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에서 업무를 추구하면 안 되는 걸까” … 김수민 ‘라프텔’ 마케터의 덕업일치 [인터뷰]

김형호 기자 2026. 4. 18.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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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주간지 이코노믹리뷰 1310호(2026년 4월 16일)의 라이프 스토리는 "OO, 좋아하세요?" 

우리는 취향을 개인적인 무언가로 여긴다. 하지만 그 뒤에는 늘 누군가가 있다. 그들은 선택지를 만들고, 우리는 그 안에서 고른다.

ER은 취향을 만드는 5개 회사 실무자 6명을 만났다. 이번 인터뷰는 분기 신작을 '덕질'의 언어로 준비하는 라프텔 마케팅팀 김수민 매니저 이야기다. 여의도의 라프텔 본사에서 만났다.
라프텔 사무실 벽에 적힌 "널리 덕후를 이롭게." 문구 앞에 선 김수민 라프텔 마케팅팀 매니저. 사진=ER 이코노믹리뷰 김연제 기자.

第0話 서버가 터진 밤

서버가 터졌다. 퇴근 이후였다. 서버팀의 슬랙 워룸이 열렸다. "Queue applied" "Traffic split" 피규어 1000원 판매 이벤트에 유저가 몰렸다.

이벤트 기획자는 불 꺼진 방에서 노트북 화면 속 슬랙 메시지를 응시하고 있었다. 다른 창에는 커뮤니티에 구매 인증 글이 이어졌다.

"제대로 예측을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던전에서 업무를 추구하는 라프텔 최종병기 그녀는 엔터를 눌렀다. 그리고 빈 안경을 검지로 치켜 올리고선 말했다. '봐, 돼잖아. 자신을 믿지 않는 녀석 따위는 노력할 가치가 없다!'

'라프텔'은 애니메이션 전문 국내 OTT 플랫폼이다. OTT 플랫폼 중 유일하게 흑자를 내는 곳이기도 하다.

마케터 김수민. 회사는 '던전'이고, 마케팅팀은 '용사 파티'다. 마케팅팀 4명이 분기 신작, 자체 제작 작품, 팝업 스토어, 라프텔 스토어까지 전부 쳐낸다.

"마케팅 팀이 라프텔을 먹여 살리는 거네요?"라고 ER이 물었다. "사실상 그렇다고 볼 수 있죠. 꼭 써주세요." 썼다. 
"오타쿠가 오타쿠에게 영업하는 느낌이에요." 김수민 라프텔 마케팅팀 매니저. 여의도 라프텔 본사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진=ER 이코노믹리뷰 김연제 기자.

[第1話] 던전에 입장하다 

Q. 라프텔 마케팅 업무는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마케팅 업무는 크게 분기 신작, 자체 제작 애니메이션, 라프텔 스토어로 나뉘어요. 저는 주로 자체 제작 작품과 라프텔 스토어를 담당하고 있고요. 출근하면 메일 확인하고, 캠페인 성과 체크하고, 커뮤니티 모니터링을 하고요.

Q. 가장 재밌는 업무는?

'자체 제작 작품' 마케팅이 즐겁게 할 수 있는 업무 중 하나예요. 저희 IP니까 마케팅 자율도가 훨씬 높아요. 팬덤 중심 콘텐츠 기획, 마케팅용 애니메이션 제작, <마루는 강쥐> 팝업 스토어처럼 오프라인으로 확장도 하고.

재밌는데 더 힘들어요. 가령 제작팀이 몇 년 동안 진짜 열심히 만든 걸 옆에서 보고, 또 퀄리티도 높은데 유저들이 몰라줄 때 괜히 더 서운하죠(웃음).

Q. 입사 전에도 라프텔 구독자였는지?

예. 전 꽤 오래 된 라프텔 구독자예요(웃음). 중학교 2학년 때 <나루토> 보면서 입덕했거든요. 그때부터 애니를 계속 소비한 완전 원나블(원피스·나루토·블리치) 세대예요.

그렇게 자연스럽게 라프텔을 이용했는데, 라프텔이 되게 매력적으로 보였어요. 초기 마케팅이 잘 된 서비스거든요. 이 곳이 재밌는 게 유저들이 회사 편을 들어줘요. 이상하죠?(웃음) 그래서 이런 마케팅을 하는 회사라면 배울 게 있겠다 싶어서 지원했어요.

