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 탈출한 늑대 '늑구'… 구경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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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활동이 지구환경을 좌지우지하는 새로운 지질시대인 '인류세'로 들어섰다는 주장이 나온 지 오래입니다.
대전 오월드동물원의 늑대 '늑구'가 지난 8일 아침 울타리 밑 땅을 파고 동물원에서 탈출했다.
하지만 동물원에서조차 인간과 동물의 시선은 마주치지 않는다.
동물원에서 탈출함으로써 늑구는 '무기력의 스펙터클'을 단숨에 부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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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버거 '본다는 것의 의미'
편집자주
인류의 활동이 지구환경을 좌지우지하는 새로운 지질시대인 ‘인류세’로 들어섰다는 주장이 나온 지 오래입니다. 이제라도 자연과 공존할 방법을 찾으려면 기후, 환경, 동물에 대해 알아야겠죠. 남종영 환경논픽션 작가가 4주마다 연재하는 ‘인류세의 독서법’이 길잡이가 돼 드립니다.

대전 오월드동물원의 늑대 '늑구'가 지난 8일 아침 울타리 밑 땅을 파고 동물원에서 탈출했다. 당국은 열화상 카메라와 드론을 동원해 대대적인 수색을 벌였고, 늑구는 결국 17일 생포됐다. 우리는 동물이 탈출하고 나서야 비로소 동물원의 본질을 직면한다. 영국의 문화비평가 존 버거가 1980년 쓴 이 책의 첫 장은 동물원에 대한 글이다. 자본주의 이후 우리가 어떻게 동물을 대상화하고 우리 삶에서 추방했는지 가장 정확하게 보여준다.
전통적으로 인간과 동물은 서로 눈을 마주칠 수 있는 존재였다. 개와 고양이, 닭과 소, 돼지 그리고 인간이 서로의 생태를 알고 이름을 부르는 다종적 공간이 집 마당에 펼쳐졌으며, 그렇게 팔려 간 소의 왕방울만 한 눈을 도축하는 이도 피할 수 없었다.
오늘날 우리 시선에서 동물은 완벽하게 사라졌다. 왜일까? 무분별한 개발과 서식지 파괴에 휩쓸려 야생동물은 멸종의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다른 한편에서 농장동물은 오직 인간의 식탁에 오르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공장식 축산 시스템의 거대한 콘크리트 장벽 너머로 철저히 격리되었다. 고속열차(KTX)와 수서발고속철도(SRT)의 외관을 척척 구별하던 우리 아들은 여섯 살까지도 소와 말을 헷갈리곤 했다. 요즈음 아이들에게 개, 고양이를 제외한 종은 오직 동화책에서만 존재한다. 그렇게 일상에서 쫓겨난 동물들을 모아놓은 전시장이 바로 동물원이다.

프랑스 파리와 영국의 런던에서 최초의 근대 동물원이 생긴 게 각각 1793년, 1828년이다. 동물원은 근대 자본주의가 본격화한 시점, 우리 일상에서 동물이 사라질 때 생겼다. 이 책의 가장 유명한 문장. "동물원은 동물이 세상에서 사라졌음을 증명하는 살아있는 기념비다."
하지만 동물원에서조차 인간과 동물의 시선은 마주치지 않는다. 관람객은 동물을 '보러' 가지만, 진정한 의미의 시선 교환은 이뤄지지 않는다. 쇠창살 너머의 동물들은 반복적으로 고개를 돌리거나, 맹목적으로 허공을 바라본다. 누군가와 만나는 것이 면역이 된 존재들. 그래서, 어떤 만남도 흥미가 되지 못하는 존재들. 구석기 사냥꾼들이 짐승들과 생사를 건 싸움을 벌인 이래 수천 년간 인간과 동물이 나누었던 시선 교환은 이 시대 들어 두꺼운 유리창 너머로 완전히 꺼져버렸다.
동물원에서 탈출함으로써 늑구는 '무기력의 스펙터클'을 단숨에 부숴버렸다. 늑구가 도심의 거리에 출몰했을 때, 비로소 강렬한 '시선의 역전'이 일어났다. 우리는 구경꾼이라는 안전하고 우월한 지위를 상실한 채, 두려움과 경이가 뒤섞인 낯선 눈으로 그를 바라본다. 늑구 역시 텅 빈 눈빛을 거두고 생존을 향한 날 선 감각으로 우리의 세계를 뚫어지게 응시했을 것이다. 공허했던 만남에 의미가 샘솟고, 인간 또한 늑대를 두려워하거나 무사함을 응원한다. 동물원에서 증발했던 동물의 실존, 시선의 교환이 아스팔트 위에서 되살아난 낯선 역설.
버거는 19세기 풍자화가 장 자크 그랑빌의 '증기 방주에 오르는 동물들'을 이야기한다. 수많은 동물이 노아의 방주가 아닌 산업화의 상징인 증기선에 쫓기듯 오르는 뒷모습을 보여준다. 얼마 전까지 자연의 주인이던 동물들이 낯선 땅을 떠도는 이민자로 전락한 풍경이다. 차가운 콘크리트 숲을 헤맨 늑구의 처연한 모습이 방주에 오르는 이민자의 뒷모습과 쓸쓸하게 겹쳤다.
남종영 카이스트 인류세연구센터 객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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