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헌정 더봄] 실패하는 여행에는 이유가 있다

박헌정 작가 2026. 4. 1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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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헌정의 도전! 자유여행]
계획은 완벽한 것 같았는데···
안전과 도전 사이의 균형점은?
중장년은 체력보다 지혜로 여행한다

두 지역에서 큰 전쟁 중이다. 환율과 기름값은 치솟고 항공료와 현지 체류비도 올랐다. 시절이 어수선하면 여행 수요도 감소하니 잘만 하면 대접받으며 다닐 수 있겠지만 이렇게 분위기가 뒤숭숭하면 여행도 재미없다. 현지 분위기도 무겁다.

이런 때는 가까운 일본·중국·대만 같은 곳이 여러모로 편하고 안전하다. 지금은 중국 윈난성(雲南省) 쿤밍(昆明)에 가기 위해 인천공항에 와 있다. 여행의 두 축은 문명과 자연인데 이번 여행은 도시 문명보다 자연경관 쪽으로 기울 것 같다.

자연에 다가가려면 아무래도 건강과 체력이 더 필요하다. 통제하기 힘든 위험도 크다. 계획 중인 리장(麗江)의 옥룡설산(해발 5596m)만 해도 케이블카를 타고 4506m까지 올라간다. 그런 높이는 처음이라 비경에 대한 기대와 고산증에 대한 두려움이 교차한다.
글의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생성한 이미지임 /제미나이 나노바나나

여행에서 맞닥뜨리는 위험은 외부로부터 오기도 하고 내부에서 시작되기도 한다. 내 상황과 목적을 무시하고 세상의 방식을 따르다 보면 어느 순간 나하고 참 안 맞는 상황을 마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사람들은 말을 탈 줄 몰라도 누군가 고삐를 잡아주니 대부분 승마를 안전하고 즐거운 체험으로 여긴다. 나도 그랬는데 말 털 알레르기 때문에 재채기가 멎지 않아 꽤 고생했다. 이처럼 위험은 "저기 위험하니 조심해!"란 경고 없이 내가 모를 때 갑자기 닥친다.

집 떠나면 고생이다. 게다가 위험하다. 여행 유튜버들은 성격이 좋아 늘 웃고 다니지만 그들 부모님이 보면 얼마나 조마조마할까. 하물며 여행이 일상이 아닌 모처럼의 도전인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여행을 무사히, 그러면서도 재미있고 보람된 추억이 되게 할 수 있을까? 주변 사례를 살펴보자.

재생산 없는 반복은 결국 질린다

A 선배(70대 초반)는 은퇴 후 10년째 부부가 함께 여행 중이다. 기업인 출신이라 모아둔 것 많고 자식들도 출세 중이라 돈 걱정과는 거리가 멀다.

그에 따르면 출장은 많이 다녀봤어도 여행 경험은 많지 않았다. 게다가 은퇴 후 비서도 없이 혼자 이것저것 알아보려니 너무 골치 아파 처음부터 자유여행은 외면하고 최고급 패키지여행만 다녔다고 한다. 전 세계 이름난 곳은 거의 다 가보았고 고급 크루즈도 자주 이용했다.

처음에는 너무나 행복하고 지금껏 고생한 보람이 느껴졌다. 그런데 갈수록 여행사 프로그램이 비슷한 패턴임을 깨닫게 되고 신기한 느낌이나 호기심은 줄어들었다. 그렇다고 지금부터 개별적으로 떠나려니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이제는 딱히 기대감도 없이 습관처럼 패키지여행을 따라다닌다.

위험이 전혀 없는 여행이다. 더할 나위 없이 안전하고 평온하지만 여행이 주는 향기를 잃은 사례다. '평온'과 '밋밋함'은 한 끗 차이다. 진작에 조심조심 자유여행에 도전했더라면, 그래서 스스로 재미를 찾는 방법을 알았더라면 어땠을까.

선배 따라 여행 지옥 체험

후배 B(50대 후반)는 안식휴가를 얻어 군대 선배와 한 달간 유럽에 다녀왔다. 자유여행 경험은 없었지만 젊은 시절에 많이 '싸돌아' 다녔다는 선배를 믿었다.