[第2話] 덕후가 덕후에게 영업하다

Q. 좋아하는 걸 마케팅하니까 더 어렵진 않은지?

저는 아직 죽을 것 같다는 단계까진 안 간 것 같고, 여전히 즐거운 편이에요.

다른 종류의 스트레스는 받아요. 저도 유저들이 원하는 수준이 뭔지 어렴풋이 알거든요. 근데 거기까지 도달하는 게 어려우니까. 

힘이 빠질 때도 있어요. 마이너 장르를 마케팅할 땐 도달할 수 있는 유저 폭이 좁으니까, 오타쿠가 오타쿠에게 영업 뛰는 느낌?(웃음).

Q. 애니메이션 OTT 마케팅의 특징은?

제가 다른 OTT 마케팅을 해본 건 아니니까 상상하자면, 제일 큰 차이는 유저 특성이라고 생각해요. 오타쿠 성향이 있냐 없냐겠죠. 

일반 OTT는 스낵형 소비자가 많잖아요. 저희 소비자들은 깊게 파고들어서 끊임없이 보는 분들이 많아요. 소비하는 것을 넘어 콘텐츠를 해석하시는 거죠.

실무로 말씀드리면, 그런 소비자 성향 때문에 저희가 정보 검증을 철저하게 해야 해요. 소비자들이 저보다 더 자세히 알고 있는 경우가 많거든요. 내가 무슨 말 하나 잘못 했다가 소비자들에게 바로 지적 받을 수 있어서, 계속 내부 검증하고 실행하는 게 필수가 된 것 같아요.

여기 와서 놀랐던 건, CS 의견(고객 문의)이에요. 보통은 불만을 말씀하시잖아요? 근데 여기 유저들은 서비스 발전 방향에 대해 제안하는 의견이 진짜 많아요. "너네가 이걸 해야 성장할 수 있어"라고 유저들이 사측 입장에서 직원들에게 말씀하시는 거죠(웃음).

Q. 라프텔 유저들의 요즘 트렌드는 어떤가요?

큰 흐름이 달라진 건 없어요. <장송의 프리렌>처럼 대중픽이 있고, 분기 신작 가운데 코어 유저 픽이 있고. 전반적으로 일본 애니 트렌드가 그대로 반영돼요. 

요즘은 이세계물이 진짜 많이 나오잖아요? 클리셰 범벅인 양산형 애니메이션들이요. 저도 그런 애니 좋아해요. 밥 먹으면서 재밌게 볼 수 있는 딱 그런 류들. 올해 1분기 <용사 파티에서 쫓겨난 다재무능> 막 이런 거. 앞에 조금 놓쳐도 볼 수 있고, 전혀 머리 아프지 않아요. 그러다 보니 <용사형에 처함>처럼 1화에 엄청 힘을 주고 몰아치는 전개가 더 중요해지고.

[第3話] 그대들은 어떻게 덕질을 할 것인가

Q. '덕질다운 덕질'이란 뭘까요?

하하, 그게 '안경척'하면서 정의 내릴 수는 없어요. "이렇게 하지 않으면 넌 오타쿠가 아니야!" 라고 말할 순 없다는 거죠. 오타쿠가 뭔가 좀 더 다양해지는 느낌이 있어요. 그래도 그건 있어요. 라프텔을 구독할 정도면 그분은 애니 오타쿠입니다! 하하.

Q. 과거 세대와 요즘 세대의 덕질에 차이가 있나요?

원나블 세대로서 보자면, 귀주톱(귀멸의 칼날·주술회전·체인소 맨) 세대는 시청 접근성이 확 높아지면서 집요함이 사라진 것 같아요. 굿즈 스토어나 콜라보 카페에 쉽게 갈 수 있다 보니까 간절함이 좀 줄어든 게 아닐까.

2010년대만 해도 공식 굿즈도 많이 없었으니까 동인 행사에 아저씨들이 트럭으로 불법 굿즈 싣고 오면 사람들이 줄 서서 샀단 말이죠. 딱 봐도 퀄리티가 낮은 그런 굿즈를요. 그때, 정말 줄 열심히 섰는데(웃음).

그런데 지금은 굿즈를 온라인으로 주문하면 오고, 홍대 가도 있고. 그만큼 굿즈 받을 때 감동의 정도가 달라진 거죠.

