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로 미래로] 민통선 검문에서 벗어나…개방으로 새로운 활기

KBS 2026. 4. 18.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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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군사분계선 인근엔 수십 년간 민통선에 가로막혀 육지의 섬처럼 남겨진 마을들이 있습니다.

강원도 철원군 마현리도 군당국의 허가를 받아야만 통행이 가능했던 곳인데요.

전쟁 이후 황무지에 들어와 터전을 일군 마을 사람들은 그런 불편과 제약에도 이곳을 국내 대표적인 파프리카 산지로 키워냈습니다.

그런데 최근 마을을 가로막던 초소가 이전되면서 새로운 활기가 돌고 있습니다.

정미정 리포터가 다녀왔습니다.

[리포트]

군사분계선과 불과 5km 떨어진 강원도 철원의 작은 마을 '마현리'.

최근 이곳에 반가운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장복란/철원군 마현1리 이장 : "마음대로 들락날락할 수 있잖아요. 면회자들, 형제, 자식이 그냥 아무 때나 올 수 있는 곳이 됐어요."]

한적하고 평화로워 보이는 마을.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이장님.)"]

하지만 마을에 들어가기 위해선 바로 이곳에 있던 군부대 초소에서 반드시 검문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김경대/철원군 마현2리 이장 : "서약서를 작성하거나, 주민등록증을 제시하고 보관 후 통과가 가능하고 서약서에 명시된 시간 내에 다시 나가야 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검문 없이 자유로운 통행이 가능해진 시점은 지난 4월 6일 아침 6시.

마현리 입구, 5번 국도에 접해있던 초소가 6km 떨어진 마을 동쪽으로 이전하게 된 겁니다.

마을에선 근래 가장 큰 경사라고 하는데요.

이런 변화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마현 1리와 2리 주민 500여 명은 지난 2022년부터 초소 이전과 통행 자유를 요구해 왔고, 군 당국과 오랜 협의 끝에 결실을 맺게 된 건데요.

그 과정에서 민·관·군이 함께 참여한 안전 점검 작업도 병행됐습니다.

[김경대/철원군 마현2리 이장 : "위험지대 같은 경우는 안전 펜스를 설치해서 계속 지뢰를 탐지해 나가고. 그다음에 주민들을 계속 설득하고 서로 상호 간에 이야기를 계속하면서 군부대와 소통이 있었죠."]

무려 60년 만에 주민들의 오랜 숙원이었던 초소 이전이 현실이 되면서 이제는 출입 제한 없이 자유로운 통행이 가능해졌는데요.

그렇다면 마을에는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요.

마현리는 국내 대표적인 파프리카 생산지이기도 합니다.

[김경대/철원군 마현2리 이장 : "7~9월이 되면 대한민국에서 소비되는 모든 파프리카의 90%가 이곳 마현리에서 생산되고 있습니다."]

마침, 봄철 농가에선 최근 옮겨 심은 파프리카 모종이 파릇파릇 자라고 있었는데요.

["(대표님 지금 이 파프리카 심은 지는 얼마나 된 거예요?) 15일 됐습니다. 두 달 반 정도 지나서 잎에 색이 돌기 시작하면 익는 거거든요."]

이 지역은 파프리카 재배에 딱 알맞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합니다.

[전호병/철원군 마현2리 주민 : "여기 청정지역이고 온도 차이가 크기 때문에 파프리카가 아주 달고 맛있어요."]

천혜의 환경을 바탕으로 첨단 농법도 빠르게 도입했지만, 그러나 민통선 마을이란 제약은 늘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전호병/철원군 마현2리 주민 : "이 시설을 하는 데 참 힘들었어요. 검문소를 통과해서 들어오면서 자재를 구입해서 들어오는 그 과정이 참 힘들었던 것 같아요."]

생활 속 작은 즐거움도 생겼습니다.

마을 안에서도 얼음 가득한 시원한 음료를 배달받아 마실 수 있게 된 겁니다.

[전호병/철원군 마현2리 주민 : "(예전에는) 검문소에서 오다가 시간이 많이 지체되니까 시원한 걸 먹을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거든요."]

청량한 음료 한 잔이 오랜 통행 제한의 갈증을 식혀주는 듯한데요.

이처럼 외부 인력과 물류 차량이 자유롭게 오가면서 농가의 일손 부담도 한결 줄었습니다.