시작은 즐거웠지만 일주일쯤 지나면서 체력이 쭉쭉 떨어졌다. 선배가 짜놓은 일정대로 다니면 될 줄 알았는데 그게 보통 일이 아니었다. 돌덩이 같은 배낭을 메고 기차나 버스를 갈아타며 이동할 때마다 배터리가 방전되는 기분이었다. 그저 빨리 호텔에서 쉬고 싶기만 했다.

게다가 선배의 여행 노하우는 말 그대로 조선시대 수준이었다. 스마트폰 앱 대신 무작정 몸으로 때우는 아날로그 방식을 고집하니 시행착오가 이어졌고 결국 그가 직접 인터넷을 뒤지느라 스트레스받았다. '완벽하게 준비했다더니? 차라리 렌터카를 빌렸더라면…'

여행 취향도 달랐다. 이탈리아 돌로미티에서 그는 평화롭고 한적한 그곳에 오래 머물며 유럽 감성에 취해보고 싶었지만 이튿날 아침 선배는 미련 없이 배낭 메고 일어섰다. 선배는 지도에 찍어놓은 대로 왕성하게 돌아다니고 싶어했다. 조금씩 따로 다녀보고 싶어도 자신이 없었고 숙소를 미리 전부 예약해서 계획을 바꿀 수도 없었다.

완벽해 보였던 여행 준비에도 허점이 많았다. 밤늦게 들어가 아침 일찍 나올 건데 대체 왜 고가의 5성급 호텔들을 예약했을까? 챙겨간 한국 음식을 해 먹을 수 없어 늘 사 먹었더니 속이 느글거리고 두꺼운 옷이 없어 감기 걸리고 비염이 도지고 급기야 관광지에서는 지갑마저 잃어버렸다. 돈은 많이 들고 몸은 축나고 실망감은 가득했다. 이럴 거면 패키지여행이 나을 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디어를 통해 여행이 쉽고 유쾌한 일처럼 표현되곤 하지만 여행은 낯선 세계로 진입하는 도전이다. 많은 준비와 마음의 대비가 필요하다. /게티이미지뱅크

눈빛만 봐도 통하던 사이였는데 여행은 또 다른 문제였다. 함께 떠났다가 따로 돌아온다는 말이 농담이 아니었다. 물론 B도 자기 잘못을 돌아보았다. 모든 걸 선배한테 의존했고 자기는 준비도 역할도 부족했다.

여행도 공부가 필요하고 낮은 단계부터 차근차근 내공을 쌓아야 한다. 그런데 그는 너무 높은 단계부터 시작했다. 대만이나 일본에서 사나흘짜리 여행부터 시작했더라면 어땠을까?

주변의 도움을 받아도 된다

D 선배(60대 후반) 부부는 아주 행복한 여행을 했다. 젊은 시절 해외 곳곳에 출장 영업을 다닌 덕분에 외국이 그리 낯설지는 않다. 하지만 자유여행은 만만치 않은 일이다. 여행환경이 달라졌고 체력은 약해졌고 여행경험 적은 아내를 안전하게 챙기면서 다녀야 한다.

그래서 10박 일정으로 체코와 오스트리아 여행계획을 세운 후 딸에게 도움을 청했다. 딸은 아빠와 머리를 맞대고 온라인에서 항공권·숙박·현지 교통편 등을 예약해 주며 이런저런 설명을 해주었다. 특히 음악 좋아하는 아빠를 위해 모차르트의 도시 잘츠부르크의 뮤직 페스티벌에 맞춰 일정을 잡아주었다.

현지의 하루 투어 프로그램을 찾고 고급 호텔과 에어비앤비를 섞는 지혜까지 발휘해 준 덕분에 D 선배는 패키지여행에서 느낄 수 없던 해방감을 한껏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부모님 체력을 생각해 합리적 가격의 외항사 비즈니스석(경유 편)을 예약해 드린 건 화룡점정이었다. 사전 준비를 통해 여러 여행 위험을 적당한 크기로 줄인 결과다. 딸과 오순도순 여행계획을 짜는 그 순간이 얼마나 즐거웠을까!

