국어를 공부했고, 이후에도 꾸준히 개인 학습을 이어왔다고 했습니다. 한국에 온 뒤에는 가능한 한 한국어를 많이 사용하려고 했고, 한국인 친구들과의 대화가 특히 큰 도움이 됐다고 했습니다. 특별한 지름길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실전과 반복이 쌓여 지금의 실력이 만들어진 셈입니다.

NH올원뱅크 아마추어 테니스대회에서 기념 촬영한 안나 보이노바. 안구동 제공

한국 생활에서 가장 놀라웠던 점으로는 한국 테니스의 대중성을 꼽았습니다. 대학 동아리에서 활동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대회 참가 기회도 많을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건 회식 문화였습니다. 경기 결과와 상관없이 팀워크와 단합을 위해 함께 식사하는 자리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는 점이 새롭게 다가왔다고 했습니다. 평일에는 낮에 공부하고 저녁에는 테니스를 치고, 주말에는 대회에 나가거나 친구를 만나는 루틴이 좋다고도 했습니다. 바쁘지만 시간을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는 생활, 어쩌면 그가 한국에서 좋아하게 된 건 어떤 특정 장면보다 그런 촘촘한 리듬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 NH올원뱅크 아마추어 테니스대회 우승은 그런 생활의 리듬 위에서 나온 결과였습니다. 그는 고려대 팀이 원래 실력 있는 선수들로 꾸려져 있어 별도의 특별 훈련이 필요할 정도는 아니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대회마다 성격이 다르므로 경기 전 심리적으로 얼마나 잘 준비하느냐가 중요했다고 짚었습니다. 결승 상대인 연세대의 전력이 강했다고도 솔직하게 인정했습니다. 그런데 복식 경기의 출전 순서가 유리하게 작용했고, 팀 전체가 흔들리지 않으면서 결국 승리를 끌어냈다고 분석했습니다. 감정적인 우승 소감보다 승부의 구조를 먼저 설명하는 답변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경기를 읽는 선수의 언어였습니다.

대한테니스협회 홍보대사 장성규 아나운서와 안나 보이노바를 비롯한 고려대 선수들. 농협 제공

정작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결승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같은 고려대 소속 팀인 PETC와 맞붙은 8강전이 더 강하게 남았다고 했습니다. 같은 학교 팀과의 대결은 늘 묘한 부담이 있습니다. 너무 잘 알아 더 어렵고, 그래서 더 긴장됩니다. 상대 팀 역시 실력이 뛰어났기에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경기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결국 이겼을 때의 기쁨은 "마치 대회에서 우승한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고 했습니다. 모든 우승에는 진짜 고비가 있습니다. 그에게 이번 대회의 진짜 승부처는 어쩌면 트로피를 들어 올린 결승전이 아니라, 무너질 수도 있었던 8강전이었는지 모릅니다.

 외국인 유학생의 시선에서 한국의 '눈치' 문화는 특히 인상적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사람들은 서로를 대할 때, 만날 때에 더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행동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이 러시아에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저는 비교적 직설적인 성격이어서 때때로 눈치가 부족하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라며 웃었습니다.

안나 보이노바가 고려대 건물을 배경으로 선 모습을 AI로 생성한 이미지.

이번 우승은 그 자신에게도 특별한 이정표였습니다. 자신의 경기가 처음으로 생중계됐고, 공식적인 시상식이 크게 진행된 것도 처음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이 경험이 "테니스 선수로서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습니다. 대학 아마추어 무대의 우승이지만, 선수에게는 무대의 크기와 경험의 밀도가 남습니다. 그런 경험은 생각보다 오래갑니다.

 여기에 이번 농협 대회의 장점은 분명히 강조할 만합니다. 그는 "진행이 매우 깔끔했다"라고 평가했습니다. 모든 경기가 정시에 시작돼 대기 시간이 길지 않았고, 참가 상품과 추첨 경품에 대한 만족도도 높았다고 했습니다. 전반적인 대회 분위기와 주최 측의 책임감 있는 운영 방식도 인상 깊었다는 말이었습니다. 아마추어 대회일수록 참가자들은 승패만 기억하지 않습니다. 현장이 얼마나 매끄러웠는지, 선수들이 얼마나 존중받는 느낌을 받았는지, 그런 경험의 질을 더 오래 기억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농협 대회는 단순히 규모만 갖춘 대회가 아니라 참가자 만족도와 현장 완성도까지 챙긴 무대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졸업까지 1년 이상 남은 그는 교문을 떠난 뒤 서울의 기업 취업이나 대학원 진학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가능하다면 한국에서 계속 살고 싶다고도 했습니다. 아직 미래가 완전히 정해진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방향은 이미 보입니다. "한국이든 다른 나라든 상관없이 내게 즐거움을 주는 일을 하면서 전문성, 테니스 실력, 그리고 개인적인 측면에서 지속해서 성장해 나가고 싶습니다."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에서 공부하고, 한국에서 테니스하며 우승까지 경험한 이 23세 유학생에게 한국은 더 이상 잠시 머무는 곳이 아닙니다. 다음 삶의 좌표를 그려가는 공간입니다. 그리고 그 곁에는 앞으로도 라켓이 있을 겁니다.

김종석 채널A 부국장(전 동아일보 스포츠부장)

[기사제보 tennis@tennis.co.kr]

▶ 테니스코리아 쇼핑몰 바로가기

▶ 테니스 기술 단행본 3권 세트 특가 구매

Copyright © 테니스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