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한 여행자] 치앙마이에 비가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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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센스] 치앙마이에 비가 내리고 있다. 지난주에 함께 여행했던 요가 여행자들이 떠났고, 가까운 친구마저 떠나 나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아침에 방에서 줌 요가 수업을 마치고 침대에 덩그러니 누워 있다가, 이러다가는 더 늘어질 것 같아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비가 한두 방울씩 떨어지고 있었고, 짙은 회색 구름이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어디를 갈까 생각하다가 치앙마이에서 가장 좋아하는 채식 식당에 가기로 하고 길을 나섰다.
빗방울이 제법 굵어지기 시작해 서둘러 썽태우(치앙마이의 대표적인 대중교통수단으로, 트럭의 짐칸을 개조해 양옆으로 '두 줄(썽태우의 태국어 의미)' 좌석을 만든 형태)를 잡아탔다. 아무도 없는 조용한 뒤 칸에서 비가 내리는 거리를 바라보며 한동안 앉아 있다 보니 도착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서둘러 천장에 달려 있는 벨을 눌러 썽태우를 세웠다.

조용한 식당에서, 다시 혼자가 되는 법
수안독 사원에서 내려 사원 안에 있는 식당으로 걸어 들어가니, 막 문을 열었는지 식당 직원이 테이블을 정리하고 있었고 손님은 없었다. 지난번에 갔을 때 멋진 미소의 직원이 추천했던 디톡스 주스와 볶음 채소 한 접시에 밥을 시켰다. 비트루트와 파인애플, 생강을 갈아 넣은 주스는 상큼했고, 웍에 볶은 싱싱한 야채는 불맛이 났다.
사실 이곳을 좋아하는 이유는 사원 안의 고즈넉한 분위기와 저렴하고 맛있는 채식 식당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친절한 직원이 있기 때문이다. 미소를 머금고 차근차근 말하는 그의 태국어는 아름답게 들린다. 주방 옆의 야외 자리에 앉아 그의 조용한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음성이 참 좋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저렇게 웃으며 부드럽게 일을 할 수 있는지, 닮고 싶은 사람이기도 하다. 손님이 없어서인지 그는 자신의 아침 식사를 들고 와 내 옆 테이블에서 밥을 먹기 시작했다. 얼마나 조용히 먹는지 덩달아 나도 다소곳이 밥을 먹게 된다. 비가 내리는 사원 안, 불경 소리가 은은히 퍼지는 식당에서 오랫동안 알고 지낸 누군가와 함께 밥을 먹는 듯한 편안한 기분이었다.
지난 일요일에는 농부 마켓에 다녀왔다. 옷가지와 천연 제품, 유기농 식품 등을 파는 일요시장으로, 생각보다 독특하고 예쁜 물건들이 많았다. 망고로 물을 들인 천연 염색 티셔츠와 아이보리색 긴 치마, 인디고로 염색한 코끼리 문양의 파란 스카프를 샀다. '치앙마이를 떠나 들어갈 인도에서는 조금 더 멋진 모습으로 가볼까. 예쁜 옷들을 더 사서 변신을 해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농부 마켓 안에는 '탑스 그린'이라는 유기농 슈퍼마켓이 함께 있다. 유기농 제품이 진열된 공간을 구경하다 보니 안쪽에 몇 개의 식당이 있었는데, 마침 비건 음식을 파는 곳이 있었다. 메뉴는 한 가지였고, 인도의 시금치 카레와 로띠가 나왔다. 로띠를 작게 찢어 카레에 묻혀 먹으니 매콤한 시금치 카레 향이 훅 들어왔다.
이곳에서 이 주를 함께 지냈던, 나보다 한참 어린 친구가 근사한 곳에서 밥을 사주겠다고 해 냉큼 그 호의를 받아들였다. 올드시티를 지나다 우연히 '펀 포레스트'라는 식당을 본 적이 있었는데, 나무가 가득한 정원 안에 테이블이 놓인 근사한 곳이었다. 메뉴를 살펴보니 태국 음식부터 서양 음식, 디저트까지 훌륭했지만 가격이 꽤 비싸 그냥 지나쳤던 곳이다. 친구는 가장 럭셔리한 식당을 골라보라고 했고, 나는 이곳을 선택했다.


태국의 대표 음식이기도 한 파인애플 볶음밥이 궁금했는데, 마침 채식 메뉴에 있어 골랐다. 아무래도 친구가 사주는 자리라 가장 저렴한 메뉴를 고르기도 했다. 볶음밥을 먹으면 체하는 편이라 평소에는 잘 먹지 않지만, 이번이 아니면 파인애플 볶음밥을 영영 못 먹을 것 같아 시도해보았다. 달콤하고 새콤한 맛이 좋았지만, 역시나 소화는 더디게 되었다. 친구는 태국에서의 마지막 음식으로 라자냐를, 디저트로는 브라우니를 골랐다. 조용히 시간을 보내기에 좋은 곳이었다.
이제 혼자 치앙마이에서 3주를 더 보내야 해서 저렴한 숙소로 방을 옮겼다. 치앙마이는 여행자들이 장기 체류를 많이 하는 지역이라, 착한 가격의 숙소와 식당이 몰려 있는 곳에는 비건 식당도 많다. 아주 친절한 가족이 운영하는 숙소였고, 운 좋게 꼭대기에 있는 넓은 방을 배정받았다. 방은 요가를 할 수 있을 만큼 넓었고, 하늘이 크게 보이는 창이 있었다.
이제는 올드타운 중앙에 위치한 소박한 채식 식당에서 주로 밥을 먹는다. 반찬 두 가지를 고르면 접시에 밥과 함께 푸짐하게 담아주는 곳으로, 40바트(약 1500원)에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정다운 공간이다. 점심을 먹고 저녁거리를 싸가지고 가기도 한다.
식사를 마치면 근방의 카페로 가 코코넛 커피를 마신다. 이곳은 직접 손으로 내리는 커피가 아주 진해 달콤한 코코넛 밀크와 잘 어우러진다. 조용하고 차분한 남자분이 커피를 내려주는데,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내린 것처럼 농도가 진하고 묵직한 맛이 난다.
나는 이렇게 태국 치앙마이에서 매일 아침 요가 수업을 듣고, 오후에는 산책을 하는 단순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이 시간은 나에게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럽다.
글쓴이 최윤성 '망고 요가 트래블'의 1인 여행 기획자. 국내외 요가 여행을 진행하고, 틈틈이 산티아고 순례길 인솔을 한다. 겨울에는 인도에서 커피와 케이크를 만들며 생활하는 여행자로 살고 있다.
하은정 기자 haha@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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