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TI 그만 좀 물어봐" 짜증…'바보 MBTI'로 갈아탄 젠지들[트민자]
공개 첫날 검색량만 4000만건 이상, 상표권 출원도…
'기업 채용 도구'된 MBTI에 대한 반발감 인기 확산,
"무한 경쟁에 지친 젊은 층의 '해학적' 생존 전략"
[편집자주] 트민자는 '트렌드에 민감한 기자'의 줄임말입니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눈에 띄는 흐름을 포착해 그 안에 담긴 사람들의 마음과 시대의 이야기를 들여다봅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만취자' 당첨. 술도 안 마셨는데 정신은 왜 늘 숙취 상태인 걸까? #SBTI #오늘의멍청비용 #나만그래?"
중국의 인스타그램으로 불리는 샤오홍슈에 올라온 한 게시물이다. ENFP, ISFJ 등 성격유형검사 MBTI의 결과인 알파벳 약어 대신 '만취자'라는 다소 황당한 타이틀이 적혀 있다. 이 게시물에는 자신의 어수룩한 실수를 고백하는 댓글들이 줄을 잇는다.
최근 중국 젠지(Z세대·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자)들 사이에선 한 SNS(소셜미디어) 이용자가 만든 성격 유형 검사 'SBTI'가 인기를 얻고 있다. SBTI는 중국어로 '바보'를 뜻하는 비속어 '샤비'의 에스(S)와 MBTI의 합성어로, 자신의 '멍청함'을 유형별로 진단하는 이른바 '바보 MBTI'다. MBTI가 기업들의 채용 기준 등 '분석의 도구'로 변질한 것에 대한 피로감에 지친 젠지들이 자신을 희화화하는 SBTI에 열광하고 있다는 평가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지난 9일 공개 첫날, SBTI의 위챗 검색 지수는 4085만건을 돌파했다. 접속자가 한꺼번에 몰리면서 서버가 마비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서버가 마비되자 누리꾼들은 다른 이들의 결과 화면을 캡처해 공유하기도 했는데, 웨이보와 샤오홍슈 등 중국 SNS 내 관련 게시물은 순식간에 2000만개를 넘어섰다.
SBTI의 인기는 산업 활동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중국 기업 정보 플랫폼 치차차(Qichacha)에 따르면 교육, 오락,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에서 SBTI 관련 상표권 출원이 잇따르고 있다. 이미 2건은 등록을 마친 상태다. 전문가들은 SBTI 열풍이 캐릭터 굿즈 제작이나 오프라인 테마 마케팅 등 이른바 '바보 경제(SB Economy)' 혹은 '힐링 경제'라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확장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한다.

그 배경에는 기존 MBTI에 대한 피로감과 반감이 깔려 있다. 중국 관영 매체 차이나데일리는 "최근 MBTI가 기업의 채용 도구나 개인을 판단하는 엄격한 검열 수단으로 변질하면서 청년들이 압박감을 느끼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기업이 특정 성향만을 선호하는 등 MBTI가 또 하나의 스펙으로 작용하자, 젠지가 이를 가볍게 희화화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중국 청년층 사이에 확산한 탕핑(?平·드러눕기) 문화와도 맥을 같이 한다. 치열한 경쟁에서 한발 뒤로 물러나 최소한의 노력으로 살아가겠다는 탕핑족에게 자신의 결점을 유머로 승화시키는 SBTI는 강력한 '정서적 가치(Emotional Value)'를 제공한다는 분석이다. 중국 관영 영자지 글로벌타임스는 "SBTI는 단순한 장난이 아닌 현대 사회의 스트레스에 대한 젊은 세대의 심리적 방어 기제"라고 짚었다. 성취와 자기 계발을 끊임없이 요구하는 사회에서 벗어나, 자신을 낮추고 웃음의 소재로 소비하는 방식이 하나의 생존 전략으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정혜인 기자 chimt@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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