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약 1만발’의 교훈…더 늦기 전에 한일 군수지원 제도화해야
남수단 파견나간 한빛 부대 위기 처하자
자위대로부터 1만발 탄환 긴급 수령
300만원 탄약때문에 한일 갈등 확대
이시바 방한 계기로 ACSA 필요성 부각

지난 8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아산정책연구원 주최 ‘아산 플래넘 2026’이 개최됐습니다. 이날 회의에서 기조연설에 나선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전 일본 총리는 한일 상호군수지원협정(ACSA) 체결을 공개적으로 제안했습니다. 그는 “일본과 한국의 긴밀한 연계는 지역과 세계의 평화에 있어 가장 중요하다”며 “양국 관계의 다음 한 걸음을 내딛는 차원에서 ACSA 체결은 중요한 과제”라고 강조했습니다.
ACSA는 Acquisition and Cross-Servicing Agreement의 약어입니다. 협정국 간 연료·탄약 등 군수 물자를 상호 제공하는 제도입니다. 평시나 유사시 필요한 물자를 즉시 상대국으로부터 조달할 수 있어 군의 기동성과 작전 지속 능력을 크게 높일 수 있습니다. 한일 간에는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이 체결돼 있는데, 이보다 한 단계 높은 수준의 군사 협력으로 평가됩니다.
이시바의 이날 제안은 포럼 참석자들 사이에서 큰 화제가 됐습니다. 포럼 1세션에서 일본 육상 자위대 출신의 나카타니 켄(中谷元) 의원이 이시바의 제안 배경을 구체적으로 언급했습니다. 일본 고치현 중의원 선거에서 13회 연속 당선한 그는 방위청이 현재의 방위성으로 승격되기 전인 2001년부터 약 1년간 방위청 장관을 지냈습니다. 이어서 아베 내각과 이시바 내각에서 각각 방위성 대신을 역임한 일본의 대표적인 군사전문 의원입니다.
“내가 방위대신으로 처음 재임할 때인 2015년 동맹을 현대화하기 위해 방위협력지침을 개정했고,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을 확대하기 위한 제도적 정비를 진행했다. 이후 이시바 내각에서 다시 방위상을 맡아 한국의 안규백 국방장관과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특히 사이버 안보와 우주 분야 등 새로운 영역에서 협력 필요성을 공감했다. 일본은 오키나와에서 한국군에 대한 급유 지원도 이미 시행한 바 있다. 동맹은 단순히 위기 대응 수단이 아니라 평시에도 기능해야 한다. ACSA와 같은 협정이 필요하며, 협력이 더욱 강화되기를 바란다.”

그러자 한 미국인 참석자가 의아한 듯 “왜 한일 간 ACSA가 아직 체결되지 않았느냐”고 질문했습니다. 한일 간에 ACSA가 없는 상황이 잘 납득되지 않는 듯했습니다. 이에 대해 나카타니 전 방위상은 “한국이 아직 ACSA를 받아들이겠다는 결정을 내리지 않은 상황”이라며 “ACSA가 체결되지 않으면 행정 절차가 복잡하고, 특히 긴급 상황에서 연료나 탄약 제공이 지연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유사시 반드시 필요한 제도이기 때문에 현재 설득하는 단계”라고 설명했습니다. 나카타니의 발언 중 유독 ‘설득’이라는 말이 크게 들렸습니다.
이처럼 일본 측이 전직 총리, 전직 방위상을 통해 공개적으로 ACSA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과 달리, 한국은 여전히 신중하거나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당초 안규백 국방장관이 참석했다면, ACSA에 대한 언급이 어떤 형태로 있었을 가능성이 크지만, 안 장관은 이날 불참했습니다. (아산정책연구원은 안 장관이 이날 참석 예정이었으나, 급한 일이 생겨서 참석하지 못했다고 밝혔습니다.)