[함혜심/철원군 마현2리 주민 : "아무래도 이제는 빨리 통과되고 일도 빨리 할 수 있고 그런 점이 좋아진 것 같아요."]

마현리에서는 파프리카뿐 아니라 토마토와 오이, 고추냉이 등 다양한 작물을 생산하고 있는데요.

특히 연중 출하가 가능한 고추냉이 농가는 자유로운 통행을 가장 반기는 곳입니다.

과거엔 까다로운 출입 절차 탓에 발길을 돌린 구매자들이 적지 않았다는데요.

[박윤영/철원군 마현2리 주민 : "현장을 보면서 구매하고 싶은 사람들이 많은데 쉽게 못 들어왔던 거죠. 연락이 계속 오는데도 초소 때문에 불편하니까 못 들어왔던 거예요."]

온라인 판매와 택배 판매를 늘리는 등 농가는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박윤영/철원군 마현2리 주민 : "많은 사람들이 올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생겼으니까. 그만큼 우리도 농산물 많이 나가고 우리도 수익이 아무래도 많이 나아지겠죠. 그걸 다들 기뻐하는 거죠."]

마을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이야기하는 주민들.

하지만 이런 변화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전쟁 이후 아무것도 없던 땅을 일구고 이 땅을 오랜 기간 지켜온 주민들의 노력.

그 오랜 역사가 바탕이 된 겁니다.

이곳의 정착 2세대인 장복란 이장은 누구나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는, 열린 마을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족구장도 있고, 얼마든지 사람들이 와서 즐길 수가 있어요."]

아기자기하게 펼쳐진 마을 풍경.

하지만 이곳은 한때 아무것도 없던 황무지였습니다.

[장복란/철원군 마현1리 이장 : "(언제 만들어진 마을이에요?) 1960년도요, 4월 7일 이주해서 그때부터 천막치고 부모들이 살았대요."]

그 시절 천막생활을 끝내고 처음으로 갖게 된, 낡고 허름한 주택도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어디에서 지어준 거예요?) 정부에서 지어준 거예요. 그래도 이 8평(26.4㎡)에서 보통 열 식구가 넘게 산 거야."]

당시를 생생하게 기억하는 정착 1세대들.

[남원현/철원군 마현1리 주민 : "그때 울진에서 3월 5일에 출발해 가지고 진달래가 지고 철쭉꽃이 피는 걸 보고 여기 왔단 말이에요."]

마현리는, 1959년 태풍 사라호로 삶의 터전을 잃은 66세대가 다음 해인 1960년에 집단 이주해 오며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마주한 현실은 평범한 정착과는 거리가 멀었는데요.

[이경희/철원군 마현1리 주민 : "마현리 그때 들어오니까 전부 쑥대밭이고 불편한 거는 말도 못 하지요. 군인들 그 천막 있잖아요. 그거 갖다가 쳐놓고 그 안에다 멍석을 깔아놓고 그렇게 생활했어요."]

주민들은 맨손으로 밭을 일구며 인고의 시간을 버텨야 했는데요.

[최영수/철원군 마현1리 주민 : "맨손으로 왔기 때문에 아무 농기구도 없고 군인들이 쓰던 야전삽이라든가 곡괭이라든가 그런 걸 주워 가지고 개답(논을 새로 만드는 작업)을 했어."]

고된 세월을 함께 견뎌낸 이웃은 인생의 동반자이자, 벗이 되었습니다.

["동갑이에요. (몇 살에 여기 오셨어요?) 27살에. (똑같이 오셨어요?) 그럼 똑같이 왔지. 똑같이 한 날에 왔지."]

마을 한편엔 척박한 땅에 희망의 씨앗을 뿌린 1세대들의 노고와 헌신이 새겨져 있는데요.

모진 풍파를 겪은 세월이 있었기에, 오늘의 봄날도 맞이할 수 있었을 텐데요.

[장복란/철원군 마현1리 이장 : "귀농하는 사람들이 많이 와서 자식들이 손주 손녀들이 마당에서 뛰어놀았으면 좋겠어요. 그게 바람이에요."]

닫혀 있던 문을 열고 활기찬 마을을 일구는 마현리 주민들.

민통선의 제약에서 벗어난 이들의 또 다른 꿈이 더 넓은 세상을 향해 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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