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 7개월간 22개국을 3만5천km 달려간 끝에 마주한 것 [여책저책]

장주영 매경 디지털뉴스룸 기자(semiangel@mk.co.kr) 2026. 4. 18.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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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어떤 이에게는 단순히 즐기는 시간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삶의 문제를 해결하고 내면을 성장시키기 위한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무엇이 더 옳다고 할 수 없지만 의미만은 다릅니다.

포르투갈 호카곶 / 사진 = 언스플래쉬

여책저책이 만난 책 역시 여행을 바라보는 시각이 보통 사람과 다릅니다. 책 ‘우주를 건널 수는 없더라도’는 현대인의 고통과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한 자발적 ‘도망’, 그리고 순례를 다룹니다. 저자는 길 위에서의 시간을 통해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재발견하는데요. 그 여정을 따라가 봅니다.

우주를 건널수는 없더라도
유운 | 행복우물 출판사
사진 = 행복우물 출판사
​우리내 삶은 거대한 우주 앞에 홀로 던져진 것처럼 막막할 때가 있다. 타인의 시선이 유독 내게 쏟아진다거나 날선 평가가 마구 날아들 때 스스로의 궤도를 잃어버리기도 한다. 이런 방황은 아이 어른 막론, 세대를 뛰어넘는다.

​4년차 사회부 기자 유운도 그 틈바구니에서 뜨거운 경쟁을 펼친 주인공이다. 사람과 사건의 틈바구니를 헤집으며 치열하게 살던 그는 어느 날 낡은 아파트와 적갈색 빌라에서 도망, 탈출, 해방하기로 결심한다.

​무작정이라해도 무방할 만큼 동해항에서 여객선에 몸을 실은 그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자동차에 텐트와 밥솥 하나만을 실은 채 홀로 7개월간 22개국, 3만5000km를 달려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 끝 포르투갈 호카곶까지 달린다.

​러시아 시베리아 / 사진 = 언스플래쉬
그의 여정은 단순히 물리적인 거리를 극복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온갖 과정을 넘어 내면의 상처를 극복해가는 숭고한 순례의 길에 가깝다. 저자는 이런 자신의 여정을 책 ‘우주를 건널 수는 없더라도’에 실었다.

​저자는 책에서 ‘세상의 끝까지 가보겠다’는 비장한 각오를 세운다. 하지만 실제로 길 위에서 만난 것은 거창한 승리나 정복이 아니었다. 이름 없는 숲의 고요와 이름 모를 이가 건넨 사탕 한 알의 온기였다.

​책은 총 5부로 나뉜다. 1부 시베리아 횡단기에서 저자는 700km 이상 직진해야 하는 막막한 길 위에서 마피아 출신 히치하이커를 만난다. 이어 펑크 난 타이어를 끌고 모스크바로 향하며 과거의 고통과 미래의 불안을 유예하는 법을 배운다.

​핀란드 이나리 호수 / 사진 = 언스플래쉬
2부 북유럽의 여정에서는 핀란드 이나리 호수의 작은 숲과 노르웨이의 노르카프에 닿아 ‘오버랜더’로서 행성의 열기를 온몸으로 느낀다. 저자는 편리하게 목적지로 가는 관광 대신 지구의 가로선과 세로선으로만 위치를 찾을 수 있는 낯선 공간들 속으로 들어간다.

​3부와 4부에서는 비극적 역사가 서린 아우슈비츠에서 화창한 날씨를 만나 느낀 아이러니와 보스니아 스레브레니차의 참상을 바라보며 문명이 깎여나간 뒤편의 고통을 직시한다. 튀르키예 괴레메의 화려한 동굴 호텔 이면에 존재하는 진짜 동굴 집 사람들의 고단함도 다룬다.

​저자는 여행과 관광이 결코 동의어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유목민이란 공간을 길들이는 자가 아니라 공간을 넘나드는 스스로를 길들이는 자라고 강조한다. 유목민은 자기 안에 세계를 통째로 담아낸다고 말하는 저자는 틀 안에 갇히는 것을 두려워했던 나약함이 어떻게 자유와 용기로 나타날 수 있는지 보여준다.

튀르키예 괴레메 / 사진 = 언스플래쉬
5부에서는 스페인 마드리드의 질주와 한해의 끝을 지나며 저자가 타인으로부터 ‘우울한 사람’이라는 낙인이 찍혀 시달렸던 과거를 고백하는 모습을 소개한다. 하지만 이제는 그 우울과 슬픔을 있는 그대로 조영하는 사람이 되기로 결심한다. 두려움과 나약함을 숨기지 않는 것이야말로 선함의 한 종류일 수 있다고 믿는다.

​이 책은 단순히 화려한 풍경을 자랑하는 여행기가 아니다. 고요한 바다 밑바닥에서 깊은 숨을 나누듯 자신의 내밀한 감정들을 꺼내 놓은 진솔한 기록이다. 207일간의 주행 끝에 저자가 도달한 곳은 포르투갈의 호카곶이었지만, 그가 진정으로 건넌 우주는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저자는 이제 머무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겠다는 다짐한다. 책은 도망치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어딘가에 온전히 머물고 싶어 하는 모든 현대인에게 건네는 가장 다정한 배웅이자 따뜻한 마중이다.

※ ‘여책저책’은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세상의 모든 ‘여행 책’을 한데 모아 소개하자는 원대한 포부를 지니고 있습니다. 전문적인 출판사도 좋고, 개별 여행자의 책도 환영합니다. 여행 가이드북부터 여행 에세이나 포토북까지 어느 주제도 상관없습니다. 여행을 주제로 한 책을 알리고 싶다면 ‘여책저책’의 문을 두드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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