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랠리’ 뒤 숨은 균열…미국의 황혼을 알리는 경고음 [김학균의 시장읽기]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2026. 4. 18.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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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증시 203개월 최장기 랠리…황금기 막바지와 닮은꼴
과잉 팽창·재정 적자·도덕성 타격…경제 침체 징후 3가지

(시사저널=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돈은 결국 수익률을 향해 흐른다. 최근 몇 년 사이 한국에서 '서학개미'로 불리는 미국 주식 투자자가 급증한 배경에도 기록적인 상승세를 이어온 미국 증시가 자리하고 있다. 그야말로 전례 없는 강세다. 미국 증시 130년 역사에서 가장 길고 강력한 장기 상승장이 펼쳐지고 있다. 미국 증시를 대표하는 S&P500지수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3월 저점부터 2026년 1월 고점까지 무려 203개월간 931.5% 상승했다. 상승 기간과 상승률 모두 역사상 최고 수준이다. 중간중간 조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하락 국면이 1년을 넘긴 적은 없었다. 통상 1년 이상 하락이 지속되어야 약세장으로 볼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2009년 이후 현재까지의 흐름은 하나의 장기 강세장으로 보기에 무리가 없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경제와 증시가 동시에 장기 호황을 누린 시기는 이번을 포함해 모두 세 차례 있었다. 첫 번째는 '자본주의 황금기'로 불리는 1950~60년대다. 전후 복구 수요를 바탕으로 경제는 고성장을 이어갔고, 미국은 사회주의 블록과 대척점에 있었던 자본주의 진영의 리더로 확고히 자리매김했다. 두 번째는 1990년대다. 인터넷으로 상징되는 IT 혁명을 주도하며 냉전 종식 이후 명실상부한 슈퍼파워로 부상한 시기였다. 이 두 시기 모두 실물경제 호황과 맞물려 주식시장 역시 장기 상승세를 구가했다. 그리고 세 번째 황금기가 바로 2009년 이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국면이다.

다만 '달도 차면 기울고, 산이 높으면 골도 깊은 법'이다. 과거 두 차례 장기 호황이 마무리되는 과정에서 나타났던 변화를 되짚어보는 일은 현재의 흐름을 점검하고 앞날을 가늠하는 데 의미 있는 단서를 제공할 것이다.

ⓒAP 연합·Gemini 생성 이미지

베트남전과 이라크전이 남긴 청구서

1·2차 황금기가 막을 내릴 무렵 공통으로 드러난 징후는 과잉 팽창과 재정 적자 확대, 그리고 소프트파워의 약화였다. 초강대국 위상에 근접했던 미국이 스스로 힘을 주체하지 못한 채 군사력을 대외로 투사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과잉은 본격화됐다. 1차 황금기가 저물던 시기, 미국은 베트남전의 수렁에 빠져들었다. 군비 지출은 통제하기 어려운 속도로 늘어났고, 누적된 재정 적자는 1970년대 고(高)인플레이션을 촉발하는 배경이 됐다.

2차 황금기는 '테러와의 전쟁'과 함께 막을 내렸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은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잇따라 침공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알카에다에 대한 응징이라는 명분이 있었지만, 이라크 전쟁은 정당성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대량살상무기 제거'를 내세웠으나 이라크 어디에서도 이를 찾아내지 못했다. 또한 미국은 두 나라에 장기 주둔하며 미국식 민주주의 이식을 시도했으나 기대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결국 명예롭지 못한 철군으로 귀결됐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은 '21세기의 베트남'이라 불릴 만큼 깊은 상처를 남겼다. 전쟁 과정에서 재정 적자는 다시 급증했고, 1990년대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어렵게 달성했던 재정 균형도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또한 공세적인 팽창 정책이 이어지는 과정에서 미국의 소프트파워는 결정적인 타격을 입게 됐다. 1960년대 중반까지 미국은 나치즘과 파시즘으로부터 인류를 구해낸 '자유의 나라'로 평가받았지만, 베트남전에서의 양민 학살 소식이 전해지면서 '양키 고 홈(Yankee Go Home)'이라는 구호가 세계 곳곳으로 확산됐다. 2003년 이라크 전쟁 개전 당시에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미국의 군사 개입에 반대하는 시위가 전 세계 주요 도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며, 미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와 도덕적 권위는 크게 흔들렸다.

이러한 흐름의 배경에는 당시 지도자의 리더십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1차 황금기가 저물던 시기에 권력을 잡았던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베트남전의 장기화 속에서 국내외 신뢰를 동시에 잃어갔다. 전쟁 수행 과정의 강경한 대응뿐 아니라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대표되는 정치적 스캔들은 미국 민주주의의 도덕적 권위를 크게 훼손했다. 자유와 법치를 내세우던 국가 지도자가 스스로 가치를 흔드는 모습을 보이면서, 미국이 축적해온 소프트파워 역시 급격히 약화할 수밖에 없었다.

2차 황금기의 종말 국면에서 등장한 조지 W 부시 대통령 역시 유사한 한계를 드러냈다. '테러와의 전쟁'을 주도하며 강경한 대외 정책을 펼쳤지만, 이라크 전쟁 명분이 흔들리고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국제사회의 신뢰는 빠르게 약화됐다. 특히 동맹국들조차 미국의 일방적 군사행동에 거리를 두기 시작하면서, 강력한 하드파워가 오히려 소프트파워를 잠식하는 역설적 상황이 전개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EPA 연합

트럼프 행정부가 몰고 온 제국의 위기

한편 번영하던 제국에 황혼이 물들 무렵 주식시장에서는 성장 가치로 무장한 종목들의 버블이 만들어졌다. 1차 황금기가 끝날 무렵에는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과 맞물리면서 우주항공주의 버블이 있었고, 2차 황금기 종반부에는 닷컴 버블이 있었다. 역사적으로 보면 장기 호황이 지속되면서 미국이 가장 자신감에 차 있을 때 재정적·군사적 과잉 팽창이 나타났고, 이는 도리어 미국의 경제적 패권 상실로 귀결되곤 했다.

지금의 상황은 과거 두 차례 황금기의 종말 국면과 기시감을 느낄 만큼 닮아있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은 다자주의 질서를 흔들며 미국의 소프트파워를 잠식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결국 과거의 경험이 시사하는 바는 분명하다. 과잉 팽창과 재정 적자, 그리고 소프트파워의 약화가 동시에 진행될 때 장기 호황의 끝은 생각했던 것보다 가까워질 수 있다. 특히 재정 적자는 인플레이션을 자극하고 금리를 올려 주식시장에 결정적인 악영향을 미쳤다.

역사는 그대로 반복되지 않지만, 그 운율은 언제나 일치했다. 931%라는 수익률의 숫자에 취해 제국의 황혼을 알리는 경고음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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