Q. 이번에 오픈한 라프텔 '스토어 홈' 서비스는 그걸 더 쉽게 하는 거잖아요? 감동을 줄이는 거네요?(웃음) 그리고, 에반게리온 세대에겐 원나블 세대부터 이미 편해졌어요. 그땐 비디오 테이프 복사해서 돌려봤어요.

하하, 그렇죠. 저도 어떤 게 더 좋다는 건 아니에요. 접근성이 높아진 건 윗세대들이 쌓아 올린 업적이고, 당연히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해요. 결국 이 문화가 더 대중적으로 소비되고 있다는 거니까요.

라프텔 스토어 홈 서비스 오픈 이벤트 배너. 피규어 1000원 판매 등 파격적인 혜택을 내건 프로모션으로 이용자가 몰리며 서버가 일시적으로 중단됐다.

[第4話] 라프텔이 미쳤다

Q. '이 작품 반드시 뜬다'고 직감한 사례가 있다면?

25년도 3분기 <타코피의 원죄>요. 저는 주변 반응을 먼저 보는 편이에요. 당연한 이야기지만, 애니화 된다고 했을 때부터 SNS에서 떠들썩하면 잘 돼요. 수급이 늦어지면서 사내 내부에서도 원성이 자자했어요. 

Q. 아, 저는 <타코피의 원죄>를 원작 정보 없이 애니로 봤는데. 와, 1화 중반부터 너무 힘들던데요?

(웃음) 맞아요. 치유물인데 '치명적 유해물'이라고도 불리는 작품이에요. 중도 하차하는 분들도 꽤 있죠.

그런데 잘 될 줄 알았던 진짜 신호가 있었어요. 저희 회사에 찐 오타쿠가 계시거든요? 그분 배경화면이 어느 날 <타코피의 원죄>로 바뀐 거예요. 그거 보고 '와, 이건 무조건 된다' 싶었죠. 

그만큼 오타쿠들이 좋아할 만한 감성이었어요. 귀여운 요소가 있으면서 다크한 내용 흐름이라든지. 그런 유저들이 모인 라프텔이니까 잘 된 거고, 다른 플랫폼에 갔으면 그만큼 잘되진 않았을 거예요.

Q. 마케터로 확신을 갖고 밀어붙인 사례는?

아까 말씀하신 라프텔 스토어 홈의 런칭 이벤트예요. 내부에서도 반대 의견이 분분했어요. 그런 반대 의견이 덕후 입장에서는 다 맞는 이야기들이었고요.

근데 저는 무조건 된다고 생각했어요. 구독형 서비스에 신규 기능이 붙을 때는 초반에 유저들한테 혜택을 빵! 하고 줘야 불만이 사그라든다고 봤어요. 피규어를 1000원에 판매하는 이벤트를 하고, 순차 오픈으로 유저들이 꾸준히 접속할 이유를 만들었어요. 서브컬처에서 이런 딜 이벤트를 하는 게 처음이니까 주목도가 더 높을 거라 생각했거든요. 

결과적으로 "OTT에 왜 이런 기능이 있냐"가 아니라 "라프텔이 미쳤다. 피규어 1000원에 판다"는 얘기부터 나왔어요.

그래도 그날 서버가 터진 건 제가 예측을 제대로 못한 거죠. 서비스하는 입장에선 그러면 안 되는 거고. 처음이니까 유저분들도 양해해주셔서 다행이지만, 다음부턴 안 터지도록 철저히 준비를 해야죠.

[最終話] 애니메이션… 좋아하세요? 

Q. 현재 애니메이션의 위치를 어떻게 보는지?

인기를 막 얻기 시작한 인디 밴드랑 비슷한 것 같아요. 귀주톱의 극장판 흥행으로 일본 애니메이션이 메이저가 됐다는 기사도 나왔지만, 제 생각엔 아직은 마이너 위치이고, 메이저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상태라고 봐요. 과거엔 이걸 정말 좋아하는 사람만 봤다면, 지금은 더 도약하고 있는 상태인 거죠.

Q. 마지막 질문입니다. 애니메이션… 좋아하세요?

하하하, 좋아하죠, 정말 애니를 좋아해서 라프텔에 입사한 거예요. 애니 오타쿠에게 상냥한 마케터가 되고 싶습니다.

[엔드카드] 덕후가 세상을 구할지도 모른다 

Q. 애니메이션이 세상을 구할까요?

기여는 하는 것 같아요. 유럽 시위 보면 <원피스> 해적 깃발 들고 나가잖아요. 용기를 주는 서사가 사람들한테 영향을 주는 거겠죠.

그런데 애니 오타쿠들의 성향인 것 같아요. 좀 더 몰입해서 보니까요. 애니가 세상을 구한다? 그건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오타쿠가 세상을 구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