2013년 남수단 사태, ‘실탄 1만 발’의 기억
한국에서 ACSA 논의가 민감하게 받아들여지는 배경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일제 식민지를 겪은 탓에 일부 정치 세력은 한일 군사 협력을 “일본군의 군홧발이 다시 한반도를 짓밟는 첫 수순”이라고 규정하기도 합니다. 우리 군 내부로 좁혀 볼 경우, 2013년 남수단에서 한국군과 일본 자위대 사이에서 발생했던 논란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2013년 12월 아프리카 남수단에서 유엔 평화유지활동(UNMISS)에 참여 중이던 한빛부대는 반군 위협이 고조되면서 긴급한 상황에 놓였습니다. 그러자 교전 사태에 대비, 유엔을 통해 현지 일본 자위대로부터 소총탄 1만 발을 긴급 지원받았습니다. 이는 일본 자위대로부터 탄약을 지원받은 첫 사례였습니다.

남수단은 사실상 내전 상황이었고, 반군이 한빛부대 주둔지 인근까지 접근하면서 방어를 위한 탄약 확보가 시급한 상황이었습니다. 한빛부대는 2012년 10월부터 약 280명의 병력이 파견돼 있었으며, 지역 재건을 주임무로 하는 공병·의무 중심 부대였기 때문에 개인 화기 중심의 무장만 갖추고 있었고, 탄약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지원받은 소총탄 1만 발은 금액으로 약 300만원 수준이었고, 라면 상자 6박스 정도의 물량에 불과했습니다. 한빛부대가 사용하던 K-2 소총에 필요한 5.56㎜ 탄약을 보유한 외국군은 현지에서 일본 자위대가 사실상 유일했습니다. 이 때문에 일본으로부터의 지원이 이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외교 갈등으로 비화
문제는 이 사안이 심각한 외교 갈등으로 비화했다는 점입니다. 아베 신조 당시 일본 총리는 12월 23일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열어 탄약 제공을 결정하며, 이를 ‘무기 수출 3원칙’의 예외로 적용했다고 밝혔습니다. 일본 정부는 유엔 평화유지활동 협력법에 따라 무기를 제공한 첫 사례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일본 측의 대응은 한국 입장에서 볼 때 ‘오버한다’는 느낌을 줬습니다.
집단적 자위권 법제화 등 일본의 군사 역할 확대를 추진하던 아베 정권이 이 사안을 적극 활용한다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교도통신은 “아베 총리가 내건 적극적 평화주의를 국제사회에 보여주려는 의도가 있다”고 분석했고, 산케이신문은 “총리실 주도의 NSC 존재감을 부각시키는 계기로 활용됐다”고 보도했습니다.
‘진실게임’으로 번진 군수 지원
한빛부대가 소총탄 1만발을 제공받은 과정에 대해 한일 정부의 설명이 엇갈리면서 ‘진실게임’이 벌어졌습니다. 일본 정부는 “21일 밤 10시쯤 한국군 한빛 부대장(대령)이 일본 자위대에 전화를 걸어 1만발의 실탄을 빌려 달라고 긴급 요청했다”고 밝혔습니다. 한빛부대장이 유엔군을 통하지 않은 채 직접 일본 자위대에 탄환을 빌려 달라고 했다는 겁니다. 이는 유엔군에 탄환 지원 요청을 했고, 유엔군이 일본군을 소개해 탄환을 지원받았다는 국방부 설명과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우리 국방부는 강하게 반박했습니다. “일본 측 설명은 잘못된 것이다. 12월 21일 남수단 보르 지역 UN 기지에 주둔 중인 UNMISS 소속 한빛부대와 네팔군, 인도군, 르완다군이 회의를 열었다. 이때 한빛부대 장교가 부대 방호를 위해 탄약이 더 필요하다고 요청했다. 네팔군과 인도군은 보병 중심의 부대인데, 7.62㎜ 소총탄을 쓰고 있어서 우리가 빌릴 수 없었다.”