결론은 '차근차근 조심조심'

도전하지 못하는 경우, 도전이 거의 실패로 끝난 경우, 도전에 성공한 경우를 살펴보았다. 종합해 보면 자유여행은 첫째 욕심부리지 않고 둘째 차근차근 준비해서 셋째 조심스럽게 다녀야 한다.
카자흐스탄 알마티공항은 열흘 만에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때문에 엉뚱한 곳에서 헤매다 비행기를 놓칠 뻔했다. 이런 변수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임시 터미널(위)과 새 터미널(아래) /박헌정

경험이 좀 있다고 해서 자신만만해지는 게 가장 위험하다. 세상이 너무 빨리 바뀌니 어제의 경험조차 무용지물일 수 있다. 몇 년 전 일이다. 경유를 위해 들른 카자흐스탄 알마티국제공항. 터미널이 시골 버스터미널보다 좁고 편의시설은 상점 두어 개와 화장실이 전부였다. '카자흐스탄이 이 정도인가?' 의구심이 들었다.

열흘 뒤 다시 알마티에서 스톱오버 한 후 공항에 도착했을 때, 어? 이럴 수가 있나? 공항이 사라졌다! 물어물어 찾아갔더니 크고 깨끗한 신청사가 나타났다. 며칠 전에는 임시 터미널이었다. 헤매느라 비행기를 놓칠 뻔했는데 이런 걸 어떻게 미리 대비할 수 있을까?

여행환경이란 게 이렇다. 나를 일부러 골탕 먹이려고 한 것처럼 유독 나하고만 안 맞을 때가 있다. 그저 운(運)일 뿐이지 누구의 책임도 아니다. 여행은 원래 낯설고 힘든 환경에 놓이는 일이니까.

중장년들은 항상 일정을 여유롭게 설계하고, 많이 경험하겠다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 서두를수록 시야가 좁아지고 상황을 오판할 위험이 커진다. 우리는 체력 대신 지혜로 여행해야 한다. 그래서 지금 쿤밍으로의 출발을 앞두고 '나는 그곳에서 가장 낯선 사람이니 무리하지 말고 살살 다니자'라며 마음을 다잡는다.

<자유여행 실패 확률 줄이기>

△여행의 위험은 대부분 밖이 아니라 내 안에서 시작된다. 나의 체력이나 취향을 모른 채 남들 경험과 방식만 따르다 보면 힘들고 불편한 여행 끝에 흥미를 잃기 쉽다.

△안전만 좇으면 여행은 편해도 호기심이 금세 닳고, 무리하게 도전하면 심신의 피로가 쌓여 여행 자체가 버거워진다. 안전과 도전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

△자유여행은 내공이 필요하다. 쉬운 여행부터 차근차근 쌓지 않으면 설렘보다 부담이 앞선다. 겨우 무사히 끝마친다고 하더라도 즐거울 리 없다.

△동행이 있다고 해서 부담이 덜어지는 건 아니다. 취향과 지향점이 다르면 오히려 더 힘들어진다. 역할에서도 '공동 책임은 공동 무책임'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하자.

△여행은 늘 변수가 동반되므로 일정은 느슨하게, 기대는 낮게 잡는 게 좋다. 여행환경 변화가 빠른 시대이므로 최근의 경험과 정보도 과신해서는 안 된다.

스톱오버= 항공 여행 중 최종 목적지로 가기 전 경유지에서 24시간 이상 체류하는 것을 말한다. 짧은 시간 머무는 레이오버(Layover)와 달리 한 여행에서 두 도시를 관광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된다.

여성경제신문 박헌정 작가
portugal4@naver.com

박헌정 작가

기업체에서 25년 일한 후 이 시대 중장년의 의미 있고 행복한 놀기 문화를 효과적으로 연구하기 위해 조기 은퇴하고 먼저 놀아보기 시작했다. 국내외 여행, 지방 이주, 대학원 등 여러 공간을 넘나들며 놀아본 성과와 문제의식을 '원초적 놀기 본능'이라는 타이틀로 7년간 연재했다. 때로는 낯선 도전 앞에 망설이지만 결국 설렘 속에 길을 나선다. 은퇴 세대에게는 지금껏 접해보지 못한 세상을 겪어보는 것만큼 즐거운 놀이도 드문 것 같아 그동안의 여행 경험과 지혜를 나누려 한다.

*여성경제신문 기사는 기자 혹은 외부 필자가 작성 후 AI를 이용해 교정교열하고 문장을 다듬었음을 밝힙니다. 기사에 포함된 이미지 중 AI로 생성한 이미지는 사진 캡션에 밝혀두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