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방의 보기 좋은 인조 석재, 알고 보면 ‘1군 발암물질’[톡톡 30초 건강학]

함승헌 가천대 길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 2026. 4. 18. 09:0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최근 새집으로 입주하거나 주방 인테리어를 새로 할 때 ‘엔지니어드 스톤’(인조석재) 상판은 거의 필수 공식처럼 여겨진다. 천연 대리석처럼 고급스러운 외관을 자랑하면서도 흠집이 잘 나지 않아 인기가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화려하고 단단한 주방 상판이 우리 가족의 호흡기 건강을 위협하는 숨은 불씨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소비자는 많지 않다. 엔지니어드 스톤은 천연석이 아니다. 실제로는 90% 이상이 ‘결정형 유리규산’이라는 물질로 뭉쳐진 고함량 실리카 자재다.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는 이 결정형 유리규산을 폐암과 진폐증의 일종인 규폐증을 일으키는 ‘1군 발암물질’로 엄격하게 분류하고 있다. 물론 가만히 설치되어 있는 상판 자체가 당장 발암물질을 뿜어내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시공’과 ‘유지 보수’ 과정에서 발생한다.

보통 입주 전후로 싱크대 상판을 설치하거나, 광택을 내기 위한 연마 작업, 자외선 코팅, 흠집을 메우는 보수 작업 등을 진행한다. 이때 상판을 자르고 갈아내는 과정에서 대부분 물을 사용하지 않는 ‘건식 작업’이 이루어지며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분진이 다량으로 뿜어져 나온다. ‘청소기로 빨아들이면 괜찮지 않을까?’ ‘공기청정기를 세게 틀면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일반 가정용 공기청정기나 환기 시스템만으로는 작업 중 발생하는 고농도의 분진을 모두 잡아낼 수 없다. 공기 중에 떠돌던 미세분진들은 작업이 끝난 후 거실, 침실의 바닥이나 가구 틈새, 식기류에 소리 없이 내려앉는다. 이렇게 침착한 분진들이 거주자가 집 안을 걸어 다니는 일상적인 활동만으로도 쉽게 다시 공기 중으로 떠오른다. 결국 24시간 생활하는 집 안에서 저농도의 발암물질에 장기간, 지속적으로 노출될 위험에 처하게 된다.

해외 선진국들은 이미 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국가적 차원의 조치를 취하고 있다. 호주에서는 엔지니어드 스톤을 다루는 젊은 작업자들 사이에서 중증 규폐증이 유행처럼 번지자, 아예 자재의 제조와 유통, 사용을 세계 최초로 전면 금지해버렸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는 환자가 급증하자 2023년 긴급 표준을 발동했고, 2025년 10월부터는 사업장의 작업환경 관리와 고지의무를 강제하는 엄격한 법안을 통과시켰다. 반면 우리나라는 어떨까? 일반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상판 연마 및 코팅 작업에 대한 명확한 환경보건 관리 기준이 사실상 없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주거 공간은 공장과 달리 사적 공간이라는 이유로 규제 권한이 충돌하기 때문이다.

더 이상 사적인 주거 공간이라는 이유로 정부가 뒷짐만 지고 있어서는 안 된다. 우선 주무 부처인 고용노동부는 전통적인 공장 위주의 규제에서 벗어나야 한다. 고가의 장비 도입이 어려운 영세 시공업체를 위해 재정 지원을 확대해 이동식 국소배기장치와 습식 공구 보급을 유도해야 한다. 나아가 적합한 밀폐 시스템을 갖춘 업체만 실내 시공을 할 수 있도록 ‘안심 시공 인증제’를 도입해야 한다. 기후에너지환경부 역시 이 문제를 단순한 ‘생활 민원’으로 치부해 방관해서는 안 된다. 현행 ‘실내공기질 관리법’은 다중이용시설이나 신축 아파트 입주 전 상태 관리에 치중되어 있어, 개별 가구 내에서 비정기적으로 이루어지는 보수 작업 중의 노출을 규제할 법적 근거가 없다. ‘환경보건법’ 또한 실외 환경이나 화학제품에 집중되어 있어 가정 내 물리적 가공으로 인한 고농도 미세분진을 제어하는 데 한계가 있다. 따라서 개별 가구 내 고위험 시공 작업에 대한 명확한 환경보건 기준을 신설하고, 산업안전보건법과 환경 관련 법령을 아우르는 통합적 관리가 절실하다.

편의성과 미관만을 좇다 건강이라는 가장 중요한 가치를 잃어버리는 ‘제2의 가습기살균제 사태’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 제도가 완비되기 전이라도, 우리 가족을 지키기 위해 소비자인 우리가 먼저 깨어 있어야 한다. 가정 내 상판 연마나 타공 작업은 단순한 청소나 인테리어가 아니라, 1군 발암물질을 집 안으로 퍼뜨릴 수 있는 고위험 작업임을 명심해야 한다. 시공을 맡길 때는 일반 청소업체가 아닌, 작업 구역을 완벽히 밀폐하고 고성능 집진 장비(HEPA 필터)와 물을 사용하는 습식 공구를 제대로 갖춘 ‘검증된 전문 업체’를 선택해야 한다. 아름다운 집을 꾸미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공간이 가족의 숨결을 위협하지 않도록 확인하고 요구하는 ‘소비자의 깐깐한 권리’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함승헌 가천대 길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

함승헌 가천대 길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