우리 측 설명에 따르면, 호주군 출신의 UN군 연락 장교가 이런 사정 UNMISS 본부에 통보했습니다. UNMISS 본부는 위급하다고 판단해 한국군 5.56㎜ 소총탄을 사용하는 나라를 찾아보자고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한빛부대 장교가 자위대에 탄약 보유 여부를 확인하는 전화를 했다고 합니다. 한국군과 자위대의 호환 사용이 가능하다는 것이 확인되자 UNMISS는 일본 자위대에 탄환 1만 발을 요청, 일본이 무상 양도했다는 겁니다.
이에 대해 일본 정부는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까지 나서서 한국이 현지 부대와 주일 대사관을 통해 탄약 제공을 직접 요청했다고 다시 강조했습니다.
그러자 이번엔 외교부가 공개적으로 반발했습니다. 조태영 외교부 대변인은 24일 정례 브리핑에서 “한빛부대는 최근 남수단의 불안한 정정과 관련해 추가 방호력 차원에서 UNMISS에 탄약 지원을 요청했고 UNMISS를 통해 지원받은 것이 전부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당시 오노데라 이쓰노리 방위상은 자위대 책임자의 보고 영상을 공개하기도 했고, 아베 총리는 연일 해당 사실을 언급하며 국제사회에 적극적으로 알렸습니다. 단순한 군수 지원이 양국 간 정치적 갈등으로 확대된 대표적 사례였습니다.
냉각된 관계가 키운 갈등
이 같은 갈등은 당시 한일 관계가 좋지 않은 상태였기에 확대된 측면이 있습니다. 아베 총리는 취임 초기 ‘고노 담화’ 수정 시도 등 역사 문제를 둘러싼 강경 행보를 이어가고 있었고, 박근혜 대통령은 이에 대해 거리두기로 냉랭한 관계를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박 대통령은 2012년 대선에서 ‘친일파 독재자 박정희의 딸’ 프레임에 혹독하게 시달렸기에 일부러 아베 총리와 거리를 둔 측면도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약 300만 원 규모의 탄약 지원 문제가 양국 고위 당국자들이 공개적으로 충돌하는 사안으로 비화한 것입니다. 2012년 체결이 추진되던 GSOMIA가 당일 취소된 경험도 양국 간 불신을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했습니다.
달라진 국제정세와 정치환경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크게 달라졌습니다. GSOMIA는 이미 체결됐고, 군사 협력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도 확대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올해 1월 한국 공군 특수비행팀 블랙이글스는 일본 방위성의 특별 허가에 따라 사우디아라비아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일본 오키나와 나하 기지에서 공중급유를 받았습니다. 한국 공군 항공기가 일본 자위대로부터 급유를 받은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일본 방위성은 “안보 환경이 엄중해지는 가운데 한일 방위 협력은 매우 중요하다”며 “이번 기항은 상징적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습니다. 요미우리신문은 일본 정부가 이러한 흐름을 ACSA 체결로 연결하려 한다고 분석했습니다.문제는 이러한 협력이 여전히 제도화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현재와 같은 방식은 매번 정치적 판단과 행정 절차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는 긴급 상황에서 대응 속도를 늦추고, 불필요한 외교적 논란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2013년 남수단 사례는 제도적 장치 없이 이뤄진 군수 협력이 얼마나 쉽게 갈등으로 번질 수 있는지를 보여줬습니다. 반대로 ACSA가 체결될 경우, 군수 지원은 정치적 판단이 아니라 사전에 합의된 절차에 따라 자동적으로 이뤄질 수 있습니다.
ACSA, 선택이 아닌 현실적 과제
미·중 전략 경쟁, 북한 문제, 중동 불안 등 복합적인 안보 위기가 동시에 전개되고, 미국의 리더십이 불안한 상황에서 한국이 기존의 안보 틀만으로 대응하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일본과의 군사 협력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현실적 과제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특히 군수 지원과 같은 실질적 협력 분야에서는 제도적 기반 구축이 필수적입니다.
과거 ‘실탄 1만발’이 갈등의 계기가 됐다면, 이제는 그 경험을 교훈 삼아 협력을 제도화할 시점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ACSA 체결로 한일 간 군사 협력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동시에, 위기 대응 능력을 실질적으로 강화하는 계기로 만들어야 할 때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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